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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예수를 주로 받으면
Text Cls 2,6-19
(6)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1)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16)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1. 이제 20일 정도 남은 총선을 앞두고 세상 분위기가 어수선합니다. 소망스러운 얘기는 하나도 없고 그저 국민들로 하여금 걱정하게 하는 얘기들만 난무하고 있습니다만, 주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그런 얘기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세상의 진정한 주관자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각자가 성도의 본분을 다하며 살다 보면 반드시 주님의 뜻대로 된 세상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왕으로 섬기는 주의 나라 백성입니다. 사람 쳐다보거나 세상 정치권력에 눈길을 빼앗기지 말고 우리의 왕이신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의 혼란한 세상을 이겨내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1주일 삶을 시작하신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죽이려는 세력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는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날을 기리는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날 예언자들의 예언했던 것과 같이 ‘평화의 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날 군중들이 예수님을 향해 외친 말은 ‘호산나’였습니다.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여주소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호산나라고 외친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부르며 구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신 후, 갑작스럽게 체포되시고 또 매우 예외적으로 체포되신 바로 이튿날에 십자가형을 받아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단순한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로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제물로서의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미리 아시고 미리 아신 대로 그렇게 십자가의 길로 가심으로써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즉,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구원자라고 선포하신 날인 것입니다.
종려주일이며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오늘 하나님께서는 주신 본문 골2,6-19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이 종려주일에 주님은 우리에게 ‘내가 구원자다. 나를 믿고 따라오면 반드시 구원받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두에게 이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 본문 6-8절은 예수님은 구원자가 확실하니 예수님을 붙들고 의지하는 데 있어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그 누가 그 어떤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믿음에서 흔들리게 하도록 버려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수 안에서 행하고 예수 안에 뿌리를 내리며 예수 위에 세움을 받을 것이요, 오로지 넘치도록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6)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사탄이 하는 모든 활동의 궁극적 목표는 주님이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사실을 철학적으로 풀면서 믿지 못하게 하고, 때로는 헛된 속임수를 동원하여 믿지 못하게 함을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철학이란 정신과학으로 어떤 사상이나 관념을 논리적 이론으로 설명하는 학문인데, 주님의 구원하심도 그런 이론 중 하나처럼 해석하고 해설하려는 시도입니다. 또한 헛된 속임수란 미신적 종교 행위를 의미합니다. 정령숭배(애니미즘)나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숱한 신 숭배, 죽은 사람을 신 또는 귀신이라 믿는 샤머니즘 등이 이 미신적 종교 행위에 속합니다.
철학은 신앙을 왜곡시키며 인간의 지혜를 들어 하나님의 지혜와 대립하게 하며 인간의 상상력을 즐겁게 하면서 사람의 믿음을 파멸시킵니다. 철학 원리들을 기독교의 원리들과 혼합하는 것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진정한 믿음에서 떠나게 합니다. 특히 유대인 교사들은 모세의 율법을 그리스도의 복음과 결부시켜 율법주의를 지속시키려고 애썼습니다. 그런 경향은 오늘날의 사람들에게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은 초월적인 것들에 대한 호기심을 그럴듯한 사변으로 자극하는 지식의 유희에 불과합니다.
헛된 속임수인 미신은 이 세상에는 예수님 말고도 많은 신들이 존재한다고 가르칩니다. 대표적인 것이 죽은 사람을 신 또는 귀신이라는 주장입니다. 유령, 혼령 등에 대한 숭배는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귀신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죽은 사람의 혼령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게 믿는 것은 본문의 표현대로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아서’ 믿는 속임수요 유치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유치하고 헛된 속임수는 지금도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미신에 현혹된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이런 속임수는 침투하여 신자들을 미혹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탄이 영혼을 노략하는 전략은 사람을 속이고 나아가 이 속임수를 통해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그는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옛 뱀”(고후11,3)이며. 영혼을 노략하고자 노리는 사탄의 대리자들이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롬16,18)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잠언에서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잠1,10)고 하였으며 약1,16-17에서는 “(16)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이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있는 자들의 아첨 때문에, 그리고 악의 주관자들과 행악자들의 그럴듯한 외모와 거짓들에 의해서 파멸당했습니까! 예수를 주로 받으셨습니까? 그러면 구원자는 그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 예수님만으로 충분합니다. 예수님 외에 그 어떤 것들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려주일에 죽음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면서 자신이 구원자이심을 선포하신 오직 한 분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예수님의 구원하심에 감사만 하면 됩니다.
3. 다음, 본문 9-15절은 예수님께서 구원자로서 하신 일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구원자로서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셨는데, 그렇게 고난의 길을 가시면서 하신 구원 사역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9-10절은 에수님께서 구원자로서의 자격을 가진 유일한 분임을 가르쳐줍니다. 그 자격 첫 번째는 “(9)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입니다. 이 말은 몸을 가지신 그리스도 안에 신적 존재의 충만이 있다는 뜻입니다. 자격 둘째는, “(10)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입니다. 성도가 심령에 영접한 그리스도는 신성으로 충만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는 영접한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충만하여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신성의 충만함을 줄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10,8-9절에서 친히, “(8)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께서는 행4,12에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구원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자격자이시기에 종려주일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던 예루살렘으로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11-15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하신 사역의 내용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11절에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게 한다고 하였으며, 12절에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게 하였다 하였고, 12-13절에 반복하여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라 하였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신 것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신 것(13절)이요, 사람을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 증서를 지우고 제하신 것(14절)이며,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십자가로 이기시어서 그들을 무력화하였다(15절) 하였습니다.
‘할례’란 본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 곧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민의 표적으로 주신 것으로 육체의 일부인 양피를 베는 행위입니다.(창17,9-14) 곧 선민의 상징입니다. 대속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를 받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셰례’는 구약의 정결 의식에서 온 것으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사는 ‘중생’을 의미합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 장사된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의 모든 육신의 것을 묻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모든 법조문 증서를 지우신 것으로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에 예속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이기신 것이니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모든 죄를 사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주로 받아, 주님과 주님의 구원 사역을 믿고 주님을 구원자로 영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민이 되게 하는 것이요, 중생하게 하는 것이며,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삼상17장에는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야기가 있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며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저주합니다. 다윗은 칼과 창과 단창이 아니라, 오직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골리앗이 가까이 오자 다윗이 주머니의 돌을 물매로 던져 그 이마를 맞힙니다. 골리앗의 입장에서는 쬐끄만 돌이 날아와 이마에 박혀 죽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다윗의 승전이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 것에 있었듯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믿기만 하면 성민이 되게 하고 다시 태어나게 하며,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 모두 이 종려주일에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외쳐 이 주님을 주로 받도록 하십시다.
4. 사도께서는 이런 것들을 설명하시고 16-19절에서 “(16)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고 명하십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은 모두 유대 율법주의적 요소들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당시 골로새 교회에 분란을 일으켰던 이단들의 가르침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새 언약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척하고 여전히 할례를 비롯하여 먹고 마시는 것, 절기, 월삭, 안식일 등의 히브리 정결 규례, 의식 규례 등을 준수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하니, 모든 식물이 깨끗하다’라고 말씀하심으로(막7,18-19)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공포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절기 준수는 늘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었습니다. 절기 준수의 가장 큰 핵심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구속사의 흐름 가운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향하여 베푸신 그 은혜를 늘 기억하면서 그분께 예배드리는 삶에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이러한 절기에 내포된 의미보다는 절기 의식과 형식 자체만을 강조하는 오류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막2,27-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종려주일의 주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완전하게 갖추시고 온전한 구원을 누리면서 진정으로 선한 일(단순한 선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을 할 수 있게 하려고 ‘호산나’ 외침 소리를 들으며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이 믿음과 이 은혜가 종려주일의 주님을 주로 받는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