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닝시장에서 객잔으로 돌아 와 저녁식사 시간까지는 아직 2시간 정도 남아 아내와 함께 마을 산책에 나간다. 객잔을 나서 도로 쪽으로 걷다보니 꺼무산(사자산) 쪽으로 관광버스가 들어간다. 새벽에 이곳을 돌아 봤지만 문이 잠겨 있고 안개에 휩싸여 꺼무산 뿐만 아니라 내부도 볼 수 없었다. 관광버스가 들어가니 “안에 뭔가 볼 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란 생각에 아내와 문 안으로 들어간다. 입구 간판에는 “女神洞 入口” 란 표시가 있다. 좌측엔 꽤 긴 경사로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올 수 있는 놀이기구 같은 것이 있고 멀리 건물이 한 채 있기에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도로 끝엔 꺼무산을 오르는 리프트 정류장이 있는데 저녁시간까지 시간도 있고 아내의 요구도 있고 해서 리프트를 타기로 한다. 정류장으로 다가가니 직원이 다가와 뭐라고 하는데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띵부동(聽不懂), 워스한구어런(我是韓國人).-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하니 직원이 180元을 달란다. 돈을 받아 든 직원이 정류소에 있는 직원에게 뭐라고 이야기 하더니 가서 타라고 손짓을 한다.
해발 3,750m의 꺼무산은 꺼무(干木)여신의 화신으로 꺼무 여신은 인구의 증감, 가축의 증감 그리고 농작물의 풍년과 흉작을 주관하는 동시에 여자의 건강과 아름다움, 생식과 생육 등을 주관하는 여신으로 전설에 의하면 꺼무여신은 이 산 정상에 있는 동굴 안에 살면서 주위 남자산의 신들을 관장하며 이들과 ‘아샤(阿夏 : 연인 관계)’생활을 하는데 매년 7월 25일 각 지역의 산신들이 사자산에 모여 놀았다고 한다. 루구호 주변에 사는 모서인들은 이것을 기려 매년 음력 7월25일 집집마다, 벌꿀, 우유, 차, 기름, 꽃 등을 제물로 준비하여 사자산을 향해 제사 드리며 춤추고 노래하며 노는데 이를 “쟌산지에(轉山節)이라 한다고 한다.
리프트는 꺼무산을 따라 거의 60도가 넘는 경사를 오른다. 리프트 아래를 내려다보니 잡목들과 거친 바위가 점점 멀어지는데 고공 공포가 가장 심하다는 지상 13m 쯤 내 발이 떨어져 아찔한 느낌이 든다. 정상은 안개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양 옆으론 바위투성이 산에 숲이 울창하다. 수많은 나무의 나뭇가지엔 매달려 자라는 이끼가 바람에 흐느적거리고 있어 마치 귀신이 옷을 입고 춤추는 것 같다. 구름 속으로 리프트가 오르자 얇은 옷을 입고 있어 갑자기 몸이 오싹한 게 한기를 느낀다. 양 옆 나무들의 잎도 엷은 단풍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높은 암벽 아래 리프트 정류장에 내리니 약간 춥기도 하고 숨도 가쁜 것 같다. 루구호가 해발 2,700m임을 감안할 때 60도의 경사를 리프트를 타고 20여분 올랐으니 이곳은 어림잡아 해발 3,700m는 넘을 것이다.
여신동으로 가는 화살표를 따라 60도가 넘는 돌계단과 나무계단을 오르려니 숨이 턱에 찬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올 때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아 관광객이 얼마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계단을 오르내리는 관광객이 꽤 많다. 10여분을 계단을 올라간 곳엔 커다란 동굴이 나타나고 동굴 입구엔 “女神洞”이란 큰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동굴 안은 컴컴한 가운데 급경사의 돌계단과 안전대 옆으로만 희미하게 조명이 밝혀져 있다. 동굴 내부가 습해 미끄럽고 폭이 좁은 돌계단을 따라 조심조심 숨을 헐떡거리며 오른다. 동굴 여기저기 조명이 밝은 곳엔 사람 형상을 한 바위와 기괴한 바위가 곳곳에 보인다. 한참을 올라도 끝은 보이지 않고 숨은 차고 특별히 새로운 모습도 보이지 않아 중간에서 다시 내려온다.
동굴 입구를 나와 출구 화살표를 따라 돌계단을 내려오는 중간에 “女神廟”가 있다. 이 여신묘는 여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으로 제법 크고 화려한 목조건물이다. 티벳불교가 이곳에 전래된 관계로 여신동의 사원도 티벳풍을 잔뜩 품어 내고있다. 안을 살펴보니 여신을 그린 듯한 벽화가 정면 벽을 장식하고 있고 벽화 중간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불상 앞에선 티벳불교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독경을 하고 있으며 밖엔 룽다도 많이 보인다. 아마 모서인들이 불교가 전파되기 전에 믿던 자연 정령신앙과 티벳 불교가 융합된 것일 게다.
돌아 내려오다 보니 나무계단 위, 아래 할 것 없이 원숭이들이 몰려다닌다. 과거 관광객들이 원숭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에 습관이 되었는지 관광객들 주변으로 몰려다니다 관광객들의 배낭을 습격해 모자도 뺏고 배낭 안을 뒤지기도 한다. 아이들과 여자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관리인들은 원숭이를 쫓기에 바쁘다. 나무계단 곳곳엔 관광객들이 꺼무여신에게 소원을 비는 또는 사랑이 이루어지길 기원하는 글들이 똑 같은 나무판에 쓰인 채 매달려 있다. 중국 명승지 어딜 가나 이런 종류의 부적들이 많이 보이는 걸 보면 중국 사람들의 생에 깊이 뿌리박힌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계단에서 뒤 늦게 올라 온 진영아빠와 엄마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한다.
다시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면서 루구호를 바라본다. 남신과 사랑에 빠졌다 남신이 도망가자 남신을 따라가며 꺼무여신이 흘린 눈물이 호수가 되었다는 루구호와 꺼무여신의 울음소리를 듣고 도망가던 남신의 진주 목걸이가 끊어져 호수에 빠져 그 진주가 섬이 되었다는 전설을 가진 루구호는 안개 속에 평화롭기만 하다. 리프트정류장에 내려 옆에 마련된 인공썰매를 타고 입구로 내려오는데 그 스피드와 커브를 도는 짜릿함이 여행에 지친 피로를 말끔히 날려 준다. 아내가 객잔으로 돌아와 일행들에게 리프트를 타고 꺼무산 올라갔다 내려 온 자랑을 한다. 일행들은 같이 가지 못한 것을 내내 아쉬워한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저녁을 먹은 후 5분정도 걸어 모서인들이 춤추고 놀며 사랑을 나눌 짝을 찾던 등불완회를 보러간다. 우리가 도착하니 벌써 등불완회를 보러 온 중국관광객들로 가득 차 북적이고 저녁 술이 과한 듯한 중국관광객 중 한두 명은 마당을 오가며 정체불명의 춤을 주고 있다. 마당 한 가운데 모닥불이 피워지고 짜시가 마이크를 잡고 등불완회를 보러 온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며 등불완회가 시작됐다. 마당 한가운데 피워 논 모닥불을 중심으로 강강술래처럼 둥글게 돌며 춤을 추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들이 각각 패를 지어 남자는 발을 구르고 여자는 손뼉을 치며 놀기도 하고, 남녀가 주고 받으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언뜻 이들의 춤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는 관광객들에게 두세 가지 정도의 스텝만 보여주기 때문에 그리 보이는 것으로 실제로는 수십 가지의 스텝을 복잡하게 즐기며 논다고 최 작가가 귀띰한다. 등불야회에서 부르는 노래는 구애 혹은 사랑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며 춤도 마찬가지란다. 처음에는 모서인들만의 공연으로 이어 갔지만 점차 관광객들과 모서인들이 모두 섞여 함께 춤추고 노래한다. 가끔 “야쏘! 야쏘! 야야쏘!”,“ 촘비! 촘비! 촘촘비! ”등 추임새를 같이 넣으며 하나가 되어 간다. 워낙에 가무와 잡기에는 소질이 없는 지라 박자를 맞추며 우아하게 춤을 추는 일은 요원하지만 그냥 내 마음대로 몸을 움직여본다. 대학시절 축제 때 학우들과 또 20여 년전 전남 진도의 한 마을로 출장 갔을 때 마을 분들과 강강술래를 추던 생각이 난다. 지금도 그곳에선 강강술래를 추고 있을까. 우리는 왜 이런 것을 촌스럽다고, 진부하다고 치부하고 전통과 민속을 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이런 것을 촌스럽다고, 진부하다고 치부하고 전통과 민속을 버리는 것일까? 전통과 민속은 민속촌이나 국립극장 같은 데서만 보존하고 공연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전국에서 열리는 수많은 축제나 농어촌체험마을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발굴하여 관광객과 참여자가 함께 어우러지는 프로그램이 아쉽다. 리장에서도 나시족들이 매일 광장에 모여 관광객들과 전통춤을 추는 자리를 만들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방인들을 매료시키더니, 이 작은 마을에서조차 이렇게 관광객을 끌기 위해 매일 공연을 벌인다. 모두가 어울려 한바탕 땀이 나도록 춤을 추고 나니 기분도 좋아지고 후련하다. 중간 쉬는 시간에는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모서인 남녀와 기념촬영도 하며 우리 일행도 모서인들과 하나가 되어간다.
한국사람 공정여행, 쾌지나 칭칭나네
루구호에 잘도왔네, 쾌지나 칭칭나네
와서보니 너무좋네, 쾌지나 칭칭나네
우리모두 감동했네, 쾌지나 칭칭나네
뭐써민쭈 쭈니심푸, 쾌지나 칭칭나네
(모서민족 행복하라, 쾌지나 칭칭나네)
등불완회가 끝날 무렵 무대중앙에 초청받은 우리 일행은 짜시네 집에서 빌려 온 냄비를 두드리며 우리가락인 “쾌지나 칭칭나네”의 곡에 가사를 바꿔 노래를 불러 이곳에 모인 관광객들과 모서인들에게 큰 박수를 받는다. 우리 공연이 끝나자 모서인들이 나와 강여사를 헹가래 친다. 또, 우리의 호프 언준이와 진영이가 개다리 춤을 선보이고 완회의 리더인 짜씨의 요청으로 우리 통역 정군이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여 관광객들의 환호를 받는다.
등불야회가 끝나고 객잔으로 돌아오다 보니 도로에 관광버스 5대와 승용차 여러 대가 주차되어 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마을의 등불완회가 외부인들에게 알려지자 호텔과 상가가 밀집된 따로우수이 마을에서도 얼마 전부터 등불완회를 재현하고 있는데, 극장에서 관람만 하는 형태라 함께 어울리고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이 마을로 오고 있기 때문이다. "완회가 열리는 날에는 집집마다 무조건 두 명씩 참여를 해요. 축제를 번 돈을 한 달에 한번 공평하게 마을 사람들이 나누는데, 가계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리장이나 인근 도시로 돈 벌러 나가 고생하는 젊은이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객지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죠." 축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최작가가 등불야회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작가는 자신의 제안으로 지금 같은 등불완회가 있기까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불과 4년 전만 해도 등불완회는 모서인들만의 작은 축제에 불과했다.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짝을 찾는 젊은이들이 점차 늘면서 그들 사이에서도 차츰차츰 잊혀져 가고 있던 어느 날 외부인이 거의 가지 않는 낯선 루구후를 하루 꼬박 걸려 마을을 찾아 간 최 작가가 주기적으로 여행자들과 함께 마을을 찾을 테니 그들에게 보여 줄, 함께 즐기며 놀수 있는 전통문화공연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을을 찾는 외부인이라곤 어쩌다 한두 명, 그것도 루구후 호수를 바라보며 스쳐 지나가는 정도에 불과한데 와서 잠을 자고 머물며 우리들이 춤추고 노는 것을 보여 주면 돈을 주겠다다니 정신 나간 사람이 공연히 해 보는 소리라고 청년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 때 낯선 이방인에게서 진정성을 느낀 짜빠·짜시 형제가 마을 청년들을 설득해 오늘날과 같은 등불완회를 재현하게 됐고, 돈 나올 곳이라고 없던 이 마을을 살리는 주요 수입원이 되어 기쁘고 보람있다.」아울러, "어떤 사람들은 마을에 객잔들을 짓고 주택도 현대식으로 개량하는 등 관광사업을 중심으로 너무 상업화해 간다고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런 건 우리들의 지나친 이기라고 생각합니다. 보셔서 알겠지만 마을에 TV가 들어와 있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들도 다 압니다. 그럼에도 어쩌다 찾는 여행자들을 위해 가난하고 불편해도 참고 살아 달라는 것은 자기들 입장만 생각하는 거지요. 이들에게는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일인데 말입니다."라고 덧붙인다.
짜씨네 집으로 돌아오자 마당엔 탁자가 놓여 있고 바비큐파티가 준비되어 있다. 짜씨가 초청한 동네 사람 3명이 오고 중국인 남자와 결혼해 이곳에서 객잔을 운영하며 유리창에 “독도는 우리 땅! 대마도도 우리 땅!”이란 구호를 붙인 여주인이 우리와 합세해 수리마주를 마시며 번갈아 가며 노래를 부른다. 객잔 여주인은 이곳에 온 지 2년 만에 한국인을 처음 만났다며 형제를 만난 것처럼 좋아하며 타국 오지에서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 놓는다. 모서인들의 노래에는 어쩐지 소수민족으로서의 한과 슬픔이 배어 있는 것 같다. 한 사람의 노래가 끝나면 우리 모두 “야쏘! 야쏘! 야야쏘! 모쒀! 모쒀! 모모쒀!”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노래한 사람도 격려해 주고 모서인들과 하나가 되어간다.
깊어가는 여름 밤! 우리의 노래 소리는 루구호의 수면에 울려 퍼진다. 이 루구호에 별과 달이 떴으면 우리 파티를 더욱 빛내 주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까지 비와 함께 한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루구호 꺼무여신이 하루쯤은 루구호 하늘에 비치는 달과 별을 볼 수 있는 밤을 맞이하게 해 줄 수 있는 아량이 아쉽다. 우연이지만 오늘 오후 꺼무산에 올라 여신동과 여신묘에서 꺼무여신을 알현하고 왔는데 말이다. 아쉬움 속에 마당에 지펴 놓은 모닥불은 사그러져간다.
첫댓글 야쏘 야쏘 야야쏘! 뭐쒀민쭈 쭈니씽프! ! !
ㅎㅎ사진이 참 생동감넘치네요. 공정여행 블로그로 퍼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