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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박물관 문화유산 답사회 경북청송지역 답사자료 |
* 일 시 : 2015년 8월 26일 (수요일) 07:30~18:30
* 답사지역 : 경북 청송
* 답사인원 : 45명
* 인 솔 : 회 장 : 고 명 천 010-3889-1288
* 답사경로
마산박물관(07:30) ㅡ 방호정 ㅡ 송소고택 ㅡ 달기약수터 ㅡ 점 심 ㅡ
주왕산 국립공원 ㅡ (주산지ㅡ대전사ㅡ제1폭포) ㅡ 마산박물관 (18:30)
마산박물관 문화유산 답사회
경북 청송지역 답사자료 (2015. 8. 26)
경상북도 청송군 개요
동쪽은 영덕군·포항시, 서쪽은 안동시·의성군·군위군, 남쪽은 포항시·영천시, 북쪽은 영양군에 접한다. 1읍 7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청송군 청송읍 월막리 330번지이다.
이 지역에서는 아직 선사시대 유물·유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현대의 지리적 조건과는 대조적으로 다른 시대의 유물·유적도 매우 적은 편이다.
불교문화재로는 보광사에는 보광사극락전(普光寺極樂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4호), 대전사 보광전(大典寺寶光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2호), 보광전 석조여래삼존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6호), 대전사 명부전 지장탱화(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8호)와 대전사 명부전 지장삼존및시왕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9호), 대전사 주왕암 나한전후불탱화(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0호) 수정사대웅전(水晶寺大雄殿,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3호), 청송이촌리오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4호), 등이 있다.
청송군은 고구려 때 청기현(靑己縣)으로. 신라 때 적선(積善), 고려 때 부이현(鳧伊縣)·운봉현(雲鳳縣)·청부현(靑鳧縣) 등으로 각각 그 이름이 바뀌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청보군(靑寶郡)으로 부르다가, 세종 때 송생현(松生縣)과 합치면서 비로소 지금의 이름이 생겼다.
방호정(方壺亭)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1호.(1984.12.29)
조선 후기의 학자 조준도(趙遵道)가 생모를 생각하는 뜻에서 모친인 안동권씨(安東權氏) 묘소 밑에 건립하고, 자신의 호를 따 이름붙인 정자로, 푸른 바위와 맑은 물이 휘감아도는 벼랑 위의 절경지(絶景地)에 터를 잡았다.
평면은 전면에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대청(大廳)을 설치하고, 대청 뒤에는 2통칸(通間)의 온돌방을 두었으며, 온돌방의 좌측으로는 부엌과 방 1칸을 돌출시켜, 전체적으로는 ㄱ자형의 평면을 이루게 하였다.
자연석 기단(基壇)과 주초(柱礎) 위에 방주(方柱)를 세웠으며,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대청과 서쪽과 북쪽벽의 각 칸(間)에는 하부에 2단으로 궁창널을 끼운 세살 쌍여닫이문을 달았다.
특히 남쪽에는 각 칸에 4짝 들어열개문(위쪽으로 들어 열도록 된 문)을 달아 개울물과 앞쪽의 전망을 시야 가득히 들어오게 하였다. 대청 상부의 가구는 5량가(五樑架)이다. 천장은 연등천장인데 합각 밑 외기(外機) 부분에는 우물반자를 설치하였고
대량(大樑)위에는 대접소로를 놓고 보아지와 첨차로 十자형 대공(臺工)을 짜서 종량(宗樑)과 중도리(中道里) 장여[長舌]를 얹었으며, 종량 위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파련대공(波蓮臺工)을 놓고, 대공의 몸에 직교(直交)하는 첨차를 끼워서 마루도리 받게 하였다.
1619년(광해군 11) 9월 조준도(趙遵道:1576∼1665)가 지은 정자로, 낙동강 상류 절벽 위에 있다.
조준도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자는 경행(景行), 호는 방호(方壺)이다. 44세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생모 안동(安東) 권씨(權氏)의 묘가 보이는 이 곳에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정자의 이름도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뜻에서 ‘사친(思親)’ 또는 ‘풍수당(風水堂)’이라고 하였다.
건물은 ㄱ자형의 평면 구조이며, 측면은 팔작이고 전면은 맞배지붕이다. 이준(李埈)·조형도(趙亨道)·권익(權翊)·신집(申輯) 등의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講論)하고 산수(山水)를 즐겼다. 정자 안에는 《방호문집(方壺文集)》의 판각(板刻)이 보관되어 있으며, 많은 학자들의 제영현판(題詠懸板)이 걸려 있다.
송소고택(松韶古宅)
경북청송 민속자료 송소고택(제63호)로 지정(1985.12.30) 되었다가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250호(2007.10.12)로 지정
경북 북부 민가 양식으로 건물에 독립된 마당이 있으며 사랑공간, 생활공간, 작업공간으로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등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특징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고 또한, 바깥 마당에 담장으로 구획한 내·외담과 대가족 제도하에서 4대이상의 제사를 모실 수 있는 별묘 등 민속학적 가치가 매우 높아 후세를 위한 일보 점진적 관리 차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130년 세월을 건너 현대에 뿌리내린 99칸 심부잣댁의 위엄 당대 대부호의 대명사인 '99칸 기와집' 청송 송소고택은 '덕천동 심부잣댁'으로 더 유명하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협회중앙회 및 매일경제신문이 공동주최한 '2011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됐다. 고택의 규모며 시설, 보존상태, 역사적 가치 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전체적 이미지는 '깔끔함과 단아함'이다.
달기약수터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부곡리
청송읍에서 동쪽으로 3㎞ 거리에 있는 달기약수탕에는 하탕, 중탕, 상탕, 신탕을 비롯해 10여개의 약수터가 개발되어 있으며, 인근에는 주왕산국립공원이 있다.
달기약수는 속칭 달기약물이라 한다. 이 약수의 특성은 빛과 냄새가 없고, 아무리 많이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으며, 마신 즉시 트림이 자주 나는 점이다.
약물을 그릇에 담아두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탄산맛이 줄어 그 맛이 약해지며, 설탕을 타면 사이다맛과 비슷하게 된다. 또 이 물로 밥을 지으면 철분 때문에 색깔이 파랗고 찰밥이 된다.
한 시간에 60ι의 약물이 솟아나는데 사계절 그 양이 동일하며, 아무리 가물어도 양이 줄어들지 않고 아무리 추워도 얼지 않는다. 효능은 빈혈·위장병·관절염·신경질환·심장병·부인병 등에 특효가 있다 하여 각처에서 모여드는 사람들로 연일 장사진을 이룬다.
보통 하탕에 많이 모여드는데 골짜기를 올라감에 따라 신탕·중탕·상탕이 있다. 달기약수의 유래는 조선 철종 때 금부도사(禁府都事)를 지낸 권성하(權成夏)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이곳 부곡리에 살면서, 동리사람들을 모아 수리공사를 하다가 바위틈에서 솟아오르는 약물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이상한 물을 보고 얼른 약수임을 알고 물맛을 보았더니 트림이 나오고 뱃속이 편안하였다고 한다. 이후 위장이 불편한 사람들이 애용하기 시작하여 약수터로 개발하였다.
달기라는 약수터의 명칭은 약수터가 위치한 곳의 옛 지명이 청송군 부내면 달기동이라 달기약수라 불렀다고 한다. 매년 봄 4·5월이면 약물을 먹는 사람이 약효가 더하기를 비는 용천제를 지내왔으나, 이제는 그 명맥이 끊어졌다.
주왕산국립공원
주왕산(周王山 720.6m)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岩山)중에 하나입니다. 1972년 5월 30일 관광지로 지정된 후 1976년 3월 30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의 모습이 돌로 병풍을 친것 같다하여 옛날에는 석병산(石屛山)이라 하였습니다.
주왕산은 매우 깊고 험준하다는 말을 듣고 옛날부터 난리가 났을 때마다 이곳으로 피난을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선유 선사들이 산에 와서 살았다하여 대둔산이라 했고,신라 선덕여왕의 족자인 김주원이 여기에 와 있었다 하여 주방산이라 했다가 신라시대 중국의 동쪽에 있던 진나라에서 복야상서란 벼슬을 지낸 주의 팔대손 주도가 진나라를 회복하고자 장사 수백명을 주축으로 수만군사를 이끌고 남양에서 반기를 들고 일어서니 때는 당나라 덕종황제 정원 15년(신라 소성왕: 서기 799) 이었습니다. 주도가 자칭 후주천왕이라 하고 당시 서울인 장안을 처들어가다가 당나라 군사에게 패전을 당하고 요동으로 쫓기어 압록강을 건너 강원도 원주를 걸쳐 석병산이 매우 깊고 험하다는 소문을 듣고 이 산에 은거하였으나 신라왕이 당나라 왕의 청을 받아 마일성장군을 시켜 주도를 잡게 하니 마일성장군은 자기의 아우인 이성 삼성 사성 오성과 합세하여 대군을 거느리고 석병산을 포위하고 주왕을 잡았습니다. 그후 나옹스님(서기1320~1376년)이 이곳에서 수도할 때 이산을 주왕산이라 불러 지금까지 주왕산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주왕산은 대전사 뒤편에 솟아있는 기암(旗岩)을 비롯하여 이곳 주방천 좌우로 도열해 있는 병풍바위, 급수대, 시루봉, 학소대 등의 기암괴봉과 용추(龍湫)폭포(제1폭포), 절구폭포(제2폭포), 용연(龍淵)폭포(제3폭포)가 한데 어울러져 산세가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주왕산 3대 계곡중의 하나인 절골계곡은 사람의 발길이 적어 아직도 원시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인근에 수 백년 됨직한 왕버들이 물속에 자라고 있는 주산지는 한폭의 수채화같답니다. 또한 월외계곡에는 하늘에서 물기둥이 떨어지는 것 같은 달기폭포가 있으며 주왕산 계곡마다 아름답고 장엄한 경관이 펼쳐져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주왕산국립공원은 세계적 희귀수목인 망개나무를 비롯하여 둥근잎 꿩의 비름, 솔나리, 노랑무늬붓꽃 등 식물자원 888종과 수달, 너구리 등 동물자원 902종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주산지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주산지길 163(이전리 87)
주왕산 한 편에는 약 300여년의 세월이 전해지는 저수지 '주산지'가 있습니다. 깊은 주왕산 자락을 따라 물을 모아 만든 주산지 한가운데는 머리카락을 바람에 살랑이고 있는 굵은 왕버드 나무들도 있습니다.
주산지는 조선 경종 원년1720년 8월에 착공하여 이듬해에 완공한 농업용 저수지입니다. 길이 100m, 너비 50m, 평균 수심 7.8m의 조그만 산중 호수라고 말할 수도 있지요. 이 아름다운 호수는 오랜 역사 동안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바닥을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는 농민들이 믿고 의지하던 저수지 이었습니다.
주산지는 이전리 마을에서 약3㎞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주왕산 영봉에서 뻗어 나온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여 한적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가을, 단풍이 물들면 용이 승천한다는 주왕산 별바위가 왼편에서 지켜보고 있고, 파란 하늘과 울창한 숲의 주산지 경치는 그야말로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창조물이 아닐까 합니다.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붕어의 퍼드덕거림과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버들나무를 쓸어내리는 소리는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평화로움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주산지에 있노라면 세상살이는 잠시 잊고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이 드는가 봅니다.
주산지의 가장 아름다운 배경은 바로 30여 그루의 왕버들 고목이 물에 잠긴 채 자생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국내 30여종의 버드나무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왕버들은 숲속에서 다른 나무와 경쟁치 않고 아예 호숫가를 비롯한 물 많은 곳을 택해 자란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다른 나무의 자생 속도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한 뒤 수백 년간을 자연에 의지하는 듯 유유한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하지요.
주산지는 내(內)와 외(外)가 공존하는 듯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가져다주어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 이기도 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한 인간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계절의 흐름과 불교의 윤회사상에 빗대어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영화인데, 이 영화는 제41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 대상인 최우수 작품상, 2003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로도 유명합니다. 현재 영화촬영세트장은 영화촬영후 환경보호를 위해 철거된 상태입니다.
대전사[ 大典寺 ]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200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건물의 양식으로 보아 조선중기를 넘지 못한 건물입니다. 사찰 경내에는 보광전, 명부전, 산령각 등이 있고 부속암자로 백련암, 주왕암이 있는데 보광전은 목조와가에 맛배지붕으로 다포집이며 정면3각입니다. 일설에는 약 1000여년전 고려태조 왕건 2년에 보조국사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 입산 당시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며 창건할 당시에는 매우 웅장한 사찰이었으나 중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입구의 비석과 부도만이 남아 있습니다.
대전사 건물로는 보광전(普光殿)과 명부전·산령각·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 2기와 사적비·부도 등이 남아 있습니다. 이 중 보광전은 국가지정 보물 제1570호로 지정된 정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에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李如松)이 유정에게 보냈다는 친필 서신을 목판으로 음각한 것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보광전 앞의 석탑은 근처에 흩어져 있던 석탑재를 짜맞춘 것입니다.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과 주왕암(周王庵)이 있다. 이 중 백련암은 주왕의 딸 이름에서 유래하며, 옛날에는 이 암자에 큰 종이 걸려 있어 아침 저녁으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고 하나 지금은 걸려 있지 않다. 주왕암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주방사로 추정되며, 나한전과 가학루·산령각 등이 남아 있습니다.
이여송 친필현판(동산문화재 제 2625호)
임진왜란 시 이여송 장군이 당시 승병훈련을 시키고 있던 사명당에게 보낸 친필이 새겨진 목판이 대전사에 보관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42.5cm 세로 24.5cm이고, 글 내용은 목판음각(50*29cm)되어 있으며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사명대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동산문화재 262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보광전
국가지정 보물 제1570호(2008.07.28)
부동면 상의리 200
보광전은 신라 문무왕 12년(672)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조선 현종 13년(1672)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의 다포양식으로, 공포는 내·외2출목을 이루는데 외부에서는 앙서(仰舌)로 되어 있고 내부에서는 교두형으로 되어 있어 조선 중기 이후의 목조건축 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명부전 지장탱화[ 大典寺 冥府殿 地藏幀畵 ]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200번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8호 (크기 -가로 206㎝, 세로 166㎝)
주왕산 대전사 명부전에 있는 불화로 1806년에 제작
중앙의 본존인 지장보살상은 통견의 법의(法衣)를 입고 손의 모습은 설법 교화의 수인이다. 얼굴은 갸름하고 단아한 외형을 갖추었으며 투명한 두건을 쓰고 있다. 지장보살상 좌우에는 도명존자, 무독귀왕, 6대보살 등 천동·천녀가 등장한다. 특히 신체적 비례미가 8등신으로서 균형을 갖추고 있으며 색채가 선명하다.
지장보살상과 여러 보살상이 입은 가사 문양이 화려하고 필선이 세련되었으며 제작기법이 뛰어난 조선후기 대표적인 불화이다.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200번지 대전사에 있다.
주왕암
대전사 동쪽 비탈진 계곡을 올라가면 안절이라는 별칭이 있는 주왕암이 있는데 이 암자는 대전사와 함께 창건되었다고 하며 주왕의 혼을 위안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 합니다.
문간채인 가학루는 중충 누각으로 되어 있고 기와는 이끼가 그윽히 끼어 오랜 풍상을 보여주며 16나한을 모신 법당 나한전이 있습니다.
자하성 맞은 편 계곡을 건너 약 1,000m지점에 주왕암이 있다.
백련암
대전사 건너편 옥같이 맑은 개울물과 병풍처럼 에워싼 사철나무에 감싸인 백련암은 대전사와 함께 지은 절로 주왕의 딸 백련의 이름을 따서 절 이름을 지었다. 이 암자에는 큰 종이 있어 새벽마다 산야에 은은한 종소리가 스몄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종은 없어지고 오직 그윽한 정서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