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프랭크를 보았을 때, 그는 담배 연기 자욱한 술집의 어두침침한 불빛 아래 가슴에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아주 큰 키에 강한 인상을 풍기는 인디언으로, 그의 얼굴에 패인 주름은 꼭 고목의 갈라진 겉껍질 같았다.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문 채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그를 나는 꼭 장승 같다고 생각했다. 캐나다에서 처음 시작한 비즈니스가 작은 호텔이었는데, 프랭크는 바로 그 호텔 바에서 일하는 바텐더였다. 호텔의 새 주인이 되어 직원들과 첫인사를 나누던 날, 난 유독 그가 어렵게 느껴졌다. 과묵함과 그가 풍기는 위엄에 서먹하게 지내긴 했지만, 그래도 모든 게 서툰 햇병아리 주인인 우리에게 그는 상당히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다.
어느 겨울밤, 오로라(northern lights, 북극광)가 떴다는 말을 듣고 밖으로 달려 나간 난 거대한 하얀 연기가 넘실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쩍 벌렸다. 분명 북쪽 어딘가에 거인의 오두막이 있고, 저건 아마 그 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일 거야. 그런 상상을 해가며 한참을 올려다보던 난 꽁꽁 언 몸을 녹이기 위해 호텔 바로 달려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그날은 프랭크의 아내인 프렌도 와 있었다. 흥분에 들뜬 내가 방금 본 오로라와 거인의 집 이야기를 해주자, 프렌이 웃으며 오로라는 ‘dance of spirits’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생명의 불꽃을 지니고 사는데, 죽을 때 몸에서 빠져나온 그 불꽃이 하늘로 올라가 저렇게 춤을 춘다는 거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미스터리로만 남아있던 한국에서의 내 어린 시절 기억을 불현듯 떠올렸다.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지붕 위로 할머니의 혼불이 떠올라 언덕을 넘어가는 걸 보았다고 했다. 그 후로 조용조용 어른들의 입을 통해 할머니의 임종이 예언처럼 퍼졌고, 곧 그 말은 사실이 되었다. 동네 어른들 말에 따르면 혼불의 모양은 여자가 둥근 모양의 푸른색 불이고, 남자는 꼬리가 달린 유성처럼 생겼다고 했다. 모든 사람은 바로 이런 혼불을 지니고 사는데, 이것이 빠져나가면 죽게 된다는 거였다. 그래서 한동안 난 내 속의 혼불이 나갈까 봐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내 과거 어렴풋한 의문으로만 남아있던 그 혼불에 대한 이야기를 이 먼 캐나다에서 프렌의 입을 통해 다시 듣게 될 줄은 몰랐었다. 우리 집 지붕 위로 나갔다는 할머니의 혼불이 도대체 어디로 갔을지 항상 궁금했었는데, 바로 저 오로라가 됐던 거구나! 그 순간 난 같은 생각을 공유한 이들과 어쩜 우린 한 뿌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낯선 땅의 사람들과 내가 만나기 전부터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는 깨달음. 그날 밤 오로라를 통해 난 처음으로 그들과 내적으로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때까지도 여전히 내 속에 남아있던 프랭크에 대한 서먹함마저 훌훌 털어낼 수 있었다.
같이 일한 지 2년여가 지난 어느 날, 프랭크가 갑자기 식도성정맥류 출혈로 병원에 실려 갔다. 응급실로 달려간 우리는 도시 병원으로 이송되기 위해 헬기 앰뷸런스를 기다리는 그를 배웅했다. 과다출혈로 백지장처럼 하얘진 프랭크의 얼굴에 순간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쳤지만, 난 연신 그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괜찮을 거라고 그와 나 자신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다음날 날아온 소식은 수술 중 시작된 출혈로 결국 그가 중환자실로 들어갔다는 거였다. 그의 회복을 위해 계속 기도하는 중에, 그 추운 겨울 그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을 못한 게 그렇게 마음에 걸릴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 걸까? 그가 내 꿈으로 찾아왔다. 내가 차린 밥상 앞에 앉아 말없이 밥을 먹더니,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그가 잘 먹었다는 듯 웃음으로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뒤돌아갔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난 꼼짝 못 한 채 누워 혼잣말을 했다. “프랭크가..갔구나!” 내 직감처럼 프랭크의 사망 소식이 곧바로 들려왔다. 그날 이후로 하늘에 뜬 오로라를 볼 때마다 난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안부를 묻는 버릇이 생겼다. “프랭크! 잘 지내요?” 하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고, 서늘한 기운만 가슴에 스밀 뿐이었다.
오로라에 관해 물으면 여기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대답을 하곤 했다. “휘파람을 불면 오로라가 더 신이 나 춤을 추니까, 휘파람을 불라!”며 즐거워하는 이도 있었고, 외딴집에 사는 어떤 할머니는 손을 내저으며 극도로 싫어라 했다. 오로라가 뜨면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꼭 귀신이 우는 소리 같아서 너무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우~ 쉬이! 우~ 쉬이이!” 들려오는 오로라의 소리가 파도 소리보다 훨씬 더 평화롭다고도 했다. 결국 오로라를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거지, 누구 말이 맞고 틀리고는 없었다. 죽은 이와 응어리가 남은 채 이별한 사람은 오로라를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 거고, 아닌 사람은 평온함을 느끼는 듯했다. 오로라를 볼 때 내 가슴으로 서늘함이 스미는 건, 아마도 내가 프랭크를 완전히 떠나보내지 못해서인 듯했다.
그렇게 프랭크가 떠난 지 딱 일 년이 지났을 때였다. 어느 날 청소를 하는데, “프렌에게 가줘! 제발.”하는 프랭크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귀로 들은 말은 아닌데, 내 영혼의 귀가 명확히 알아들었다. 물론 말이 안 되는 거라 스스로도 의심이 갔지만, 그냥 무시하기엔 그 속삭임이 너무도 선명했다. 결국 난 하던 청소를 멈추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프렌에게 가자고 했다. 그러자 남편이 할 일이 너무 많다며 다음에 가자고 미뤘다. “안 돼. 당장 가야 해. 프랭크가 나한테 가달라고 부탁한단 말이야.” 내가 이렇게 우길 때면 그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남편은 결국 모든 일을 미루고 집으로 왔다. 같이 마트에 들려 여러 종류의 고기와 초콜릿, 그리고 커다란 꽃다발을 사 들고, 우린 서둘러 프렌의 집으로 향했다. 가보니 얼마 동안 쌓인 눈인지 그득한 눈이 현관문을 막고 있었다. 꼭 사람이 살지 않는 집처럼 집 주위로 사람 발자국 하나가 보이질 않았다. 다리가 푹푹 빠지며 집으로 들어간 내가 두어 시간을 프렌과 수다를 떠는 동안, 남편은 밖에서 눈을 치워 사람들이 쉽게 찾아들도록 길을 내기 시작했다. 프렌의 얼굴엔 여전히 슬픔이 가득했다. 슬퍼하는 그녀의 다리에 얼굴을 비벼대는 개를 쓰다듬으며 프렌이 말했다. “이 개는 프랭크 거고, 프랭크가 죽던 밤 내 개는 아무 이유도 없이 죽었어.” 혼자 가기 싫은 프랭크가 그녀의 개를 데려갔고, 자기 개를 프렌에게 남겨놨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던 프렌이 갑자기 소리를 낮추더니, “그런데 프랭크가 아직 못 떠나고 이 집에 남아있어.”라고 속삭였다. 내가 뭐라 대꾸를 못 하고 빤히 바라보자, 그걸 증명하겠다는 듯 프렌이 내 손을 잡더니 집안 여기저기로 날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욕실 벽과 주방 벽, 그리고 갓등의 얼룩까지 모든 얼룩에 프랭크의 얼굴 형상이 보인다며 내게도 보이는지 물었다. 내 눈엔 그저 얼룩으로만 보였지만, 프랭크가 너무도 그리운 그녀에겐 그리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 난 고개를 끄덕여줬다. 봄이 오면 또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프렌을 꼭 안아 주고는 우린 짧은 방문을 마치며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딱 6일이 지났을 때, 남편이 너무도 놀란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프렌이 지난밤에 그냥 자다가 죽었대.” 순간 너무 놀란 난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그래서 그때 그 말이 내게 들렸던 거구나! 프렌에게 남은 일주일, 그 마지막을 꽃과 맛있는 음식으로 대접하고픈 프랭크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닿았던 거구나! 그때 그 속삭임을 무시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잠시 말을 잃었던 난 겨우 입을 뗐다. “근데..이상하게도 이번엔 안 슬프다. 이젠 프렌도 오로라가 됐으니, 프랭크와 만나서 춤을 추겠지?” 그렇게 프렌이 떠난 날, 난 내 속에 남아있던 프랭크마저 편히 보내주었다.
글을 쓰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밤인데도 창밖이 낮처럼 환하다. 혹시 오로라가 떴나 싶어 뒷마당으로 나가보니, 쌓인 눈보다 더 새하얀 달빛이 세상을 정갈히 감싸고 있다. 그리고 그 보름달 옆으로 무지개 모양의 오로라가 하늘에 길게 걸려 출렁이고 있다. 반가움에 “모두 잘 있어요?”라고 묻자, 우리 할머니, 프랭크, 프렌, 그리고 그들의 개까지 둥글게 모여 신나게 춤을 춘다.
막연한 공포로만 남아있던 내 어린 시절의 혼불과는 달리, 여기서 만난 ‘혼불의 춤’인 오로라는 나를 낯선 사람들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주었다. 처음 이 북쪽으로 와 낯섦과 외로움에 힘겨워하던 내게 오로라는 어떤 낯선 이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줬다. 그렇게 난 오로라를 통해 점점 세상과 친화력을 지닌 사람이 되어갈 수 있었다. 오로라가 넘실대는 하늘을 향해 내가 휘파람을 불자, 그에 반응이라도 하듯 오로라가 연신 모양을 바꾸며 너울거린다. 미소 지으며 난 다시 휘파람으로 화답한다. 저 오로라 아래서 난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언젠간 나도 저 은하수로 춤추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