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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도성인 천국
“성경은 천국이 정말 멋지고 영광스러운 일종의 도성과 같다고 말씀한다. 얼마나 많이 성경이 천국을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이라고 말했는지는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 도성은 하나님이 직접 친히 만드셨다고 말씀한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11:10) 왕의 보좌와 법정이 있는 왕도는 대개 다른 도성보다 훨씬 더 위풍당당하고 아름답다. 천국은 하나님의 왕도이다. 천국에서 온 천지의 왕이 거하시며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히 12:22는 천국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완전한 도성에서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천국에서야 비로소 완전한 행복을 느끼도록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지으셨다고 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복을 추구하고 누릴 수 있는 이만한 능력을 주셨을 때는 의심할 나위 없이, 이 행복의 용량을 다 채울 수 있는 내용물도 마련해 놓으셨을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을 목적으로 삼도록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이 땅의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우리 마음은 또 다른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이 땅의 행복은 지나가는 것이고 불충분하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사랑을 항상 공급받는 천국의 행복은 쇠퇴하거나 중단되지 않고 언제나 충만하다.”
“그러니 천국에서 하나님을 보는 이들, 다함없는 원천에 이른 이들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이들은 충만한 만족을 주는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이 기쁨을 경험한 이들은 다른 어떤 기쁨도 원하지 않고 원할 수도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기쁨을 무한히 누린 후에도, 그분의 얼굴을 보는 것을 조금도 따분해하거나 이 기쁨이 무뎌지지 않을 것이다. 천국에서는 이 기쁨을 늘 새롭고 영원토록 강렬하게 느낄 것이다. 이 기쁨은 전인의 모든 기능을 언제나, 최고로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이 세상의 쾌락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을 때가 많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가장 오래가는 기쁨들도 천국의 좋은 것과는 비교조차 안 된다. 에드워즈는 천국에서의 삶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의 끝없는 창공을 날고 무한한 바다에 뛰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해 쉽게 권태로움을 느끼고, 무감각, 탈진, 정체를 겪는다. 천국의 기쁨에는 이런 둔화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천국에서는 우리의 감각이 최고로 고양되어, 최대한의 기쁨을 영원토록 맛보게 될 것이다. 기쁨 위에 기쁨을, 즐거움 위에 즐거움을 영원무궁토록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예비된 거처
“성경은 여기서 천국에 있는 집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애쓰라고 모든 이에게 권고하고 있다. 천국은 하나님의 집이고, 하나님의 성전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 문지가라도 좋다고 말할 만큼 하나님의 집에 거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이 땅에 있는 왕의 궁정에서 한 자리를 얻거나 왕궁에 거처 하나를 얻는 것이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한다면, 특히 왕의 자녀 된 신분으로 왕궁에 거하는 것이 큰 특권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천상의 궁전에 우리를 위한 집과 거처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더 큰 영광이겠는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허락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영광과 명예겠는가?”
에드워즈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천국에서 충만한 만족 가운데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도록 의도하셨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집이 의미하는 것이다. 천국의 집은 자기를 과시하는 부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풍성하게 주신 관대한 선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온갖 고통, 가난 그리고 결핍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에게는 하나님이 내세에 풍성한 선한 것들과 이 땅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특권’을 누리게 하실 것이라는 확실한 소망이 있다(고전2:6-10).
“천국은 하나님이 자기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다. 성경은 하나님에게 가족이 있다는 식으로 말씀한다. 이 가정에 속한 어떤 이들은 지금은 이 땅에, 집을 떠나 외국에 살고 있지만, 모두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엡 3:14-15는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에 대해 말씀한다. 천국은 하나님이 자신과 자기 자녀들을 위해 마련하신 장소이다. 하나님에게는 많은 자녀들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예비된 장소가 바로 천국이다. 그래서 권속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2:19). 하나님은 호주 또는 가장이시고, 천국은 하나님의 집이다.”
우리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 가족으로 모여,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기쁨에 겨워 송축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과 완전한 교통과 교제, 형제 자매 상호간의 완전하고 친밀한 교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위해 예비된 집에 들어가 예기하지 못한 놀라운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천국에서의 섬김
천국이 예배 드리는 곳이라고 해서 천국이 재미없고 무료하고 지루한 곳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천국은 사람들이 가장 완벽한 상태가 되어 이상적으로 살아가는 곳인데, 천국은 수동적인 곳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곳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활동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아무 활동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활동할 때, 더욱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계획을 성취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 섬길 때, 자신의 본성에 가장 적합하게 활동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고용되었고, 이것이 사람을 동물과 가장 분명하게 구별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활동이, 사람의 창조 목적에 가장 부합하고, 사람의 본성 자체와도 가장 일치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때만큼 합리적으로 행동할 때는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반대되는 모든 것이 이성에 반대된다. 따라서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람의 행복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는 것이다.”
사람 속에는 어떤 것을 생산해 내려는 본성이 있다. 좋은 결과물을 이루어 냈을 때 기뻐한다. 이 땅의 일에서 맛보는 만족감은 천국 생활의 전조가 된다. 천국에서의 삶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일이 충만한 열매를 맺는, 진정으로 생산적인 삶이 될 것이다.
“정당하고 올바른 것을 행할 때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천국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큰 기쁨을 얻을 것이다. 성도들은 공평을 기뻐한다. 천국에서 성도들은 옳고 의로운 것에서 매력을 발견하기 때문에, 옳고 의로운 것에 완전한 사랑을 쏟을 것이다. 천국에서 성도의 영혼은 자체의 성격상, 완전히 옳은 것에만 끌릴 것이다.”
“천국의 성도들은 자신들을 구속하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들을 통치하시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의 구속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더 분명하고 예민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성도들은 천국에서, 자신들이 구출된 멸망이 얼마나 끔찍한지 훨씬 더 분명하게 느끼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얻어 주신 행복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경험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천국에서의 영광의 단계
에드워즈는 이 땅에서의 우리 삶이 천국에서 평가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후 9:6에 기초한 ‘영광의 단계’라는 설교에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한 신자들은 해이하게 산 신자보다 더 큰 영예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장래에 각 사람에게 행한 것을 따라 보상해 주실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마 16:27과 다른 여러 곳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그리고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각 사람이 행한 것의 성격과 질을 따라 보상해 주실 것이라는 의미 말고는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의 보상은 사람의 행함에 비례할 것이다. 악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악한 행위에 비례하여 형벌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아주 명백한 사실이다. 그래서 성경이 심판 날에 어떤 이들은 다른 이보다도 견디기 쉬울 것이라 말씀하는 것이다. 마 5:22에서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처벌의 등급을 통해 지옥의 형벌에도 차이가 있을 것임을 말씀하셨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보상은 행위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전 3:8에서 경건한 자들의 수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한 것이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서 모두 똑같은 지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반해, 에드워즈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성도가 이 땅에서 행한 선행을 천국에서 보상해 주실 것이라고 여러 번 약속하셨다. 그리스도는 냉수 한 그릇 준 것조차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만약 선행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상을 받는다면 이런 말씀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선한 일을 거의 하지 않은 사람이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과 내세의 행복을 똑같이 누리게 된다면, 예수님의 말씀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는가? 만약 어떤 차별적인 추가적 행복으로 보상받지 못한다면, 선행에 대한 보상이란 존재할 수 없다. 추가로 주어지는 것이 없다면, 더 얻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천국의 상을 추구하라는 것은 성경이 분명하게 명령하는 의무이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6:19-20). 천국에서 받을 상을 늘리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보물을 땋에 쌓아 두지 말라는 것은, 세상에 마음이 뺏겨 자족할 줄 모르고 재물을 쌓고 세상의 부를 계속해서 늘리지 말라는 의미이다. 부디 이렇게 하지 말고, 천국에서 받을 상을 늘리고 보물을 쌓으라고 말씀하신다. 날마다 선을 행하고 더 풍성히 행함으로, 천국에서 받을 상을 증가시키도록 애써야 한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눅12:33).
신자가 이 땅 위에서 어떻게 살았느냐는 천국의 자위에 영향을 미친다. 주님을 위해 살면 살수록 하나님은 천국에서 더 많은 상을 주실 것이다. 매일의 삶, 잠깐, 심지어는 매초의 결정이 천국에서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생각, 시청하는 프로그램, 우리가 나누는 복음적인 대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냉수 한 잔을 준 것, 방황하는 신자에게 던진 교정과 위로의 한 마디, 바쁘게 일하는 중에 외마디 기도조차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중요하게 셈하고 계신다.
천국에서 정확히 어떤 식으로 재배치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존경받는 지도자들이 천국에서는 우리가 이름조차 모르는 성도들보다 낮은 자리에 앉게 될지도 모른다. 천국의 지위에 대해서는 흔히 생각하는 계산법이 완전히 틀린 것일지 모른다. 결국 주님이 우리를 어디에 앉히실지 알지 못한다. 단지 우리가 아는 것은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원한 의의를 지닌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땅에서의 매순간의 삶이 헤아림 받을 것이다.
사랑의 나라인 천국
에드워즈가 ‘천국은 사랑의 나라이다’라는 설교에서 밝혀 준 것처럼, 천국은 사랑이란 축을 중심으로 해서 돈다. 이 설교에서 에드워즈의 문장력은 가히 최고조에 이른다. 주의를 즉시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심대한 영향을 주어 천국에 대한 기존의 생각에 큰 변화를 준다. 핵심 사상은 하나님은 천국에 거하시며, 하나님의 존재의 본질인 사랑으로 천국을 가득 채우신다는 것이다. “천국은 가장 높으신 분의 왕궁이요 접견실이다. 천국에 계신 가장 높으신 분은 모든 거룩한 사랑의 원인이요 원천이다. 하나님은 본질상 어느 곳에나 계신 분이다. 천국은 우주에 있는 다른 어떤 곳보다 더욱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한 하나님의 거처이다.”
에드워즈는 하나님과 천국의 광대함을 정확히 포착해 내고 있다.
“천국에는 사랑스러운 대상만 있다. 천국에는 혐오스럽거나 더러운 사람이나 사물이 없다. 계 21:22,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되,“ 천국에는 자연적 또는 도덕적 결함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천국에 있는 모든 것은 보기에 사랑스러운 것이다. 천국에 거하시면서 자신을 영광스럽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은 무한히 사랑스러운 분이시다. 천국에는 영광스러운 아버지와 영광스러운 구원자와 영광스러운 성령이 계신다. 아버지가 사랑스러운 것처럼, 모든 자녀도 사랑스럽다. 몸의 머리가 사랑스러운 것처럼, 몸의 모든 지체도 사랑스럽다. 천국에는 사랑스럽지 않은 천사가 없다. 성도들로 구성된 천국의 교회 안에는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비그리스도인도 거짓 신앙고백자도 없다. 천국에서는 모든 대상이 서로 사랑한다.”
내세 천국의 결정적인 정체성은 사랑이다. 천국에는 이 땅에서와 같은 사랑의 오염이나 약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약화됨 없이, 천국에 거하는 모든 이들에게 흘러들어가는 이 사랑이 바로 천국의 근본 원리이고, 천국을 정의하는 특징이다.
“천국에 있는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다.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는 사랑은 완전하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고 무한하며 완전하다. 천사들과 성도들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사랑의 종류에 있어 완전하며, 사랑의 성격에 있어 완전하며, 죄 없다는 점에서 완전하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들이 사라진다. 사랑의 실천을 방해하는 어떤 교만이나 이기심 없이, 그들의 마음은 사랑으로 충만하다. 이 세상에서 마음 속에 겨자씨 하나 정도처럼 적게 있었던 사랑은 천국에서 큰 나무처럼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신적인 사랑의 작은 불꽃만을 가졌던 영혼이 완전히 변할 것이다. 그래서 흑점 하나 없이 완전히 환하게 비치는 태양처럼 영혼은 사랑의 불길이 될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마음에 어떤 적개심이나 미워함이나 냉담함이나 죽어 있음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자기보다 더 영광 중에 있는 천사들이나 성도들에 대한 어떤 시기심이나 자기보다 더 낮은 자라에 있는 자들에 대한 어떤 멸시도 없을 것이다.”
이보다 더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도 없을 것이다. 이 땅에서는 힘겹게 자라나는 사랑의 ‘겨자씨’가 천국에서는 ‘큰 나무’로 자라날 것임에 틀림없다. 이 땅에서 떠나지 않는 죄, 상처를 주는 환경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과 격렬하게 싸우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기 위해 애썼던 영혼들은 ‘신적 사랑의 작은 불꽃’이 ‘완전히 환하게 비치는 태양’으로 변화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어떤 것도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손상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 설교가 질투의 문제들을 많이 언급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질투는 왜곡된 방식으로 사랑을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는 악한 힘을 갖고 있다. 마음 속에 질투가 자리 잡고 있으면, 긍정적인 감정이 마음에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 질투를 개인적으로 경험했을 에드워즈는 설교를 통해 장차 천국에는 이 땅의 옹졸한 경쟁과 신랄한 시기심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깨우쳐 주었다.
“천국에서는 낮은 영광을 가진 자들이 자기보다 높은 영광을 가진 자를 보고 자기 행복이 작다는 생각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일이 없다. 오히려 반대로 기뻐한다. 모든 성도는 서로의 행복을 기뻐한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완전히 이타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하고 강력한 사랑은 사랑받는 자가 잘되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한다. 만일 사랑이 완벽하다면 사랑받는 자의 행복이 커질수록 사랑하는 자의 기쁨도 더 커진다. 말하자면 사랑받는 자가 잘되는 것이 사랑하는 자의 사랑의 음식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 아주 잘되는 것이 낮은 지위에 있는 성도들의 행복을 감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증가시킨다. 영광 중에 있는 성도들 사이에는 틀림없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하고 달콤하고 열렬한 사랑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사랑받는 대상의 완전함과 사랑스러움에 비례하여 더 커진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영광의 크기에 비례하여 기쁨이 생기며, 그만큼 더욱 사랑하게 된다. 최고로 높은 영광을 가진 자들은 최고로 거룩한 자들이기 때문에 모든 성도에게 가장 사랑을 많이 받는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가장 거룩한 자를 가장 사랑하며, 가장 행복한 자를 가장 기뻐하기 때문이다. 거룩함과 하나님을 닮음에 있어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이 자기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을 보고 슬퍼할 성도는 한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는 원하는 만큼 사랑을 받으며,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최고의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성도는 완전히 만족한다.”
“완전한 만족이 있는 곳에 시기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천국에서는 자기보다 더 높은 영광의 자리에 있는 자들을 시기하고자 하는 유혹이 없다. 높은 영광의 자리에 있는 자들이 교만하지도 않는다. 남들보다 더 거룩한 사람은 남들보다 더 겸손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 많고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보잘것없음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알게 되어 더 겸손해질 것이다. 게다가 더 낮은 영광을 가진 자들은 더 높은 영광을 가진 자들을 시기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더 거룩하기 때문에 낮은 성도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들 또한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영광의 자리에 있는 자들은 가장 큰 능력과 지식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과 성도들을 가장 크게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낮은 영광의 자리에 있는 자들은 자신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을 시기하지 않을 것이다.”
천국이 이런 교제를 특징으로 한다면, 천국은 이 땅과 다른 곳임에 틀림없다.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공통적으로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 성도 상호간의 사랑이 감정과 사고를 완전하게 주장하기 때문에, 다른 이의 높아짐을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기뻐하게 될 것이다. 천국에서는 하나님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신실함을 칭찬하고 그들을 높여 주실 때, 순수한 행복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은 ‘사랑의 음식’이 되어 모든 이들의 행복을 고조시키고 살찌울 것이다. 천국은 사랑의 나라다. 질투, 자기도취, 자기 증진 그리고 분쟁이 전혀 없는 곳이다.
천국에 대한 갈망
앞서 언급한 모든 것이 천국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많은 시련이 닥쳐온다. 죄가 공격하고, 사탄은 우리가 거룩을 추구하지 못하게 낙심시키려고 갖은 애를 다 쓴다. 지금 우리는 이방인과 나그네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큰 소망이 있다. 우리를 구속하신 구원자가 계신다. 하나님이 자기 자녀들을 영접하실, 더 나은 본향에 대한 비전을 이미 보았다.
천국은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킨 모든 이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낙원’이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의 동산인 하나님의 낙원에 있다. 이곳에는 거룩한 사랑으로 충만하며, 모든 것이 사랑을 촉진시키고 고무시킨다. 이곳에는 사랑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 전혀 없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에 의해 모든 것이 사랑을 누리기에 합당하도록 되어 있다. 천국에서는 사랑받는 대상의 아름다움이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며, 사랑하는 자의 사랑이 부패하지도 않을 것이다. 천국에서는 사랑에 싫증을 내는 일이 없을 것이다. 오, 천국은 얼마나 평온한지요! 누가 이 평화의 달콤함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을 지나 도착하게 되는 천국의 평화와 안식은 얼마나 놀랍겠는가? 사람들이 안식할 곳을 찾지 못하며, 독사와 해로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크고 두려운 광야를 통과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서 누리는 안식은 얼마나 놀랍겠는가?”
이 땅을 지나가는 내내,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더글라스 스위니, 「조나단 에드워즈의 천국과 지옥」, pp 116-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