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불교 운동원의 의식복장
불광의 나아갈 길은 ‘한국불교의 새물줄기’라는 역사적 과제를 자담(自擔)하는 것이다. 그 좌표설정은 스님이 우리의 역사.문화.종교.사회.정치.경제.통일.교육 등 모든 분야를 총섭한 뒤 현대서구 문명(주로 기독교 사상을 바탕)의 한계를 극복하고 여러 가지 문제점과 결함을 불교의 입장에서 보완한 것이다.
그래서 새불교운동은 지구공동체인 인류의 밝은 미래를 위해 확립한 진정한 삶의 길이다. 그리고 우선적인 부분은 역시 통일을 지향한 민족번영의 길이며 그 토대 위에서 우리가 인류 평화의 초석을 놓은 것이다. 이 새로운 길을 과감하게 가는 것이 스님이 원한 일이었고 몸과 목숨, 전부를 건 구국구세의 승부수였다.
즉 오랜 역사의 불교와 특히 한국불교에 있어서 이와 같은 새로운 불교신앙운동을 전개하는 그 구심점은 어디까지나 법주(法主) 스님 자신이고, 출가수행자(스님들)는 각 분야의 전문지도위원이 되어 법주를 보좌하며 운동의 주체들이 재가수행자를 이끌고 지도해 가는 것이다. 스님의 새로운 불교운동의 터전과 힘, 주요 대상은 일반 재가대중에게 두었다. 그런 까닭에 스님은 마치 대승불교가 흥기할 때처럼 사부대중의 화합된 힘으로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새로운 불교중흥운동(大乘運動이 근본)을 뜻하였고 목표로 삼았다.
사부대중 가운데 어느 한 부분만의 집합체가 아닌 모두의 동참을 바랐던 것은 역시 과거의 선례를 따랐던 것이고, 그 동참동행의 화합정신을 이 시대의 새로운 불교운동에 그대로 원용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재가수행자들에게도 철저한 수행을 요구했으며, 부처님 은혜의 참 주인공으로서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주어 책임을 자임하게 하여 개개인의 성숙과 향상을 이루게 했다.
즉 재가수행자들이 분명한 자리매김을 하여 보살행의 일정한 책임감과 의무를 갖게 하여 보다 큰 수행을 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하고 배려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가대중의 리더들을(봉사와 헌신의 열렬한 실천자) 이끌고 받아들이고 적극 육성해야 했다. 스님은 거기에 대한 적절한 조처와 아낌없는 배려를 했다.
다른 장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때 불광에서는 이미 재가수행자 법사들이 속속 등장하여 설법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재가의 대중들도 일과수행을 닦아가고 있었던 것으로 그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재가법사가 재가수행자들에게 설법을 한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나 여타의 단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불광에서 재가법사의 설법은 좀 다른 뜻이 있다.
불광의 설법은 누가 와서 하든지 스님을 대신하여 한다는 뜻과 인식이다. 즉, 법주인 스님을 대신하여 출가수행자만 설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재가수행자도 스님을 대행하여 설법을 한다는 것에 새불교운동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스님의 사상(새불교운동)에 입각하여 설법을 한다는 말이다. 설법은 새불교운동에 동참한 대중들의 사상교육이고 신심강화다. 이것은 설법이라는 방식을 통해 법상(法床) 담당자들에게 주어진 일차적인 임무이다.
그런 뜻에서 재가자의 여러 가지 역할에 따르는 임무의 분담과 헌신을 통한 진리의 확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입장 정리는 그 나름대로 틀과 구조를 갖추게 되었고, 거기 따르는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일 하나하나에 대한 숙고와 세심한 관찰이 필요했고, 적시에 호응해 주고 받쳐주는 순발력이 있어야 했기에 스님은 새불교운동의 제도를 만들고 활용해가면서 잠시도 그 현장에서 눈을 떼지 않고 면밀하게 지켜보고 확인했다. 그런 까닭에 불광에서 쓰고 있는 여러 가지 제도와 수행의 방침은 그것을 만든 당사자인 스님 자신의 충분한 검증과 현실적인 실험을 모두 마친 것들이다.
1992년 4월 2일, 나는 보현행원송 공연을 마치고 바로 이곳(안성 도피안사)에 내려와서 그 해 동안거 결제 때, 천일기도 입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불광사의 소임자가 중도에 ‘불광호라는 배에서 내린다’는 갑작스러운 선언으로 칠월 백중날 오후에 스님이 이곳 우거에 내려오게 되었고, 나는 스님의 하명하신 바를 따라, 다시 되짚어 불광으로 올라가 모든 불사를 전적으로 담당하게 되었다.
그때 스님의 뜻을 받들어 계획한 몇 가지 일이 있었다. 그 일은 이제 나만의 일이 아니라 스님의 뜻을 계승하고자 하는 사람들, 그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설령 후일 어느 인사가 사전 준비 없이 엉겁결에 스님의 불사를 맡게 된 경우라 하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점이다. 즉 어느 누가 새불교운동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해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중요사항이므로 그 당시의 기록을 찾아 여기에 옮겨 놓는다.
그것은 새불교운동에 재가수행자가 지도적인 위치에 올라 있기 때문에 모든 법회 운영은 재가수행자들의 자발적이 참여와 노력과 수행정진의 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재가 지도자들의 역할을 뒷받침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 중에서 재가법사가 입는 법복이 있다.
그때 정한 모든 법사의 법복은 같은 복식에 표시만 다르게 했다. 다시 말하면 법복의 전체 색깔은 회색(승복색)이었으며 그 법복의 깃에 황금색 띠를 두르면 설법복(說法服)을 의미했고, 가사색 띠를 두르면 연화복(蓮華服)을 뜻했고, 자주색 띠는 집전복(執典服)으로 구분하여 확정하였다. 그에 대한 도표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댓글 큰스님께서 재가수행자들의 중요성을 말씀 하실 당시에는 과연 어느 스님이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정말로 혜안에 찬탄 찬탄 드립니다. 새불교운동![!](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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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회 운영은 재가수행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노력과 수행정진의 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에 스님들께 법문을 듣기 위해 자주 갈 수 없는데 우리 같이 카페 활동으로 법문을 듣는 일도 크 스님께서 생각하신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고맙습니다.._()()()_
능인선원에도 불자님들이 직위에 따라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불광을 따라 한 것이라고 지광스님은 솔직히 말씀하시지요. 전법에 있어 재가자의 수준에 따라 직위를 두는 건 제가 보기에는 필요악 같습니다. 그렇게 해야 위계 질서가 서거든요? 그리고 초보자들이 스스로의 위치를 알게 되고 공부에 대한 발심도 하게 되지요. 숭산큰스님도 미국에서 그렇게 하셨지요.
우리 카페도 그런 위계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우리 카페의 지금 등급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정해진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이 이야기는 가입인사란의 공지에도 나와 있습지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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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고잘미섬공만 이루어 진다면야![~](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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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내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