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을 복지관 3층으로 옮긴 후의 모습.
맨위쪽/왼쪽-개인방
위쪽/왼쪽- 공동방
위쪽/오른쪽-복도
아래쪽1,2/ 거실 및 주방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러시아의 우수리스크에 도착하였을 당시, 가장 번화가라는 도시 중심 거리에는 가게나 상점들이 10개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숫자를 헤아릴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러시아에서 생활한 지 만 10년이 넘었다. 세월이 변화되어 보다 발전된 문명이 이곳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살고 있던 아파트에 전화가 없어 전화 신청을 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도 어려웠다. 전화를 쓰려면, 전화국에 가서 전화를 신청하고 나서, 몇분 후에 "3번 방으로 가세요"라는 소리가 나면 그곳에서 전화를 걸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셀폰(cellphone:핸드폰)을 가지고 다닌다. 거리에는 가로등이 없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성탄절 미사때 '제발 미사 시간에만이라도 불이 꺼지지 않고 왔으면 좋겠다'고 신자들의 기도를 바친적도 있다. 밤마다 하늘의 별을 늘 볼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리를 밝힌 가로등으로 하늘의 별이 가리워졌다.
지난 10년동안 이것 저곳에서 얻어쓰던 물건들을 모우고,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다보니 이삿짐이 한가득 되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주재원으로 살던 한국분들이 사용하다가 주고간 텔레비젼이며, 세탁기, 식탁, 책상, 가구들이 새롭게 꾸민 수도원 거실과 공동방에 놓여졌다. 사실 복지관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이 이렇게 모아진 것들이다. 비록 사용하던 물건들이지만, 이곳에서는 아주 소중한 것들이다.
수도원으로 사용하던 아파트를 떠나,복지관 3층으로 수도원을 옮겼다. 수도원 회의를 여러번 거쳐 오랜 숙고끝에 큰 결정을 내렸다. 이런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경제적인 이유였다. 세계적인 경제가 힘든 와중에 수도원과 복지관 그리고 성당을 운영하기에 필요한 후원금이 줄어든 탓이다. 수도원으로 사용하는 아파트와 성당, 그리고 수도원이 모두 3곳에 나누어져 있었기에 한곳으로 모우면서 지출되는 운영비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아직 우수리스크의 개인집에는 많은 곳들이 수돗물이 없는 곳이 많다. 물을 길러다 먹어야 하는 가정이 많다. 우리가 살던 곳은 작은 아파트였기에 그런 어려움은 없었지만, 새롭게 옮긴 복지관은 새로운 건물이기에 시설면에는 모든 것들이 잘 갖추어진 곳이다. 어찌보면 우리의 삶이 지난 10년보다 좀 더 안정적인 생활이 될것이라는데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삶이 늘 나에게 끊임없이 던져지는 질문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성프란치스꼬가 우리에게 던져준 화두는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되새기게 한다. 행려자들을 위한 복지관이라는 건물 안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이 지난 10년전 보다 안정적인 삶의 보금자리에 머물면서도, 우리가 지향 해야 할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인,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소외된 이들과 늘 함께 해야한다>는 우리의 마음 자세를 더욱 굳건히 다져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현대문명의 활용과 생활의 편리함이라는 삶의 안정이 영적이며, 정신적인 풍요로운 삶으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물질로 인한 경제적이고 편리함이라는 현대문명의 삶이 우리를 더욱 게으르고, 나태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때로는 삶의 불편함과 불안정이 사람들의 영적인 삶과 자유스로움에 더욱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영적 지도자들은 물질문명의 혜택과 안정을 버리고 가난함이라는 불편하고 불안정한 삶으로 자신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10년간 생활하던 아파트를 떠나, 복지관 3층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변화가 가지고 오는 삶의 편리함과 안정이라는 보이는 가치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영적인 삶에 대한 지속적인 자아성찰을 가져다 주는 계기가 되었다.
첫댓글 러시아 우스리스크 선교사 김 도미니코 형제님의 글을 퍼 왔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좋은 귀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