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시나리오>
블라인드 분석
영화영상학과
2008112917
윤혜연
블라인드는 올림픽감독(?) 안상훈 감독님의 5년만의 스크린 개봉작이다. 극중 주인공인 ‘수아’의 변화가 인상깊었던 영화이다. 영화에서 수아는 여자와 장애라는 편견과 단점, 트라우마를 모두극복하고 자신의 그림자를 넘어섰다. 악을 물리치고 정의를 구현하는 영웅으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시나리오를 분석해보면, 블라인드는 3막구조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분리-하강-입문-귀환의 구조이다.
<분리>
사고전, 수아는 원래 경찰이다. 동생을 나쁜 길에서 구하기위해 강제로 수갑을 채우고 운전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동생은 수갑에묶여 차에서 탈출하지 못해 죽고 수아는 사고로 장님이 되는 운명에 처한다. 바랄것없던 일상에서 한순간에 분리되어 삶의 또다른 국면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가지게 된것은 물론 자신 때문에 동생이 죽었다는 죄책감과, 더 이상 경찰을 하지 못하는 불행을 한꺼번에 떠안게 된 것이다.
어린나이에 큰 불행을 겪는 사람들은 게다가 여자라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나가기 보다는 방에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을 하려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서도 장애와 여자를 받아주기에는 경쟁력과 실용성이란 이름으로 그들을 하위계층에 놓으려 한다. 이렇기 때문에 편견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이들이 자살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접하곤 한다.
영화초반에는 이들과 다름없는 수아의 환경이 소개된다. 물론 수아도 과거상처의 트라우마와 앞이 보이지 않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는 있다. 횡단보도 씬에서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슬기‘(강아지)와함께 그녀의 막막함과 혼란상태의 심정이 잘 드러난다. 그녀는 앞은 보지 못하지만 대신 청각과 후각등 다른감각이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이 나중에 악과의 대결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
<하강-입문>
수아가 택시를 가장한 살인범의 차에서 뺑소니 교통사고를 경험하면서부터 그녀는 일상에서 분리된 상태에서 하강의 여정을 맞게 된다. 많은 인물들이 이 부분에서 등장한다. 살인범과 기섭, 형사와 조연들이다. 수아는 사건 후 자신의 후각과 청각을 이용하여 경찰에게 진술을 하는데, 그때 다른 목격자인 기섭이 등장한다. 기섭은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며 수아와 엇갈린 진술을 하며 수아와 갈등을 빚는다.
이때 기섭은 처음에는 수아와 대립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수아를 믿지도 않고 오히려 장애에 대해 깔보는 경향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에 수아가 기섭을 살리려고 하면서부터 수아에게 마음을 열고 동행하며 조력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기섭의 캐릭터가 극적으로 변화하면서 관객이 느끼기에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 것 같다. 기섭뿐 아니라 애완견인 슬기도 수아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비록 말 못하는 강아지 이지만 수아의 눈이 되어주는 슬기는 수아를 묵묵히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지하철 씬에서 살인범이 수아를 해치려고 할 때 핸드폰을 통한 기섭의 목소리와 길을 안내한 슬기덕분에 수아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수아 또한 겁먹거나 당황해 하지 않고 침착하게 동료들을 믿고 대처한 덕분에 죽음을 피한 것이다.
이 씬에서는 현실감을 갖되 스릴있게 풀어나가는 장면으로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본 장면이기도 하다. 대중영화답게 핸드폰을 통한 ‘영상통화’라는 소재가 큰 역할을 한 것이 그 예이다. 기계와 인간이 밀접하게 살아가는 현대에서 그 기계를 잘 이용하면 인간에게 장점이 될수도 있고 상황을 극적으로 변화시킬수 있다는 사실을 잘 빗대어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동물과 사람이 밀접한 관계로, 사람이 동물을 이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희생 할 수도 있는 인간애적인 관계임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슬기가 살인범에게 죽게되고 수아와 기섭은 본격적으로 범인과 쫓고 쫓기는 여정을 시작한다. 형사와 기섭 및 조력자들은 수아를 믿고 도와주며 함께가는 인물로 나온다. 수아또한 이들의 믿음에 따라 용기있게 범인과 맞서게 된다.
극중 악당은 외면적으로는 사회악이자 연쇄살인마 이며, 내면적으로는 수아의 트라우마 및 그림자라고 볼 수도 있다. 살인범을 대항하여 무찌르는 것은 수아의 과거 트라우마와 현재 장애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수아가 범인과 싸워 이기는 것에 많은 관객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대하는 것 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형사도 죽음을 당하고 범인의 위치는 좁아져간다. 비가오는 밤, 고아원에서 수아,기섭 대 범인의 혈투가 시작되고 영화는 절정을 항해 치달려 간다. 싸움은 비가오는 끈적끈적한 분위기에서 시작하는데 비와 어둠은 긴장되고 어두운 내용의 장면을 좀더 극대화 시킨다. 기섭을 먼저 기절시킨 범인이 최종 목적인 수아를 향한다. 여자이며, 체구도 작고, 힘도 약하며, 눈까지 안보이는 수아와 악랄한 살인마의 대결직전에서 긴장은 극에 달한다. 과연 외면적으로 너무나도 불리한 수아가 이 난관을 어떻게 해쳐나갈지 손에 땀이 나는 장면이다. 역시 수아는 현명하게도 건물의 불을 꺼버린다. 불을 꺼 암전이 된 건물안에서 범인은 당황하지만 수아는 자신의 단점인 시력의 문제를 이 때 장점으로 바꾸게된다. 아무것도 안보이는 상태에서는 오히려 수아가 청각등 다른 감각을 이용하여 좀더 민감하게 대처할수있기 때문이다. 힘은 안되지만 지략을 이용해 범인을 대처한 장면이라고 할 수있다.
그러나 결국 살인마는 쉽게 죽지 않고 건물밖에서 육탄전이 벌어진다. 화상을입고 비에젖어 광기를 내뿜는 살인마의 모습은 수아의 뿌리깊은 트라우마, 즉 수아가 정말 없애고 싶은 자기 자신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점점더 다가오는 그림자. 수아는 물론 겁을 먹는다. 옆에는 기섭도, 슬기도, 경찰도 없는 분명한 혼자이다. 살인마는 너무나 크다. 하지만 그녀는 동생의 기억과 세상 모든 편견, 나아가 깨뜨리고 싶은 자신의 울타리에 집중한다. 이 때는 진동알람기라는 기계가 도움을 준다. 수아와 살인마가 가깝게 대면한 순간, 벽돌을 들어 그를 내리치는 수아. 이간의 모든 여정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다.
사회악을 물리쳐 정의를 구현했고, 내면의 그림자를 극복한 당당한 초자아가 탄생한 것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큰 카타르시스를 던져준 순간이었다. 어김없이 경찰은 후에 등장한다. ‘사회의 지킴이를 무조건 믿지 말고 개인이 스스로 지키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냉정한 판단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귀환>
돌아온 일상. 그러나 많은 것이 변화된 일상이다. 수아는 다시 경찰학교에 입학한다. 앞이 보이지는 않지만 용감하게 살인마를 무찔렀고 기죽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다시 경찰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여성 주인공이 난관을 이겨내고 영웅이 된 사례는 영화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없다.
영화가 현실의 산물인 만큼,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와 연결 지을 수 있다. 특히 가부장제가 심한 한국에서 블라인드와 같은 여성영웅의 탄생은 칭찬하고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써니 등 여성캐릭터가 주요로, 여성관객을 주요로한 영화들이 성공궤도를 그리고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더 이상 여성은 집에서 살림을 하는 존재가 아닌 사회의 주도자로서 남성과 동등하게 여겨지고자 하는 욕구가 영화에 투영되었고, 이를 관객들도 받아들인 것이다. 영화가 사회를 반영하고, 서로 상호작용하며 변화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시나리오적으로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살인마가 좀 비현실적으로 그려진 면이 있어보였다. 칼을 한번만 휘두르면 모두가 죽고, 대신 자신은 화상에 입히고 아무리 싸워도 절대 죽지 않는 불사신 같은 존재, 게다가 산부인과 의사임에도 체력적으로 전문가처럼 너무나 관리를 잘 한듯 보여 영화를보는 동안 조금은 불편했다. 약간의 보완점이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잘 짜여진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결말로 보는 이들에게도 감동을 주었다.
수아는 단지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나도, 그대도, 주위사람들도 모두 하나쯤 트라우마나 열등감을 가슴 한편에 묻어 두었거나 그로 인해 괴로워한다. 수아를 우리의 또다른 자아로 대입해보자. 그녀가 여정을 통해 내면의 문제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대리만족,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막이 내린 후 나에게는 영화의 수아처럼 실제로 나 자신도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고 행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가 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