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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만 니 와의 영적 관계
나(위광희)와 니 형제는 한 고향에서 태어났고, 후에 여러 해 동안 한 학교 한 반에서 공부했으며, 또한 그는 나의 좋은 친구였다. 우리는 소년 시절의 대부분을 함께 공부하고 함께 놀았다. 초, 중, 고교 시절에 우리는 모두 이름뿐인 교인으로서 머리에는 성경 지식이 가득했고, 밖으로는 기독교 예식을 지키고, 세례도 받고, 성찬도 하며, 예배도 드리고, 성경 읽기와 기도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마음속에서는,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 둘은 세상을 참 사랑했고 허영이 많았다. 그는 그의 심오한 문장을 신문에 투고하여 자주 뽑힘으로써 한 면으로는 다른 사람의 칭찬을 듣는 명예를 얻고, 또 한 면으로는 원고비를 타서 복권을 샀다. 그는 영화 관람을 좋아했고 나는 운동을 좋아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그의 생활에 갑자기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세상을 사랑하던 전의 생활을 벗어버리고 학교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동급생들에게 간증하며 예수를 믿으라고 권했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도 그는 항상 성경을 읽었다.
그러나 시험 성적과 평소 실력은 성경을 많이 읽는 것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많은 동급생들이 주님을 믿었고, 자연히 성경을 보고 기도하는 생활이 생겨났고, 그들의 생활도 점점 변화되었다. 사감 선생님이 인정하는, 항상 교칙을 지키지 않던 골칫덩어리 학생도 예수를 믿고 생활이 크게 변함으로써 학생들의 교칙 위반 처리가 훨씬 줄어들기도 했다. 어느 날 니 형제는 나에게 간증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나는 그날 분명히 내 마음속에 주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였다. 그날이 내가 참으로 구원받은 날이었다.
1924년 나는 남경의 금릉 대학으로 전학했다. 그때 현대신학이 매우 유행하여 나는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얼마 후 니 형제는 남경에 와서 어느 형제 집에서 휴양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곳에서 만나 교제했을 때 그는 내게 한 가지 간증을 했다. 그 교제로 빛을 본 나는 현대신학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버렸다. 그 후 그의 병이 조금 나아졌을 때 나는 그를 청하여 금릉 대학에서 복음을 전하도록 했고, 그 결과 분명한 구원을 받은 두 사람을 얻었다.
1928년,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 내 속에는 전시간을 바쳐 주님께 봉사하라는 인도하심이 있었다. 그러나 내 앞에는 한 가지 시험이 놓여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믿음 생활에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니 형제에게 그와 마음을 같이하는 동역자가 매우 필요할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와 교제했을 때 그는 필요나 인정이나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인해 나를 격려하거나 나오게 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다만 한 마디 “요단 강물이 갈라진 후에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요단 강물을 밟았을 때, 물이 갈라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는 나의 약함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 있었다. 나는 믿음이 부족했으므로 환경에서 다 마련되기를 기다렸다가 나와서 봉사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은 것을 느끼고 전시간을 바쳐 주님을 섬기는 일을 잠시 미루고 8년간 교사 생활을 했다. 우리가 분명히 밝히거니와, 50년 전에 중국 땅에서 니 형제처럼 믿음 생활을 하며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1934년 봄, 니 형제는 상해에서 이기는 자의 집회를 열었다. 오전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하나님의 이 계획에 대하여 교회가 지녀야 할 책임’에 관한 말씀을 전했고, 오후에는 ‘하나님의 이기는 자’에 관한 말씀을 전했다. 이 집회로 인해 나는 계시를 받았다. 그 계시는 나의 영적 생활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집회 가운데 일어나서 내 일생을 주님께 바칠 것을 표시했다.
1935년, 니 형제가 산동 연대에서 성령의 충만을 경험한 후, 주님은 그를 인도하여 복건성의 천주에서 특별 집회를 열게 하였다. 나도 그의 초청으로 그곳에 갔다. 그 특별 집회는 그와 많은 사람이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게 했고, 사람들이 능력을 얻어 담대히 주님의 증인이 되게 했다. 그는 또 승리 생활의 비결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대신 사시는 것임을 교제했다. 그는 우리가 다 익히 알고 있었던 성경 말씀,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를 들어 말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그 집회에 참석한 전원에게 다시 한 번 빛을 발함으로써 이 특별 집회에서 또 한 번 큰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1936년 여름, 니 형제가 복건성의 고랑서에 가서 사역자 집회를 열었을 때 그는 나를 전보로 초청하여 참가하게 했다. 그때 나는 이미 주님의 분명한 부르심을 받고, 교직을 떠나 믿음 생활을 하며 주님을 섬기려고 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그의 전보를 받고 보니 그것이 주님께서 친히 인증하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랫동안 원하며, 갈등하며, 바라던 것이 이번에 완전히 분명해졌으므로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집회에 참석했다.
이 집회에서 그가 우리에게 말한 세 차례의 간증은 그가 여러 해 동안 주님의 긍휼을 입은 경험을 말한 것이었다. 나는 그의 간증을 다 필기했다. 만일 내 기억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그가 세 차례에 걸쳐 공개적으로 간증하며 자기 일을 얘기한 것은 참 드문 일이었다. 그때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이 사람에게서 어떻게 일하셨는가를 보고 감격했다. 이 특별 집회가 끝난 후, 니 형제와 동역자들은 나에게 먼저 광주(廣州)에 가서 일하도록 했고, 후에는 홍콩에 가서 일하게 했다.
1937년, 그는 중국의 서부에 있는 운남(雲南) 곤명(昆明)에서 일하며 교회를 세웠다. 얼마 안 가서 그가 떠나야 하게 되었을 때 그는 내가 그곳에 오기를 바랐다. 나는 즉시 그 느낌을 받아들여 가족을 데리고 곤명으로 갔다. 나는 곤명에서 3년간 일한 후 홍콩으로 돌아왔다.
1941년부터 1948년까지, 니 형제가 광주(廣州), 혹은 홍콩에 왔을 때마다 나는 그에게 찾아가 교제하고 많은 문제를 내놓고 묻고자 했다. 그러나 언제든지 그와 교제한 후에는 많은 문제를 물을 필요가 없게 되어버렸다. 이것은 모든 교제가 다 생명의 공급을 주었기 때문이며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를 생명으로 답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1948년, 상해 교회에 1차 특별 집회가 있었다. 니 형제는 집회 가운데에서 ‘드림’에 대해 교제하면서 교회는 사도행전 2장 끝부분의 생활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 집회에도 주님의 함께하심이 충만했고, 말씀은 강하고 힘이 있었으며, 성령의 능력이 분명히 나타났고, 많은 사람이 소생되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바치기 원했으며, 교회 가운데에서 함께 연결되어 주님께 봉사하게 되었다.
특별 집회가 끝나던 마지막 날 저녁, 나는 먼저 복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니 형제는 가족 앞에서 나에게 한 마디 작별의 말을 했다. “그리스도는 오직 한 분이시지만 오늘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는 관점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고 말았네. 만일 여기에서 우리에게 계시가 없다면 우리도 이와 똑같이 실패하고 말걸세. 오늘 허다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접촉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밀고, 주님의 뒤를 만지고, 손을 붙잡고, 주님의 옷자락을 찢기도 하네. 그러나 생명에 있어서는 주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일세. 주님을 밀던 많은 사람 중에서 혈루병 든 여자만이 생명 안에서 치료를 받았네. 오늘 실지로 벳새다의 그리스도를 알고, 고라신의 그리스도를 알고, 엠마오의 그리스도를 알고, 참으로 경험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적을 보고, 심지어 기적을 행하기도 하며, 엠마오에서와 같은 감동력을 사용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성경을 해석하고, 실지로 마음이 타오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러나 이런 것은 다 중요한 것이 아닐세. 이 말은 내가 위 형제에게 하는 말일 뿐 아니라 주님의 일을 하는 모든 형제자매에게 하는 말일세. 위 형제, 자네가 만일 사람들에게 계시로 본 그리스도를 공급해 주지 못한다면,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의 일은 실패한 것일세. 우리는 항상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하네. ‘내가 이 일에서 중시하고 있는 것은 성경 이해, 지식, 은사, 기적, 권능인가, 아니면 계시로 본, 한 분의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공급해 주는 것인가?’”
얼마 후, 니 형제는 복건성 고령산(鼓嶺山)에서 4개월에 걸친 사역자 훈련을 시작했다. 매일 약 일곱 시간에 걸쳐 그에게서 말씀의 공급을 받았다. 이 집회는 내 영적 인식에 있어서나, 일의 원칙에 있어서나, 생명의 성숙에 있어서나 또 한 번 커다란 전환을 가져왔다.
그곳에서 그가 전한 말씀의 중점은 여러 방면이었다. (1) 우리 영의 사용 (2)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 (3) 성경 읽기 (4) 복음 전파 (5) 초신자 인도 (6) 교회의 사무 처리 등이었다. 또 간증 집회에서는 참석한 모든 사람이 간단한 간증을 했다. 간증 후에 니 형제는 이 간증을 근거로 하여 영적 진단을 하고 각 사람의 영적 문제를 드러내어 해결하는 길을 알려주었다. 니 형제의 느낌은 예리했고, 진단은 정확했으며, 드러난 것은 다 모든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이 훈련 집회가 끝난 후 사역자들이 각지 교회로 갔을 때, 주님의 축복으로 중국의 각 지방 교회에 한 차례 큰 부흥이 일어났다.
1950년 초, 니 형제는 홍콩으로 왔고 오래지 않아 이상수(Witness Lee)형제도 왔다. 하나님의 이 두 종이 동시에 한 지방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한다는 것은 정말 자주 있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분의 축복이 있어, 원래는 삼백여 명이 모이던 집회가 단시일 내에 삼천 명으로 증가되었다. 이것이 홍콩 교회의 첫 번째 대부흥이었다.
얼마 후 니 형제는 귀국을 준비했다. 그때 시국은 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형제들은 모두 그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권했다. 그러나 니 형제의 돌아가려는 의지는 참으로 굳은 것이었다. 사도 바울도 예루살렘에 가기 전에 그곳에 묶임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지만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갔던 것이다. 나는 우리의 형제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는가를 느꼈다. 그의 마음은 무거웠으나 그는 주님과 같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자기를 기다리는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들을 향해 갔던 것이다.
1952년, 니 형제는 진리로 인하여 공산당에게 구속되어 투옥되었고 20년을 언도받았다. 이 20년 동안 우리는 그의 소식을 들을 길이 없었다. 그의 부인이 세상을 뜨기 전에는 2, 3주마다 한 번씩 그에게 가서 몇 분간 만나고 그의 일용품을 공급했다. 그러나 그 자매님은 1971년 11월,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니 형제의 심장은 보통 사람의 반밖에 안 되어 장기간 심장병을 앓았으며 한번 발작이 일어나면 심한 통증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환난 중에서도 그가 평생 사랑하고 섬겼던 주님은 한 번도 그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1972년 여름에 소식을 들음으로써, 그 해 6월 1일에 우리의 형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수고를 그치고 쉬었고, 사역의 효과는 그를 따랐다(계 14:13), 비록 그의 몸은 갇혔었고, 그의 몸은 땅에 묻혔지만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은 온 세계에 무한량하게 전파되었다. 그의 말씀으로 인해 많은 성도들이 공급을 받고, 계시를 보고, 교회가 건축되며, 허다한 성경 진리가 회복되었다.
사망은 생명을 가두지 못한다. 니 형제 자신의 세 편의 간증은 1936년 이전의 부분적인 일들에 불과하다. 또 내가 여기서 밝힌 것은 1928년부터 1952년까지의 일을 극히 간단하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저서 가운데에서 그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밝으며, 하나님께 대한 사명에 얼마나 충성스러우며, 자기를 전혀 아끼지 않고 절대적으로 바치고 순종했는가를 볼 수 있다. 그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중히 쓰신 그릇이었다. 그는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었다(행 13:36). 그는 실지로 우리에게 본이 되고 그 자취를 따라오게 했다(벧전 2:21), 주님께서 다시 이 세 편의 간증을 축복하시기 바란다. 영광을 주님께 돌린다.
1974년 봄 홍콩에서 위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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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믿음이 ㅡ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의 찬송이 퍼지네요
홍해가 갈라져서 건너는게 아니라 믿음의 발길이 홍해를 가라지게 해서 건넜다 : 아멘 믿음이 이깁니다 .
그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중히 쓰신 그릇이었다.
그는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었다(행 13:36).
그는 실지로 우리에게 본이 되고 그 자취를 따라오게 했다(벧전 2:21)
이곳을 찾는 모두에게 동일한 간증이 재현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1
그는 내게 다만 한 마디 “요단 강물이 갈라진 후에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요단 강물을 밟았을 때, 물이 갈라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