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11월 23일, 정말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곽송령이 란현에서 봉군에게 반기를 들고 거병한 것입니다.
곽송령에 대해서는 이전에 이야기 한 바가 있습니다. 그는 쑨원의 추종자였고, 의도를 가지고 봉천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탁월한 능력으로 권력의 중심까지 다가갔습니다. 동맹회 회원이자 청 말 수재 출신이며 민국 성립 후에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이견백이라는 사람은 이때 곽송령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 곽송령은 광동에서 봉천으로 돌아오자 실질적인 병권을 쥐려고 하였다. 암암리에 세력을 기르고 악질 군벌을 쓰러트리고 동삼성에서 진정한 공화국을 세우려는 큰 목적을 가졌다. 그래서 장씨 부자의 신임을 얻는 데 몸을 던진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이후 여러 번 장작림을 제거하려고 기도하였지만 첩첩이 쌓인 장애물이 있어 성공시키지 못했다. 민국 13년 겨울 쑨원은 천진에서 북상하여 국민회의 개최를 제창하였다. 곽송령은 장작림을 위해 환영 대표로 나갔다. 이때 쑨원은 국민회의를 주재하며 곽송령에게 그의 뜻을 밝혔다. 곽송령은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북양 군벌 장씨 부자와 연합하는데 온 힘을 맡도록 했다. 그렇지만 장작림은 무력 통일을 맹신하고 그 계책을 따르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곽송령은 마침내 장작림을 쓰러뜨릴 뜻을 결심하게 된다.
이 글은 1928년에 쓰여졌다가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1947년에야 발표되었습니다. 곽송령과 이견백은 광저우에서 공동으로 쑨원을 추대하여 중국을 진정한 공화국으로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이견백은 곽송령이 봉천으로 간 목적이 은밀히 병권을 잡아 세력을 키우고 악질 군벌을 타도하여 동삼성을 진정한 공화 체제로 만드려는 큰 뜻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호랑이 아가라리로 들어간 것입니다.
일단 당시 봉천 군벌 내에서는 3가지의 파벌이 있었습니다. 녹림파, 사관학교파, 육군대학파 등이었는데 녹림파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존재들이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장작림이 마적 시절부터 따라온 그들은 현재 세력도 약하고 휘하 부대의 숫자도 많지 않았습니다. 사관학교파는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인재들로 강등선, 한린춘, 하주국 등이었고 우두머리는 양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육군대학파는 중국 육군대학을 나온 곽송령이 우두머리였습니다.
양우정은 장작림의 최측근이고, 곽송령은 장학량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면서 거의 모든 사무를 일임한, 장학량의 분신이었습니다. 또한 두 사람의 능력 또한 뛰어나 막상막하였고, 자연스레 둘은 장작림 휘하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앙금이 생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곽송령은 자주 이렇게 중얼 거렸습니다.
"양 제갈량이는 그렇게 많은 유학생을 데리고 있는데, 이는 동북을 말아먹으려는 짓이지."
곽송령은 양우정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즉 주군의 측근을 도려낸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장작림의 관내 입관이었습니다. 장작림은 봉군이 산해관 안으로 입관하는것을 반대했고, 함부로 병력을 일으켜 전쟁을 하는것을 반대했습니다. 장작림은 중국 최고의 통치자가 되려고 했고 양우정도 그 과정에서 한 성의 지배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곽송령은 이것이 많은 인민을 다치게 하고 재산상 피해를 주기에 반대했던 것입니다. 그는 항상 장작림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우리들이 있는 이 동북 지역은, 드넒은 땅이 있어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인구는 3천만이 넘습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것이야 '무지하게' 많지요. 이번 관내 진격은 조곤과 오패부가 이미 참패하여 지난날의 치욕을 설욕하였는데, 다시 거병하여 남하하면 이긴다 해도 뭇사람들의 비난이 되고 진다면 장군님의 명성만 더럽힐 것입니다. 관외에 있으면서 변화를 엿보고 있는 것만 못합니다. 실력을 더 기르고 나서 다시 통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근거지를 봉천에 두고 있는 많은 장령들이 지지를 했지만, 강남 땅을 노리던 양우정은 이에 반대했고 장작림은 양우정과 생각이 같아 결국 봉군은 관내 진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작림의 논공행사도 곽송령의 불만을 샀습니다. 1, 2차 직봉대전에서 장학량과 곽송령의 3,8여단은 가장 많은 활약을 한 부대였는데, 정작 나중에 양우정, 이경림, 장종창, 강등선등이 각각 한 지역씩을 골라 잡을때 곽송령은 그런게 없었습니다. 당초에 그는 안휘 독판이 될 줄 알고 부임 준비를 다 끝마쳤고 인사 배치까지 준비했는데, 믿고 끝도 없이 양우정이 강소 독판 자리를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죄다 꼬여버린 것입니다.
양우정이 자기 욕심 때문이든, 곽송령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했든 어찌되었건 곽송령은 이때문에 크게 분개했습니다. 다만 장학량은 투명한 마음으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곽송령의 참모장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자기 의형제의 마음을 달랬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전해주라고. 장래 형이 원하는 지역이 있으면 흑룡강성이든 길림성이든 선택을 해서 갈 수 있도록 할 테니 말이야."
이런 저런 일로 마음이 복잡한데, 마침 장작림이 일본과 매국적인 밀약을 맺으려는것을 곽송령이 포착했습니다. 1925년 10월, 풍옥상의 국민군과 장작림의 봉군은 모두 일본에 사람을 보내 견학을 하도록 했는데, 국민군 쪽에서는 한복구라는 사람이 나왔고 봉군에서는 곽송령이 나섰습니다. 동경의 제국호텔에서 묶고 있는데 갑자기 곽송령이 한복구의 방으로 오더니 이상한 소리를 했습니다.
"이상하고 야릇한 일이 하나 생겨서 당신과 이야기를 좀 나누려고 합니다."
"무슨 일입니까?"
"이번에 내가 막 동경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일본 참모본부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직원 한 명이 나를 찾아와 몇마니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묻더군요. '당신이 이번에 일본에 온 것은 장작림의 장군의 밀약 체결 임무 때문에 대표로 온 것이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니오. 단지 견학하러 온 것이오. 다른 임무는 없소. 더욱이 밀약 체결이라니 이는 알지도 못하는 일입니다.' 라고 했지요. 그러더니 풀이 죽어 나가더군요.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했습니다."
"그래서요?"
"후에 자세히 들어보니 장작림이 그동안 감히 승인 하지 않고 있던 매국적 21개 조항을 승인하려 한다는것을 알았습니다. 그 대가로 대량의 군사 무기를 얻어 국민군을 공격하려는 것입니다!"
이어서 곽송령은 비분강개해서 말했습니다.
"장작림은 개인적 욕심에 모든 것을 돌아보지 않고 국가를 팔아 먹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기르던 호랑이 고기를 베어 늑대를 제집에 끌어들이는 격이니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나는 양심에 따라 일을 할 뿐이며, 그가 만일 국민군을 공격하면……나는 그를 공격할 것입니다."
곽송령은 이미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풍옥상의 대표인 한복구 앞에서 이런 소리를 한다는것은 풍옥상과 연대를 맺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담화 내용은 비밀을 지켜 주시고,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하지 마시오."
"저는 곽 선생의 인격에 한층 존경심을 표합니다. 제가 돌아가면 분명히 선생의 뜻을 풍옥상 선생에게 전하겠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한복구는 돌아가서 풍옥상에게 이 말을 전했습니다. 당시 풍옥상의 손전방을 공격하기 위한 장작림의 파병 요구에 시달렸고, 별 수 없이 손전방과 연대를 맺으면서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던 차인데 이런 소식을 듣자 크게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신중하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큰 일이다. 우리는 함부로 경솔하게 행동하면 안될 것이다. 곽송령에게 친필 서신을 써 달라고 하고, 신임하는 한두 사람을 보내 같이 천천히 상의하자고 정중히 말하는것이 좋겠다."
한구는 천진으로 가 곽송령에게 이런 제안은 전했습니다. 곽송령은 신임하는 이견백, 친동생인 곽대명등에게 편지를 주어서 풍옥상에게 보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 장작림이 일본 제국주의와 내통하여 나라에 해가 되고, 인민에게 재앙을 안겨 주는 조약을 체결하고, 국민군을 공격하는 것을 우리는 결사반대합니다. 만일 장작림이 국민군을 공격하면 우리는 즉시 장작림을 공격할 것이며, 우리 부대는 국민군 제4군, 혹은 동북 국민군으로 이름을 바꾸겠습니다. 우리 부대는 앞으로 동북을 개발하며 결코 관내의 문제를 묻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경림
풍옥상은 정말 기뻤습니다. 게다가 직예성의 이경림 역시 이쪽에 합류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삼각합작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경림은 일이 성사되면 직예와 열하 두 곳을 자기가 먹겠다고 해 난색이 있었습니다. 곽송령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이렇게 의사표시를 했습니다.
"이경림 선생의 참가로 우리들 공동 행동의 관계가 매우 커졌습니다. 일이 성사되고 나서 지역 방위를 누가 맡느냐, 하는것은 차차 상의 하기로 하고, 현재 지나치게 따지는것은 적절치가 못합니다."
나중에 의논하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일단 서로 서명을 하면서 뜻을 같이하기로 했습니다. 이경림이 갑자기 장작림을 반대하고 나선것은, 곽송령이 이경림의 목숨을 살려준 은혜가 있어서 입니다. 제2차 직봉대전 때, 이경림은 자신의 고향인 직예가 탐나 정해진 전략을 무시하고 천진으로 가서 그곳을 점령하고 본래 직예 성장인 왕승빈을 쫒아내고 자신이 성장 집무실을 차지했습니다. 당연히 장작림은 화가 나서 이경림을 죽여버려야 겠다고 말했는데, 곽송령이 말렸습니다.
"우리 군대가 막 입관했는데, 대장을 죽이면 군심이 동요합니다."
장작림은 일리가 있다 싶어 이경림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이경림은 크게 감동했고, 곽송령이 일을 저지를 기미를 보이자 나서서 말했습니다.
"형님, 아무 걱정 마십시오. 내가 모든것을 돕겠습니다."
이제 풍옥상, 곽송령, 이경림은 삼각 합작을 맺고 서로 논의를 거쳐 큰 일을 저지를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의 기억에 의하면, 곽송령과 가장 친한 사람 ─ 즉 장학량은 어찌하고 있었느냐, 가 궁금한 일입니다.
장학량 본인이 이런 주제에 대해 말을 꺼낸 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기억에 의하면, 장학량은 이미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완전히 알고 있다고 하기도 합니다.
곽송령은 이미 공공연하게 장학량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동북은 땅이 기름지고 자원이 풍부하지. 개발이 가능하여 다시 관내로 들어가 지지 기반 쟁탈 전쟁을 야기할 필요는 없는것 같다. 이것은 나와 이경림 두 사람의 생각인데, 상장군에게 전달해서 고려할 수 있도록 해주게."
"동북은 양우정이 다 망쳐 놓았어. 안휘 강소에서 패배했고 3개 사단 병력을 상실했지. 현재 양우정은 또 상장군 주위를 돌면서 그들의 지지 기반을 치려고 하니, 이 포화에 다시 끼고 싶지 않군. 동북 사정이 좋아지면 이 양우정 놈을 돕는 유학생 출신들을 모두 쫒아내고, 작은 장군님(장학량)이 모든 일을 맡아야 하네."
봉군의 일원이던 하주국은 이렇게 기록했는데,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나고 장학량이 자기에게 이런 말을 직접 했다고 합니다.
장학량은 중간에 끼어 몹시 난처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곽송령이 묘한 짓을 벌이려 한다고 고자질 하는게 옳으나, 의형제를 생각하면 이는 또 못할 일입니다. 의리를 중시 여기는 장학량이 미적거릴때, 곽송령은 빠르게 일을 벌였습니다.
11월 20일, 장작림은 곽송령에게 봉천으로 오라고 말했습니다. 뭔가 의심이 된 곽송령은 즉각 행동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거사 바로 전날에 장학량은 천진에 와서 곽송령을 만났습니다. 곽송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 양우정, 강등선 이 두놈을 독군 직위에서 쫒아내야지. 그놈들은 일 처리를 잘 못하고 있어. 우리가 가서 그들을 쳐내 독군을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싸우기를 원하지 않지만 정리는 해야 하는 법이야."
"아니,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겁니까?"
장학량은 놀라서 말했습니다.
"이런 일을 한다면 나는 가버리겠소!"
장학량은 차를 타고 몰래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산해관 주변에 있는 병사들에게 신속히 방어 병력을 배치할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급히 물길로 나가서 군함 진해호에 탑승했습니다. 바로 그때, 곽송령은 반봉 거사의 전문을 사방으로 뿌렸고, 진해호에서도 이 전문을 접수했습니다. 군함의 화포들은 곽송령 군대에 발포가 가능했지만, 장학량은 머뭇거리면서 발표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저들 모두가 내 부하들이오……."
마침내 곽송령이 움직였습니다. 11월 23일, 그는 100여명 가량의 장령들을 휴업 중인 성냥 공장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분위기는 심각했고 무장 경호원들이총을 들고 순시를 했습니다. 곽송령은 검정 코트를 입고 부인 한숙수와 함께 참석했습니다. 곽송령은 침통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민국이 성립된지 10년. 병화는 끊이지 않고 민생이 도탄에 빠져있습니다. 이렇게 나가다간 곧 나라가 망할 것입니다. 또 까닭없이 군사를 일으킨다면 우리 군인들은 다시 전쟁의 고통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어 곽송령은 감격에 복받쳐 격앙된 표정으로 자기의 정치적 태도를 주장하였습니다.
"상장군 면전을 독차지 하고 있는 양우정이 바로 우리가 타도해야 될 대상입니다! 이 사람은 제멋대로 전횡을 일삼고 있으며 자기보다 난 사람을 시기하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권신이 안에 있으니 대장이 어찌 밖에 나가 공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끝까지 싸워 난관을 돌파하고 양우정, 강등선을 자기들 지역의 독판 자리에서 내쫒아야 합니다. 현재 이들은 강소와 안휘의 인민들에게 쫒겨났고 또 우리는 이들 지지 기반을 수복하여 접수해야 하며, 이들이 기를 쓰고 저항해도 우리는 이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나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국내 전쟁에는 이후 절대 참가하지 않겠습니다. 동북의 토지는 광할하고 자원이 풍부한 곳입니다. 개간에 종사하고 나라를 위해 둔전을 하면 무서운 전쟁이라도 어찌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면서 연대장에게 서명할것을 권유했습니다. 별 수 없이 장령들은 서명을 했고, 그 모습을 본 곽송령은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의 이 거사는 아무 문제없이 꼭 성공을 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실패한다면 나는 오직 죽음으로 대신할 뿐입니다."
부인 한숙수도 일어나 말했습니다.
"장수가 고통스럽게 죽는다면, 저 역시 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어난 병력이 5개 군이었고, 숫자는 7만이라는 대군이었습니다.11월 30일 곽송령은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부대를 동북 국민군으로 개칭했습니다. 곽송령의 반란 소식에 중국의 국내외가 모두 경악했습니다. 사태의 추이가 어찌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첫댓글 정말 혼돈의 시대네요. 판도가 정신 없이 변하는게 참.. 잘 봤습니다
이건 뭐.. 삼국지 이상이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