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 토요일 눈. 진관고등학교 앞 야산에 오르다.
낮전부터 눈이 조금씩 내리다가 오후에는 제법 내렸다. 고등학교 앞 야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보니, 약수사라는 절이 있는데 지금도 약수가 제대로 나오는지는 알 수 없겠고, 원래 북향으로 자리 잡은 절이 춥게만 보였다. 오후부터 처음으로 집의 책상에 앉아서 작업을 시작하였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산을 감돌며 아파트 남쪽으로 난 공간을 따라가면서 산책을 조금 하였다. 차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아서 좋고, 처처에 운동 시설이나 놀이터를 만들어 두어 좋다.
퇴직 후에, 영대도서관 6층에서 몇몇 동호인들과 어울리어 최근 2,3년간 계속하여오던 독서모임을 그만 두어야겠다고 연락하였다. 정말 놓기가 어려운 끈 중의 하나이나 방학 중에 매주 다닌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6층에 남아 있는 책도 도서관에서 빌린 것은 반납하고, 내 개인 것은 좀 싸서 보내라고 부탁하였다. 어쩐지 매우 허전하여 진다.
12월 30일 일요일 맑다. 진관사에 다녀오다.
점심 때 내외가 진관사에 가서 점심을 먹고 왔다. 며칠 전에 혼자 가서 보았던 삼천사보다는 평탄한 곳에 자리 잡았고, 입구까지 한옥마을을 조성하여 판다고 넓게 터를 닦아놓았다. 주변의 소나무가 울창하지는 않지만 금강송인 듯 쭉쭉 벋은 게 보기 좋았는데, 어떤 여자가 눈 덮인 그 모습을 서양화로 그리고 있었다.
마침 점심 때가되어 공양 간에 들어가 보았더니 시주함에 임의로 시주하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밥과 나물 국, 미역 국, 잎 김치, 총각 김치, 물 김치, 나물 볶음, 풋고추 절임 등을 뷔페 같이 차려놓았는데, 마음대로 들어다가 먹을 수 있었고, 설거지는 먹은 사람이 각자 자기 밥그릇을 씻어 놓고 가게 하였다. 매우 잘 운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 자체에는 6,25 사변 때 화재를 당하여 그런지, 문화재 될 만한 것이 없으나, 여러 건물에 붙은 현판과 주련들은 탄허 스님을 비롯한 근래의 명승들과 명필들이 쓴 것들이라 볼만한데, 어떤 것은 너무 난초가 되어 처음 보고는 도저히 다 읽어 낼 수가 없었다. 이 절 뒤로 난 길로 문안의 효자동까지 갈 수 있도록 올레 길을 만들어 두었다고 하니 매우 흥미롭다.
오후에는 홍관이가 차를 가지고 와서, 모자가 월드컵 경기장이 있는 상암동의 이마트에 갔는데, 저녁을 그 마트안의 식당에서 사서 먹고 온다고 하여, 집에서 나 혼자서 찾아서 먹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와 사전을 찾아 가며 , 영남대 약대의 장영동 학장이 힘들여 초역한 그 조부님의 한시집을 교열하였는데, 출력하여 준 글자가 커 낮에는 읽는데 지장이 없었으나, 밤에는 조명이 맞지 않아서 눈만 부시지 일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 곳에 전화를 걸고 이사 온 인사를 하였다. 대구와 청도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하는구나. 잠시 떠나온 논밭 길이 눈으로 하얗게 덮였다니울컥그리워진다.
첫댓글 새로운 세상에 정착하셔도 여전히 부지런하시니 타고난 건강체질이신 듯 합니다.
선생님께서 이사하신 동네가 한 눈에 그려지듯 느껴집니다.
대구는 아직도 골목길은 빙판이고, 산은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모습입니다.
대구에서 하시던 일을 하나씩 접는다는 소식은 왠지 겨울나목에 불어오는 바람같은 소식입니다.
선생님께서 아주 빠르게 서울 생활에 안착하시는 것 같아서 기쁜 마음입니다. 한편으로는 선생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대구의 제자들의 심정도 산만합니다. 혹시나 몸을 따라 마음마저 대구에서 멀어지시는 것은 아닌지 불안합니다. 선생님의 건강을 빌면서 따뜻한 봄날에 뵈옵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대구를 그리워하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저희에게 와 닿습니다.
선생님...글로 대하니 왈칵 눈물이 납니다. 저는 자리조차 메우지 못한 학생인 탓에 부끄럽지만 어쩐지 선생님과의 배움이 진행형이 아닌 추억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몹시 그리움이 더해 집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