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7곱살 화야는 눈을 뜨자마자
감나무 밑으로 손살같이 달려간다
이슬에 촉촉히 젖은 풀잎을 헤치고
나무에서 떨어진 감홍시를 찾는다
새벽녁 소슬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풀섶에 떨어진
진홍빛 감홍시가 어찌그리 고운지
터질세라 치마폭에 고이 담아서
호도나무가 즐비한 남이언니네 텃밭으로 달려간다
껍질에서 갓떨어진 물기 마르지 않는 호도가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화야의 키보다 더 큰 담배밭 고랑에도
껍질을 반쯤 쓴채 노란 호도가 유난히 빛나고 있다
화야는 탄성을 지르며 하나 하나 치마에 줏어 담는다
간식을 챙겨줄 엄마가 없어도
화야는 늘 그렇게 스스로 주전버리를 장만한다
떫은감은 등겨속에 익을때까지 묻어두고
잘익은 감홍시는 하루만에 먹어치운다
그리고 호도는 두고 두고 먹을 간식거리가 된다.
화야는 뒷산 오솔길을 끙끙거리며 올라
알밤을 줏어 오기도한다
그것도 동트기전에 올라 가야지만 쟁취할 수 있다
한발 늦으면 날다람쥐에게 빼앗기거나
동네 큰아이들이 먼저 줏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큰짐승의 한입거리 밖에 되지않는 화야를
무서운 짐승이 물어가지 않는것은 참 다행한 일이었다
이른아침 안개가 걷히기도 전에
뒷산 밤나무 숲을 헤메는 화야는
노란 풀섭에 떨어진 밤톨 하나 하나를 발견 할 때마다
그 기쁨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훗날
무서운 꿈으로 이어진다
뒷산 밤나무 숲에서 만나지 못했던 그 짐승이 하필 꿈속에서 나타나
화야에게 덤벼든다.
평소에 다람쥐처럼 잘도 뛰어다니던 두 발이 움직이지 않고
진땀을 뻘뻘 흘리며 잠을깬다.
도회지로 떠나지 않는 동무들의 엄마는
늘 보리가루로 만든 빵떡이나 삶은감자와
달큰한 외호박을 쪄서 간식거리를 만들어 주지만
화야는 먹거리를 스스로 준비해야만 했다.
화야는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식충이었다
봄날에 소롯이 올라오는 찔레순은
자라기도 전에 식충이에게 먹히고
참꽃이랑 송구나무, 산이스라지, 오디,깨금,
어름덤불에서 열리는 어름과 머루, 다래 ,그리고 포구,산딸기
온산을 뒤지며 화야는 그것들을 먹어치웠고
가을날 소슬바람에 떨어지는 잘익은 대추는
대추나무골 구천 동네에서는
웬종일 줏어 먹을 수 있는 하늘에서
떨어진 맛나같은 것이었다.
화야는 산을 좋아한다
엄마의 젖무덤같은 산에서 종일 뛰어놀면서
배가 고프면 산열매를 따먹는다
할머니는 푸성귀에다 꽁보리밥을 화야에게 먹였지만
또래 아이들보다 유난히 쑥쑥크는 비결은 다른데 있었다.
나무에 물이 오르는 봄날이면
솔태언덕에 올라 소나무 잔가지를 꺾는다
소나무 껍질을 벗겨서 속이 드러난 나무가지를
앞이빨로 서걱 서걱 갉으면
상큼하고 향긋한 수액이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투명한 막을 싸고있던 소나무 속살을 벗겨서
질겅 질겅 씹어먹기도한다.
소나무에 물이 오를때면
화야도 물이오르고 성큼 키가 큰다.
봄날 외삼촌 나무 지게에는
늘 솔가지가 꽂혀있었고
고사리손으로 꺽은 아이들의 작은 송구와는 달리
깊은산속에서 꺽어온 외삼촌의 송구는
더 큼직하고 싱싱해 보인다
그것은 봄날의 아이들의 간식거리였다.
솔태언덕에 산제비가 날고
마른 풀섶을 헤치고 할미꽃이 고개를 내밀면
화야의 봄의 향연이 시작된다
잔디위에서 좋아라 덩실 덩실 춤을추고
소리를 꽥꽥 지르며 기뻐 날뛰는 화야의 재롱에
봄의 여신이 미소지으며
상큼하고 맛있는 화야의 간식거리인 참꽃을 온산에 뿌려준다.
화야는 이산 저산을 다람쥐처럼 옮겨 다니면서
참꽃을 뜯어 먹는다.
한웅큼의 탐스런 참꽃송이는
"살려주세요! ' 하면서
화야의 이빨에 잘근 잘근 씹혀 상큼한 즙이 되어버린다.
참꽃을 듬뿍먹은 소녀의 혓바닥은 연분홍으로 물들고
두뺨도 참꽃빛으로 홍조를 띈다
참꽃으로 배가 불러진
소녀는 잔디에 누워서 눈부시도록
푸르디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제트기가 남기고간 하얀 실선을 바라본다
하얀실선은 점점 부풀어 구름기둥이 되고 갖가지 형상을 만들어 나간다
화야는 구름속에서 토끼도 찾고 염소도 찾는다
그리고 도회지에 계시는
엄마얼굴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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