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효대사 자취가 있는 소요산 기슭 찾기
◇ 소요산(逍遙山) : 동두천시 평화로 2910번길 406-65 (상봉암동)
- 철쭉축제와 단풍축제가 열리는 경기의 소금강산
소요산은 조선초에 화담 서경덕, 매월당 김시습이 자주 거닐던 산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이 산의 높이는 587m이고, 주봉은 의상대(義湘臺)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답다. 봄철은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을 이루고, 여름철에는 오염되지 않은 계곡에서 한낮 더위를 피할 수 있으며, 가을 단풍은 봄철의 꽃 같다고 할 정도의 그 화려함으로 유명하여 경기의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칭하며, 봄에는 철쭉축제가 열리고, 가을에는 단풍축제가 열린다.
소요산의 유적을 소개하면, 신라 때의 고승인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애틋한 설화가 스며있는 요석공주 별궁지, 654년(태종무열왕 1)에 원효대사가 고행 수도하였다는 자재암(自在庵), 조선 초에 태상왕 태조 이성계가 별궁을 짓고 지냈다는 행궁지 유적이 있다.
처음 소요산 계곡을 오르면 원효폭포가 있는데 이곳이 ‘하백운대’(下白雲臺, 500m)이다. 그 오른쪽에는 원효대사가 앉아 고행을 했다는 원효대가 있으며, 이를 지나면 백운암(白雲庵)이 있다. 백운암을 지나 오르면 소요교가 있고 이를 건너면 자재암이 나타난다.
그 앞에 청량폭포는 ‘중백운대(中白雲臺)’이다. 이곳에는 원효대사가 수도한 곳이라는 옥로봉, 관음봉, 이필봉 등 기묘한 봉우리들이 있다. 옥로봉을 넘어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나한대(羅漢臺, 510m)와 의상대가 있는데 이곳이 ‘상백운대(上白雲臺)’이다.
* 신분증 지참(소요산 입산료)
홍병준(덕문) 추모비
◇ 홍병준(덕문) 추모비 : 동두천 상봉암동 산 32-1번지(동두천시 향토유적 제3호)
홍병준 선생(1864(고종1)~1919)은 자는 덕문으로 경술국치에 분노하던 중 1919년(기미년) 음력 2월 25일, 동두천 장날 정오에 1,000여명의 군중을 인솔하여 선두에서 만세운동을 지휘하다 체포되었다. 선생은 갖은 고문과 악형을 당해 그 형독으로 1923년 5월 17일, 걸산동 자택에서 타계하였다. 후손들이 그의 묘소 옆에 추모비를 세웠다.
◇ 자유수호 평화박물관 : 동두천시 평화로 2910번길 96-63
- 6.25전쟁의 참상과 희생된 국군과 유엔군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안보교육장
동두천시는 2002년 5월 20일, 6.25전쟁의 참상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국군과 유엔군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전 세계에 널리 알려 민족 상잔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 온 국민의 안보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시설로 경기의 소금강인 소요산 기슭에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건립하였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은 4만㎡ 부지에 지상 3층 규모의 건물로 세워졌는데, 건물 내 총 3개의 전시관과 대형 장비류 전시 및 휴식 공간으로 마련된 야외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야외전시장에는 미군이 주력 전차로 사용하던 M48을 개량한 전차, 1950년대 우리 군이 사용하던 함포, 병력, 탄약, 공수투하 등의 임무를 수행했던 수송기, 벨기에군이 기증한 곽사포 등이 전시되어 있다.
1층 전시장은 로비 및 기획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주전시관인 2층에서는 유엔 참전국의 유물 및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3층 전시장에서는 6.25 전쟁에 관한 영상자료를 공개하며, 동두천시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도 함께 조명해 놓았다.
◇ 태조 이성계 행궁지(行宮址) : 동두천시 상봉암동 산 1-1 번지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내놓고 일시 머물던 행궁 터
* 위 치 : 소요산 관광지 주차장 * 교 통 편 : 터미널에서 승용차, 버스로 15분
조선 후기의 우의정 허목(許穆, 1595~1682)은 1663년(현종 4)에 <소요산기>를 지었는데 소요산에 ‘태조
이성계 행궁지’가 있다고 기록하였다.
1398년 태조 이성계는 왕위계승을 둘러싼 왕자들의 골육상잔을 보고 실망하여 왕위를 정종에게 양위한 뒤에 고향 함흥으로 가지 않고, 가까운 소요산으로 숨었다고 전한다.
태조 이성계는 이곳에서 다음해 1399년 7월 8일까지 머물다가 양주 천보산 회암사로 옮겨가서 머물게 된다. 이런 연유로 소요산에는 태조 이성계의 행궁(行宮)터가 남아있다고 전한다.
◇ 요석공주 별궁 터 : 동두천시 상봉암동 산 1-1 번지
- 신라의 요석공주가 아들 설총과 원효대사를 찾아와 기거하던 별궁터
신라 태종 무열왕의 왕녀 요석공주(瑤石公主)가 소요산에서 수도하던 원효대사를 사랑하여 아들 설총과 함께 찾아와 이곳에 기거하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 1663년(현종 4)에 우의정 허목(許穆, 1595~1682)은 <소요산기>에 요석공주 궁 터는 ‘원효폭포에서 서북쪽 80장(丈)에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현재 별궁 터의 위치는 확실치 않으나 소요산 관리사무소 동쪽 약 20m 지점에 ‘요석공주 별궁지(瑤石公主別宮址)’라고 쓰인 작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 원효폭포 : 동두천시 상봉암동 산 1
- 원효대사가 수행 중에 휴식을 취하던 작지만 아름다운 폭포
소요산 입구인 일주문을 지나면 좌측으로 아담한 원효폭포가 보인다. 원효대사가 원효대에서 고행 수도를 하던 중에 자주 내려와 휴식을 취하던 곳으로, 폭포 옆에는 작은 동굴이 있어 신비로워 보인다.
동굴이 있는 바위 위는 원효대(元曉臺)로 불린다. 원효대에는 수행 하던 원효대사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자살을 하려고 절벽으로 뛰어내리려는 순간에 문득 도를 깨우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원효폭포에 가기 전에 우측에는 속리교가 있다. 이 다리를 중심으로 왼편은 자재암 코스이고, 오른편은 공주봉 코스다. 속리교는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효대사는 이곳의 오래된 무덤에서 잠을 자다가 잠결에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언제 이곳에서 고행 수도를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 원효굴 : 동두천시 상봉암동 산 1
- 원효대사가 수행하였다는 굴
원효폭포 오른쪽에는 원효대사가 원효굴과 그 위로는 고행 수도 하였다는 원효대(元曉臺)가 있다.
원효굴과 공주봉에는 원효와 요석공주 두 사람의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스님을 만나러 요석공주가 천리 길을 찾아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효는 공주를 따라 다시 서라벌로 환궁하지 않았다.
◇ 자재암(自在庵) : 동두천시 상봉암동 산 1 (동두천시 향토유적 제8호)
-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
자재암은 신라 654년(무열왕 1)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자재암이란 절 이름은,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만난 뒤 관음보살이 변신한 아리따운 여인의 유혹을 설법을 통해서 물리쳤다. 다음날 원효대사는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 사찰을 지어 무애자재인(無碍自在人)을 상징, 자재암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고려초 974년(광종 25)에는 각규(覺圭)스님이 태상왕의 명으로 이 절을 중창하였다. 조선말 1872년(고종 9)에는 원공(元空)과 제암(濟庵)이 중창하여 영원사(靈源寺)라고 하였다. 대한제국 때인 1907년에는 화재로 인하여 만월보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자 1909년 성파(性坡)와 제암이 절을 중창하고, 다시 자재암이라 하였다.
6·25전쟁 때 이 절은 다시 소실되었으나, 1961년에 진정(眞靜)스님이 대웅전을, 1968년 성각(性覺)이 요사채를, 1977년 법조(法照)가 삼성각을 각각 지어 현재의 당우(堂宇)를 완성하였다.
이 암자는 소요산을 찾는 관광객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