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물 공모전
설송 고영두
날씨가 오늘따라 풀리는 듯하다. 금년 겨울은 더 추운 느낌이 들었는데 매년 달라지는 느낌은 아마 나이 탓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웅크리고 있다가 오늘은 모교를 찾아 갔다. 내가 졸업한 모교가 올해 70주년이 되는 해로서 뜻깊은 행사들을 많이 준비하는데 그 중에서 기록물 수집 공모전을 한다는 안내문을 받았다. 협조한다는 뜻에서 집에 간직해둔 관련 자료들을 몇 일간에 걸쳐 찾았다.
자료가 본교의 창립해인 1948년부터 종합대학교로 승격한 해인 1980년도까지의 풍경, 인물, 건물, 행사, 수업 및 학생활동 등 관련된 모든 사진이라고 하였다. 나는 격변기인 1958년도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모교에 교수생활을 하다가 2006년 2월에 퇴임하였다. 또한 내가 거의 한평생을 학교 주변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간의 학교 발전과 변화 모습을 누구 못지않게 잘 알고 있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지내온 편이었지만 관련된 자료를 찾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고 불행하게도 몇 점 밖에 찾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진주는 서부경남의 작은 시골 농촌 도시여서 학생들도 거의 주변 농촌 출신이기에 대학생이 귀한 존재여서 1개면에 1~2명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 등록금을 내는 시기가 오면 농우를 시장에 팔거나 논 한마지기(200평)정도는 팔아야 등록금이 마련되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더 이상 진학을 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으며, 여자는 대학입학을 엄두도 내지 못한 시절이었다. 옛날에는 돈이 너무도 귀해서 집안이 빨리 망하려면 국회로 보내고 천천히 망하려면 대학공부를 시키라는 속담 같은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공부하기가 어려웠다.
젊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면 거짓말이 아니냐고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온 나머지 그 시대의 기록은 정말 대학의 역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당시의 사진이 귀한 이유는 요즘처럼 카메라가 흔치 않았고 교정에 있는 직업적인 사진사에게 의뢰해서 사진을 찍는 경우가 보통이었기에 당시의 기록을 보존하기란 힘들었다.
지나고 보면 이것이 역사이고 또한 현실이다. 지금은 카메라도 마음만
먹으면 소유할 수 있거니와 나도 휴대폰으로 기념이 될 만한 것은 찍어서 공유하기도 한다. 지금은 이러한 관련 자료물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당시 역사의 증인으로서 생각하면서 정리해 두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가 제출한 자료 중에는 62년도 졸업 앨범이 있었는데 인물 사진을 보았더니 당시에는 젊어 보이기도 했지만 현재 살아 계시는 교수는 두 분 밖에 안계시고 모두 고인이 되시었다. 한분, 한분 전공도 다르거니와 인품도 특징이 있어 우리 학생들에게는 다 각도로 비쳐 보였으며 정말 학생들의 거 울이 되신 분들도 많이 계셨는데, 세월에게는 당할 선생님들이 계시지 못해 안타까운 심정이다.
낡은 앨범을 펼쳐 보아도 학교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 귀했는데 당시 는 멋진 포즈로 찍은 것 같은데, 이제 보니 참으로 촌스럽기 짝이 없는 사진 들 뿐이다. 그중 목장에서 젖소의 겨울철 사료인 사일리지(silage)제조를 실습하는 장면이 있었다. 지금은 기계화되어 제조하는 것이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 당시는 너무도 힘든 일이었기에 추억으로 회상해본다.
이번 공모전 재료를 준비하면서 가장 귀하게 생각되는 사진 1장이 나왔다. 대학의 초대학장 이시고 오늘 날과 같은 종합대학교의 기틀을 만드신
황운성학장님과 수의학을 전공하신 형성해학장님과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한 그루의 아름다운 나무가 더운 날 그늘 한 폭을 선사해 주는 시상을 뜨 오르게 하는 느낌이다.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번 공모전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대학 발전에 기여하고 학생들이나 방문객에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기원해 봅니다.
국보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사)한국국보문인협회정회원
(사)한국동물자원과학회 회장
황조근정훈장. 경상남도문화상
서울대학교 교환교수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농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