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안씨 가승보(竹山安氏家乘譜)의 찬자 안명유(安命鰇.1734~1789)의 친필 책자가 한옥션 매물로 올라 있다.
1896년 신죽산안씨 가승의 동국안씨원파구보(東國安氏源派舊譜) 안명유(安命鰇.1734~1789) 선생이 잘쓴 글씨로 정서한 美本 친필본 <주문지결(朱文旨訣)> 單冊 hanauction
이 친필과 문제가 되는 동국안씨 원파구보가 들어있는 가승 필사본의 필체를 비교해 보면 필사본은 안명유 친필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가승의 안명유 서문에도 가승 내용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만 동국안씨 원파구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으므로 이것은 후대에 필사하며 추가한 것이 확실하다.
안윤채/안중력은 1900년대 초의 사람인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으므로 원파구보에 나오는 병신년도 1896년이 맞다.
원파구보가 일부 주장대로 1776년 것이라면 ..... 타임 머신이 존재한다는 결정적 증거.... ----------------------------------------------------
안씨동원보(安氏同源譜)는 놀랍게도 타임머신이 존재한다는 결정적 증거 광주(廣州)라는 지명은 고려 태조 23년 (940년)에, 죽산(竹山)이란 지명은 조선 태종 13년 (1413년)에 처음 생겼다.
하지만 안씨동원보를 보면 신라 경문왕 때인 864년에 이미 광주군(廣州君), 죽산군(竹山君) 봉군(封君)을 하였다. 이것은 신라말에 누군가가 고려 초와 조선 초를 다녀가서 지명이 그렇게 될 줄 미리 알았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이런 일은 미래를 갔다 올 수 있는 타임 머신이 있을 때만 가능하므로 당시에 그런 것이 분명히 있었다.
안씨 족사를 보면 타임 머신이 수시로 출현했다.
신라말에 고려말 관직을 지내자면 타임머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타임머신 성능이 좀 더 좋았으면 신라말 사람이 영의정, 이조판서는 물론이고, 국무총리, 외교부 장관에 심지어 대통령을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와서 수도 경주에서 머나먼 변방 송악에 사는 사람들이 신라시대 골품제 때문에 중앙 관직에 나가자면 타임머신 타고 다른 시대로 가는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타임머신 성능 때문에 멀리 가기 힘들어 국무총리는 못 하고 고려말 관직을 지낸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고려말 족보에 조선말의 사정이 반영되어 있는 것도 고려말 누군가가 조선말을 다녀간 때문이다.
안윤채/안중력은 고려말 족보를 가지고 자유자재로 1770년대와 1920년대를 왔다 갔다 하였다.
타임 머신을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는 성씨는 안씨 뿐이다.
安氏之興 其無窮乎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