무지개 송어
김여하
무지개빛을 띠는 물고기가 있다고 한다. 무지개빛은 기쁨일까. 슬픔일까. 어릴때는 무지개가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나이 들어 알았다. 무지개는 꼭 기쁨만이 아니라는 걸.
삼복더위 중에 성당에서 야유회를 갔다. 국도 43번을 타고 동으로 서너 시간 달리니 인제군 북면이다. 북면 근처에 오니 자주 송어횟집이 눈에 띤다. ‘무지개 송어’ 라는 선전문구가 눈을 끈다. 고기 색깔이 무지개란 말인가 껍질의 무늬가 무지개란 뜻인가. 누구에게 물으려니 무식하다 퉁 먹을까봐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제일 어렵고 가장 만만한 앞좌석에 계신 신부님께
“신부님, 무지개 송어가 뭐예요?”
물으니
“아, 다니엘 형제님 내일 먹으러 옵시다.”
시원하게 답하신다. 신부님들은 거짓말을 안 하신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과 대화는 참 편하다. 그런데 나는 꼭 필요하면 종종 거짓말을 한다. 거의 아내에게 한하지만.
콘도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나오니 개울가에서 버스로 온 초, 중, 고등학생 아이들이 캠프화이어를 하고 있다. 불을 피워놓고 인디언처럼 소리 지르며 춤춘다. 이어서 불꽃놀이를 하는데 공중에서 퍼지는 불꽃들이 무지개 색깔이다. 또 송어회가 먹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나니 수건이 없다. 콘도여서 비치되지 않았다나. 수소문 끝에 제일 부자이신 신부님께 빌려 썼다. 마음대로 갖다 쓰시란다.
점심때가 되었다. 우리는 출전하는 용사처럼 씩씩하게 봉고차를 타고 북면으로 송어 회를 먹으러 갔다. 무지개 송어는 비늘이 무지개 빛이어서 무지개 송어라고 일컫는다. 송어는 찬물에 양식하고 있었다. 송어는 섭씨 20도 이하의 찬물속에서 산다. 맑은 물속에서 오월의 보리처럼 싱그럽게 푸드득 거리는 것들을 꺼내어 도마에 얹고 익숙한 솜씨로 회를 뜬다.
우선 머리를 칼등으로 한 방 쳐서 기절시킨 후 꼬리에서 머리로 칼을 그은 뒤 반대방향으로 누인다. 전과 같이 한 후 껍질을 벗겼다. 뼈와 머리는 따로 분리해서 놓았다.
가만히 들어다보니 고기 색깔이 황토 흙과 비슷한 붉은 색이다. 소나무의 속 마디와 색깔이 비슷해서 송어(松魚)고 불렀다는 옛 문헌이 생각났다. 송어 회는 맛있었다. 쫄깃쫄깃하여 씹히는 질감과 느끼하지 않고 향기로웠다.
송어는 등 쪽은 옅은 소나무 이파리 색깔, 배 쪽은 우윳빛에 옆구리에 암갈색반점이 있었다. 연어와 같은 과 사촌지간이다. 회귀성 어류로 치어 때 바다로 갔다가 2~3년 지낸 뒤 고향으로 돌아와 산란하고 죽는다.
바다로 가지 않고 그냥 고향에서 말뚝 박고 사는 놈이 산천어이다. 왜 죽자고 바다로 갔다가 돌아와서 산란하고 허망하게 죽는단 말인가 그냥 고향에 편히 살다가 죽지. 회귀어들이 들으면 욕먹을 말이다. 알래스카 앞 바다까지 갔다 오는 연어의 깊은 속을 누가 알까.
송어와 숭어는 암만 들어도 헷갈린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숭어’ 때문이다
‘거울같이 맑은 강물에 송어가 뛰노네 나그네 길을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언덕에 앉아서 그 송어를 바라보고-’
가사를 보면 대뜸 이건 ‘숭어’가 아니라 ‘송어’이다. 라는 걸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숭어는 바다고기인 탓에 민물 근처에도 오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숭어’는 ‘송어’의 오역이었던 것이다.
여하튼 송어는 자갈이 깔린 맑은 물속에서 사는데 동해에서 나는 고기 중 가장 맛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해로 흐르는 강의 물고기중 제일 맛있는 놈은 눈이 빨간 열목어이고.
회를 먹다가 주방에 가서 주방장에게 뼈와 대가리, 회치고 남은 살점을 싸달라고 부탁했다. 주방장은 흔쾌히 싸서 얼음을 채워 넣어주었다.
소주를 곁들여 회를 맛있게 먹고 나오는데 계산을 신부님이 하신단다. 고작 월급 80여 만원 받아서 그것도 어려운 교우들 도와주고 돈이 없는 게 뻔한데 고집이시다. 참 송어같은 분이시다. 우리는 억지로 달래고 그중 형편이 나은 교우가 계산했다.
다음날 아침 주방에 들어가서 송어 매운탕을 끓였다. 메기나 붕어매운탕 끓이듯이 무를 나박썰기로 깔고 고기를 넣은 후 한소끔 끓인다. 대파와 깻잎 등 채소와 방아나물이나 산초 따위의 향신료와 정종, 마늘, 고춧가루 등을 넣어서 한 번 더 끓였다.
신부님과 교우들이 맛있게 잡수신다. 요리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볼 때 가장 행복하다.
식사 후 바깥에 나오니 물안개 낀 산자락이 선경이다. 산자락을 따라 눈길을 아래로 내리니 어제 아이들이 레프팅하고 온 내린천이 보인다. 문득 내린천에는 자연산 송어가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몰라도 예전에는 틀림없이 살았으리라. 송어는 경상도에서 동해안을 끼고 올라오며 동해로 흐르는 여울에 거의 살았으므로. 갑자기 아침 햇살을 받으며 도약하는 송어의 은빛 자태가 환상처럼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