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면담 대상자: 덕혜옹주
나: 안녕하세요~ 일단 면담을 하게 돼서 매우 반갑습니다 사실 얼마 전에 덕혜옹주와 관련된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지 못 했던 점들을 알게 되었고 더 궁금한 점들이 있어서 면담을 하고 싶었습니다.
덕혜옹주: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나: 그럼 질문을 드릴게요 우선 고종황제의 막내딸로서 어릴 적부터 고종황제의 귀여움을 받으면서 자랐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8살이 되던 해에 고종황제가 갑자기 승하하게 되었고 보호자이자 아버지인 고종황제를 잃게 되었죠, 그리고 14살 때 도쿄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덕혜옹주: 당시 일본으로 유학 가는 제 옷차림은 조선의 왕녀이지만 일본식 옷인 후리소데 차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도저히 웃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저의 어머니, 오빠 순종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점과 어릴 적부터 제가 살아온 곳을 강제로 떠나야 하는 사실을 받아들어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저를 완전히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한국에서 저를 따라온 궁녀들마저도 돌려보냈습니다 그렇게 저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와서는 여자 학습원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제 학교생활은 매일 외로웠습니다
나: 의지할 곳 없이 일본에서 지내느라 힘들었겠어요 다음 질문은 도쿄로 유학을 간 뒤 순종도 돌아가시고 17살이 되던 해 어머니인 복녕당 양귀인이 유방암으로 죽게 되어 귀국하셨지만 복상 문제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상복을 입지 못하시고 천담복(3년상 후에 100일간 입는 옥색의 조선옷)을 입었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천담복을 입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뭔가요?
덕혜옹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세상에 이제 제가 의지할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옹주 신분인 저는 귀국을 해도 어머니를 마음대로 만나기도 어려워서 더욱 어머니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러 왔을 때 옛날 가례에서는 3년 복상을 해야 하지만 일본 궁내성에서 제정한 왕공가규범에 따라야 했고 왕공가규범에 의하면 어머니는 저의 생모이지만 귀족이 아니고 저는 왕공 족이기 때문에 복상을 하지 못하고 상복도 입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천담복을 입고 어머니를 떠나보냈습니다 그때 당시 어머니의 죽음을 견디기 힘든 상태였지만 저는 장례식 이틀 후 너무 빨리 도쿄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 어머니의 사후 1주기에도 2주기에도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나: 마지막 질문입니다 덕혜옹주께서는 1926년 1월 26일 51세의 나이로 드디어 고국으로 귀국하시게 되었는데 그때 마음이 어땠나요?
덕혜옹주: 저는 3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지만 사실 그때 저는 어디로 온 것인지 몰랐습니다 당시 저는 이미 병을 오랫동안 앓고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귀국하고 다행히 저는 간호를 받으며 상태가 좋아져서 일본에 있는 오빠와 윤비에게 자필로 한글 편지를 써서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계절 꽃이 피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낙선재에서 일생을 마무리했습니다
나: 오늘 면담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