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술람과 새끼 거북이의 카벙클
거북이의 알이 부화할 때가 되면 알 속에 있는 새끼 거북이에게 임시치아가 생깁니다. 그 임시치아가 카벙클입니다. 카벙클이 부러지고 잇몸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알의 내벽을 뚫고 나온 새끼 거북이를 맞이한 것은 엄마 거북이도 아니고 아빠 거북이도 아닙니다. 엄마 거북이가 뒤집어 씌워 놓은 30센티미터의 두꺼운 모래입니다. 새끼 거북이는 3일에서 7일 동안 이 모래를 파고 올라옵니다. 이 일이 얼마나 고된지 몸무게가 30% 줄어듭니다.
하지만 섣불리 모래 표면으로 올라오지 않습니다. 맹금류와 같은 다른 동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밤중이 되면 한꺼번에 모래 위로 나옵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바다를 향하여 필사의 질주를 합니다. 바다에 입수한 새끼 거북이는 48시간 미친 듯이 수영합니다. 왜냐하면 바다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 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곳은 큰 물고기가 없어서 비교적 안전합니다. 이곳에서 바다 거북이의 인생이 시작됩니다.
새끼 거북이가 카벙클로 알의 내벽을 깨고 나오듯이 술람으로 알의 내벽을 깬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은 알의 내벽에 갇혀 있었습니다. 제2인자로, 발뒤꿈치를 잡는 이기주의자로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한 자로 그래서 상속 대상에서 제외된 자로 급기야 아버지를 속여서 상속자가 된 교활한 자로 자신을 둘러싼 알의 껍질이 두꺼운 사람이었습니다.
형의 분노를 피해 하란으로 피신하던 야곱은 무명의 땅에서 꿈을 꿉니다. 꿈에 사닥다리가 나타나고 꼭대기에 하나님이 있습니다. 야곱은 그 사닥다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납니다. 사닥다리는 히브리어로 ‘술람’입니다. 술람은 성경에 한 번 밖에 나오지 않는 단어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술람을 ‘계단’으로 비유 합니다.이 계단은 지구라트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지구라트는 고대 근동인들이 지은 신전입니다. 돌로 정사각형의 기초를 쌓으면 올라갈수록 더 적은 정사각형의 층을 쌓아 맨 꼭대기에는 백향목으로 지성소를 만듭니다. 여기서 신에게 제사를 드립니다. 지구라트는 인간과 신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야곱은 바로 술람, 즉 사닥다리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만나자 두려웠습니다. ‘두려워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야라’입니다. ‘야라’는 새로운 경지에 들어갔을 때의 희열, 우리보다 더 큰 인상을 받았을 때의 감정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다’는 ‘숭고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함, 장엄함, 감동, 무한함을 느낀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숭고함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자신의 옛 것을 훌훌 털어버지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야곱의 카벙클은 바로 술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자신을 술람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천사가 인자 위를 오르락 내리락’(요1:51)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술람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께 가는 길, 즉 술람입니다. 죄인된 인간과 하늘의 하나님을 만나게 할 수 있는 그 술람 즉 사닥다리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내 인생을 억압하는 알의 내벽을 깰 수 있는 분은 바로 나의 카벙클, 나의 술람이신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