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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세오름대피소에서 본 한라산 서북능. 자세히 살펴보면 사태나 주능선이 허물어선 모습이 그대로 목격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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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비동산 입구의 사제비약수 | |
7분 뒤 어리목계곡. 아치형 나무다리가 가로지른다. 다리를 건너면서 급경사 나무계단이 시작된다. 곳곳에는 일정 간격을 두고 한라산에서 서식하는 양서류 파충류 버섯류 덩굴식물 야생난 등과 해발고도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으며 이는 정상을 지나 날머리인 영실까지 계속된다.
40분 뒤 생김새가 비범한 아름드리 나무가 시선을 빼앗는다. 전설의 나무 송덕수(頌德樹)다. 수령 500년된 물참나무로 흉년 때 도토리로 사람들을 먹여살려 매년 이 나무에 감사의 제사를 올려 덕을 칭송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1300m 지점이다.
이윽고 숲이 트이고 하늘이 열린다. 송덕수에서 20분. 어리목 코스에서 맨 처음 만나는 오름으로 드넓은 평원이 펼쳐져 보통 이 일대를 사제비동산이라 부른다. 좌측에는 지구상에서 지리 덕유 한라 등 고산지대에서만 자생한다는 희귀목인 구상나무숲이 안내판과 함께 보이고 우측 허허벌판에는 훼손지 복구계획 안내판이 서 있다.
잠시 후 길 좌측에 샘터가 보인다. 사제비약수다. 한 잔 들이켜고 돌길을 따라 걷는다. 정면 저 멀리 이름 모를 오름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대충 해발 1500m 지점이다. 지리산 주능선 높이지만 느낌은 천양지차다. 등로 옆에는 봉긋 솟은 오름을 안내하는 전망판이 서 있다. 쳇망오름 등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오름들과 하늘금이 맞닿은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완경사의 고원을 따라 30분쯤 유유자적 걸으면 중간에 또 다른 둥그스름한 동산이 있는 듯하다. 만세동산이다. 비로소 백록담을 품은 화구벽인 서북능이 모습을 드러낸다. 눈만 없을 뿐 히말라야의 어느 고원에 서 있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이제 윗세오름대피소까진 대략 1.5㎞. 우측으로 윗세오름을 볼 수 있다.
사제비동산과 만세동산 일대가 한라산 눈꽃축제의 장소이며 5~6월이면 털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인 곳이다.
오름약수를 지나 누운향나무와 시로미 등 한라산 자생식물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윗세오름대피소. 원래 어리목~영실 코스가 정상으로 가는 주등산로였지만 정면의 서북능이 무너지는 바람에 지난 92년부터 자연휴식년제에 들어갔다. 사태가 나 주능선이 허물어진 모습이 그대로 목격된다.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통제구역이라고 막아놓고 그 앞에 '윗세오름 1700m'라고 적힌 정상석이 서 있다. 대개 여기서 한라산 정상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다.
하산은 대피소 왼쪽으로 열린 덱을 따라 간다. 물맛 좋은 노루샘을 지나면 또 다시 초원지대. 제주도 사투리인 선작지왓으로 '돌이 곳곳에 서 있는 넓은 밭'이란 의미다. 봄이면 털진달래와 산철쭉이 붉은 꽃의 바다를 이뤄 산상의 정원으로 불린다. 맑을 땐 서귀포 앞바다와 범섬까지 보인단다. 여기서 정면 1시 방향에 보이는 오름이 대피소 인근의 두 개의 오름과 함께 윗세오름을 형성한다.
이 대장은 "오래 전 폭설에 짙은 안개까지 껴 이 일대에서 맴돈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피소에서 정확히 1㎞, 다시 숲으로 접어든다. 구상나무와 현무암으로 조경을 한 대저택의 정원을 거니는 기분이다.
일순간 시야가 트이면서 한라산 최고의 비경지대로 접어든다.
가파른 나무계단과 돌계단이 반복되는 경사진 등로를 내려서면서 신들의 거처라고도 불리는 수직의 바위가 마치 병풍을 펼쳐 놓은 것처럼 늠름하게 서 있는 병풍바위와 오랜 세월 비바람에 풍화된 수백의 기암들이 마치 나한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명명된 오백나한은 하산길 내내 발걸음을 붙잡는다. 한여름 비온 후 기암절벽 사이로 폭포가 형성돼 장관을 이루는 비폭포, 그 너머로 제주도 남서부해안에 떠 있는 형제섬 가파도 심지어는 마라도까지 볼 수 있다.
'살아 백 년 죽어 백 년'이라는 구상나무 고사목도 운치있고, 점점이 숲속에 박혀있는 우윳빛 꽃을 머리에 인 산딸나무 또한 장관을 이룬다. 과연 한라산 최고 비경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몸소 느낀다.
이렇게 선작지왓에서 50분, 다시 숲으로 들어와 급내리막 계단으로 내려선다. 0.8㎞를 앞두고 영실기암에서 내려오는 계류를 만난다. 살짝 건넌 후 계류와 나란히 걷는다.
산행 막판 홍송숲이 일품이다. 일명 영실 소나무숲으로 알고 보니 산림청이 주최한 제2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단다. 1분 뒤 숲을 벗어나면 영실휴게소에 닿는다. 놀랍게도 해발 1280m다.
# '오름의 제왕' 어승생악 등정은 보너스
이번 어리목~영실 코스는 초등학생도 무난하게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쉽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인근의 오름(기생화산) 하나 정도 가볍게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다.
때마침 어리목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오름이 하나 있다. 어승생악(1172m)이다. 육안으로 봐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둔덕같지만 해발고도가 1169m로 360여 개의 오름 중 가장 높고 규모 또한 으뜸이다. 주차장 해발이 960m 정도여서 30분이면 정상에 닿는다. 백록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조그만 분화구도 있고 정상석도 늠름하게 서 있다. 들머리는 관리사무소 옆으로 이정표와 등로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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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세오름대피소 인근에서 만난 까마귀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