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김여하
"분오야! 거기 아까 늑대 다니더라 빨리 온네이."
"엄마, 늑대는 없고 개 한 마리 있는데."
"그게 늑대다 아이가 빨리 올라 오외라."
땅거미가 내리는 낮과 밤의 교체시간을 '늑대와 개의 시간'이라 부른다. 어둑어둑해질 때 멀리서 보면 늑대인지 개인지 구별이 안 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열 살도 체 못 되는 소녀인 엄마에게 늑대와 개가 구별이 안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살던 지리산 외딴집엔 해만 지면 늑대가 마당까지 와서 왔다 갔다 했었단다. 여염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민간인에게 크게 피해도 안 주었으니 그냥 가축처럼 지냈단다.
내가 어릴 때만해도 밤이면 늑대 우는 소리를 가끔 들을 수 있었다. 워낙은 늑대는 우-우 하고 울지만 때로 어린애 우는 소리, 그 어린애를 어르는 소리까지 곧잘 냈다한다. 겨울밤에 울부짖는 소리는 좀 으스스 했다. 꼭 부엉이 우는 소리와 이중창을 하였다. 그런 밤에는 밤새도록 화장실도 못가고 끙끙거렸다. 늑대 울음소리에는 사나움보다 애잔함이 더 짙었다. 외로운 냄새도 묻어있어서 홀아비인가 하고 생각했다.
어느 가을밤이었다. 홑이불 아래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동네가 시끄러웠다. 징과 꽹과리 소리가 떠들썩하더니 조용하던 시골마을이 들썩들썩 거렸다. 호롱불 아래에서 양말 볼을 깁고 있던 엄마에게
"엄마, 왜 저래? 했더니
"늑대가 인동댁네 돼지를 물고 갔다카더라." 했다.
나는 무서워서 이불을 푹 덮어쓰고
"돼지가 참 무섭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장골 남자들이 횃불을 들고 밤새도록 뒷산을 이 잡듯 뒤졌으나 늑대를 잡지 못했다. 며칠 후 뒷산에서 뼈와 털만 남은 돼지의 잔해를 발견했을 뿐.
어린 마음에 덩치가 작은 늑대가 큰 돼지를 어떻게 물고 갔을까 궁금했다. 아버지에게 여쭤 보았더니 늑대가 돼지를 물고 가는 것이 아니라 늑대꼬리로 돼지 엉덩이를 탁탁 치며 몰고 갔단다. 돼지가 꿀꿀거리며 자기가 스스로 앞장서서 걸어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늑대는 염소를 업고 담을 뛰어넘을 만큼 힘에 세다.
옛날에는 흔하던 늑대였으나 6.25 동란 때 거의 멸종하였다. 60년대 말까지 출몰하던 늑대는 이제 삼팔선 이남에는 없다. 꼭 보고 싶으면 동물원에나 가야 있다. 동물원의 늑대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서성거린다. 무엇이 늑대를 저렇게 불안하게 할까? 겁 먹은듯한 늑대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에 끝없이 쫓기고 있는 현대인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 어디 가서 삭풍 부는 겨울밤 외롭게 울부짖던 늑대의 울음소리를 다시 들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