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교단에서 사이비 설교를 하다.
설 교 문
명암 이갑식(포덕 146년 4월 19일)
지난 4월 10일날 제암리 순국선열 추모행사가 있던날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데 제 옆자리에 잘 생긴 미녀 할머니 한 분이 앉으셨어요.
얼핏보아 나이를 한 60대 정도로 보았는데 대화를 나누다보니 글쎄 72세래요.
정말 속으로 놀랐습니다. 그러면 약 10년은 젊게 산다는 결론인데....
그래서 주의깊게 할머니의 면면을 관찰해 보았지요.
항상 어린 소녀처럼 밝게 많이 웃으시고 별것 아닌 이야기도 재미있어 하시고....
할머니의 얼굴에 주문꽃이 피어 주문의 진한 향내음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오랜 세월동안 천도교를 신봉하며 끝임없이 주문 공부를 했다는 사실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제 추측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맞을 거예요.
여러분!
신명나게,젊게,깨끗하게,곱게 사시려면 주문공부 많이 하세요.
주문 공부를 많이한 원로동덕님들을 보세요. 한결같이 나이보다 젊습니다.
그리고 장수합니다.
주문 3,7자 속에는 우주만물의 모든 진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푹 고아놓은 사골의 액기스처럼 진액만 뽑아놓은 것이 3,7자 주문입니다.
"건너마을 김서방""이라는 주문을 한없이 외우면 진짜 건너마을 김서방이 됩니다.
건너마을 김서방밖에 안되는 거지요. 그것이 한계니까요.
그러나 3,7자 우리 천도교 주문은 대신사님이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글이니 더 이상 말해무엇하리요.
해월신사님이 공부를 많이 해서 도통하셨습니까. 자료집에 나오는 사진을 보십시요. 얼굴이 잘 생겼습니까? 키가 큼니까? 풍체가 좋습니까? 아니잖아요. 전형적인 시골 촌부잖아요.
그래도 천도교에 입교를 해서 정말 우직하게 ,열심히 경전을 읽고 주문공부를 하다보니 도통하시어 대도를 물려받아 2세교조가 되지 않았습니까.
지극한 정성으로 3년동안 공부해서 못이룰 것이 없다고 경전에도 나와있어요.
길을 가면서도, 밥을 지으면서도, 앉으나 서나 시천주를 외워보세요.
진흙속에 옥구슬도 닦아야 그 빛를 발하고, 거울도 깨끗이 닦아야 얼굴이 보이듯이,
사람의 마음거울도 닦아야 뭔가가 보이지요.
진정 마음의 거울을 닦아 한울 사람이 되려면 그 첫걸은 주문공부부터 입니다.
조용한 가운데 수심정기하고, 두 눈을 감고, 단전에 힘을 주고
두손을 무릎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미친듯이 큰소리로
1시간만 시험삼아 주문을 소리내어 외워보세요.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분명 느낌니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도의 맛이며 주문의 맛입니다.
아무리 거듭 강조하여도 모자라는 것이 주문공부입니다.
힘들고, 어렵고,죽고싶을 때,미친듯이 주문을 외워보세요,
한없는 평온함과, 공경하는 마음과, 정성스러운 마음과 ,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며,
한없는 기쁨의 눈물이 흐를 것입니다.
여러분!
저가 수원교구 시일식에 처음 참석하면서 느낀 것은 어린이들이 많이 나오는구나!
희망이 있어! 맞아! 바로 이거야! 하는 것을 느꼈어요.
저도 어릴적 유년시절 어머님의 손을잡고 교회에 나가 떡도 먹고 과자도 먹고 ,기념일 때는 연필과 노트도 받고 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답니다.
유년시절을 거쳐 소년시절이 되어서는 스스럼 없이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17세에 교회에 입교를 하게 되었지요.
이것은 완전히 어머님의 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성동덕님들이 애기들을 데리고 교회에 나오는 것은 교회의 대를 잇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든 우리들이야 세월의 흐름속에서 소쩍새울음따라 어느날 한울님의 품속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새롭게 꽃피는 이 어린이들은 건강하게 똘망 똘망하게 자라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과 같이 또 교회에 나와 천덕송부르고 설교하고, 교회의 미래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꿈과 희망의 꽃봉우리를 가득 물고 자라나는 어린이 동덕들을 위해 우리 기성세대는 제때에 물을 주고, 거름도 주고, 잡초도 제거해줘서 교회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는 동량이 되도록 끌어주고, 밀어주고, 격려해 줘야합니다.
너무 예쁘고 씩씩한 꼬맹이 친구 여러분!
청소년 여러분!
그리고 원로동덕님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루에 한페이지의 책을 쓰고 있습니다.
허무한 페이지를 쓰는날도있고 충실한 페이지를 쓰는 날도 있습니다.
정성스럽게 쓰는 사람도 있고 무책임하게 대충대충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 자신의 삶에 대한 책을 쓰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한권의 책밖에 쓸수가 없고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기에 우리의 목숨은 우주만물 중에서 가장 존귀한 것입니다.
원고는 잘못쓰면 다시 고쳐쓸수 있지만 인생의 책은 다시 고쳐 쓸 수가 없어요. 오늘의 페이지를 잘못썻다고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고쳐 쓸수가 없어요.
순간순간의 행동이 나의 전 존재의 표현이며, 생각하고,말하고, 행하는 것이 그대로 내 인격의 표현입니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입니다.나의 판단, 나의계획,나의 책임하에 나는 나의 인생을 살아가야합니다.
하루하루의 페이지가 쌓여 인생이라는 한권의 책이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각 개인마다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없는 값진 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의 성실을 다하고,전력을 기울이고,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멋진 책이 만들어집니다.
내생애 동안 최선의 노력으로 쓴책을 우리는 고귀한 유산으로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며,우주만물 한울님께 감사의 선물로 바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얀 백지 인생이라는 원고지위에 어떤 내용의 글을 쓰시겠습니까? 여러분은 현명하시니까 잘 아시겠지요?
동덕여러분!
지금으로부터 6년전 저의 둘도없는 다정한 친구가 45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평소에 너무너무 인정이 많고 불의를 보면 참지못하고 주위의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앞장서서 돕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이세상을 떠났습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너무너무 허무하고 애석하여 교회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더니 한 동덕님으로부터 답글이 왔는데 그 글을 읽어보고 저가 너무 감명을 받아 오늘 이자리에서 소개를 할까합니다.
답글(임순화)
친구는 죽어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한다네...
친구는 비록 이 세상 우리의 곁에서 사라졌지만 친구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네...
그를 닮았을 그의 자녀들을 통해 육적장생을 하고,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그의 자녀들을 통해 영적 장생을 하고, 그의 아름다운 마음과 그의 고귀한 정신을 잊지못해 흠모하는이 있다면 그는 사회적 정신으로 길이 장생할 것이며,그가 잠든 곳 그의 무덤에 흘러드는 빗물을 통해 그의 시신이 녹아들어 샘물이 흐른다면 그 물속에 그가 살아 흐르고 있네...
그 물을 마신 사람들의 마음속에 몸속에 그가 살아있고 그의 무덤위에
파릇이 자라나는 잔디풀 속에 그가 살아 숨쉬네...
그 곳을 나르는 벌 나비 속에, 그 풀을 먹고자란 풀벌레 속에, 그 풀벌레를 먹고 나르며 노래하는 아름다운 새의 지저귐속에, 그의 목소리 들려오고 그래서 우주와 나와 모든 살아있는 것 죽어있는 것 그가나요 내가 그인 동귀일체임을 ...
내가 죽어서도 살아갈 이 지구,내가 예전에 살았고 앞으로도 살아갈 이 세상 그래서 서로 공경하며 땅도, 공기도 ,저 바람결도, 풀벌레까지도, 모두 나이며,한울이며, 너인 것을 ...조금 먼저 떠났다고 아쉬워하지 마소서, 망가지고 찌그러져 보기 민망하기전에 그래도 조금은 봐 줄만 할 때 애고 아까워라! 할때 아쉬운 이별두고 떠나는 것도 한 세상을 접는 낭만이 아닐런지!
여러분!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좀 있었습니까?
교회는 나가면 무조건 재미있어야 합니다. 어떻게하면 재미있을까!
이 답만 찾아내면 교회에 나오지말라고해도 나옵니다.
참으로 많이 고민해야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답도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오늘 설교내용을 요약하겠습니다.
1)주문공부를 열심히 하자.(한울사람이 되는 첫걸음은 주문공부부터다)
2)어린이는 교회의 희망이다.(어릴때부터 교회와 친해지게 하자)
3)테레사 수녀가 임종직전에 한 말은 "인생이란 낮선곳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이다" 라고 했듯이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한 권의 책"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
4) 죽음이란 삶의 한 과정일뿐 ,그 자식, 지인,대자연을 통해 육적,영적,
사회적 장생을 한다.
이상 4가지로 구분하여 설교를 한다고 했는데 여러모로 미흡한 점이 많아요
30년동안 덮었던 경전을 이제 펴고 읽어보는데 의암성사편을 읽고있어요.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제가 살아오면서 가장 힘든 고비에 봉착하여 이제 제정신이 번쩍들어 교회도 찾고 주문에 매달리는 것을 보면 저 자신 한없이 부끄럽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설교를 할려면 경전을 100번정도는 읽어야 제대로 된 설교를 할 수 있는데 껍데기 설교를 해서 죄송합니다. 더욱 노력하고 공부하겠습니다.
저는 설교시간을 짧게하고 그 남은 10 여분의 시간을 여러 동덕이 이 자리에서
개인별 현송으로 이 교회가 떠나가도록 주문을 한 번 외워봤으면 싶은데...
어떻습니까? 틀에박힌 시일 순서를 떠나 변화를 추구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