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녕사를 나와 근처 수원광교박물관을 찾았다
수원엔 수원화성박물관,수원박물관,수원광교박물관,경기도 박물관 등 박물관 천국이다 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수원광교박물관은 광교신도시 조성 시 출토되었던 유물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광교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광교 역사문화실'엔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로 이루어졌다
바로 박물관 옆에 심온선생 묘와 혜령군 묘 등이 있는데 그 유적지의 유물도 같이 전시한다
2층엔 소강전이라 해서 한국 현대사의 정치·사회·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기증사료로 관을 만들어 놓았다
박정희 정권 때 한 자리 했던 인물인가 보다 별 관심없어 대충 훑어보고 나왔다
중간에 이중환의 택리지가 쌩뚱맞게 전시되어 있는 별 테마가 없는 박물관 같다
사실 광교박물관을 찾으러 이곳에 온 것이 아니고 옆에 있는 심온선생 묘를 찾고자 왔다 그러나 묘를 개방하지 않아 실망했다
심온은 본관은 청송. 자는 중옥. 아버지는 청성백 심덕부이다. 세종의 비 소헌왕후(昭憲王后)가 그의 딸이니 세종의 장인이 된다.
고려말 문과에 급제하여 1414년 형조판서가 되었고, 이후 호조판서·판한성부윤·좌군도총제·이조판서를 역임했다. 태종의 선위로 세종이 즉위하자 영의정이 되었다.
1418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는데, 이때 병조참판 강상인과 그의 동생인 도총제 심정(沈泟)이 금위의 군사를 분속시키면서 상왕인 태종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태종은 분노하여 이들과 함께 병조판서 박습(朴習) 등을 참수하게 했다.
심온은 당시 명나라에 가 있었기 때문에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었으나 주모자로 지목되어 귀국하는 길에 의주에서 체포되어 수원으로 압송된 후 사사되었다. 뒤에 이 사건은 심온이 국구로서 세력이 커지는 것을 염려한 태종과 좌의정 박은(朴習)이 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태종은 정치반대파 정몽주,정도전은 물론 자신의 형제, 처갓집 뿐만 아니라 아들의 처갓집 마저도 도륙을 내며 왕권을 강화시키려 했다 그래서 결국 세종대왕을 탄생시키기도 했으니 정치에서 도의를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일게다
혜령군 이지의 사당 광제사이다
혜령군은 태종의 여덟째 아들이자 선빈안씨 소생이다
이지(李祉)는 어릴 때부터 광패(狂悖)하고 교만하며 방자하여, 글을 읽게 하였으나 책을 펴 보기도 싫어하므로, 이에 활 쏘기를 배우게 하였더니 또 뜻을 두지 아니하고 오직 끊임 없이 함부로 놀기만 좋아하였다.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인근 묘비도 그 파란만장한 삶이 보인다 묘갈은 축산군의 묘갈인 것 같다
1433년(세종 15년), 성절 하례(聖節賀禮)에 불참하는 등 문제를 많이 일으켰으나, 1438년(세종 20년)에는 계품사(計稟使)가 되어 북경에 가 명나라 황제의 칙서를 받아 돌아오는 공도 세웠다.
혜령군의 묘소는 처음엔 수원시 동문 안쪽에 위치 했었는데, 3년 뒤 억울하게 죽은 장인 심온의 묘를 왕자의 묘와 함께 나라에서 관리하길 원했던 세종의 명으로, 영통구 이의동 산234번지 경좌로 옮겼었다.
지금의 묘소는 2008년 광교역사공원 조성을 위해 안효공 심온 묘소의 서쪽 능선 옆으로 묘를 이전한 것이며, 혜령군의 묘역은 부인 무송 윤씨와 쌍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들 예천군과 손자 축산군의 묘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다시 전철을 타고 천안으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