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영이신 여호와 당신의 뜻을 따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복음을 위하여 은혜로 허락하신 생명의 근원으로 이성과 감성인 자유의지를, 피조물의 본능을 따라 소유하는 복을 덧입고, 그 자유의지를 따라 회개함으로 복음으로 구원받아,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로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인, 온전한 영인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었음을 도구로 잘 사용한 장막인 신기루 피조물의 형상을 벗을 때까지 동상이몽이 아니라 이심전심인 실삶으로 확인하고 누리기 위하여
서로 발을 씻기며 서로 사랑함으로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고, 외모의 형상인 육체를 가진 피조물로서는 절대로 누릴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동상이몽이 아니라 이심전심인 실삶으로 확인하고 누리기 위하여 회개를 하기보다
외모인 공평 타당함으로 판단하여 상상의 용을 그리듯이 피조물 스스로 만든 신기루 도덕천을 표적으로 구하여 구원을 이루려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을 정답으로 착각한 철학이나 종교를 비롯하여 이 세상 모든 학문의 대단한 선생들이 만든 신기루 처방전을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달콤한 신기루 유혹의 명분과, 온갖 감언이설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표리부동의 무례한 위협과 협박으로 정답처럼 미혹하여 세뇌하는 교육과 훈련 등으로 죄인이나 괴물로 만들고 있는 현실의 한 단면을 보면
진짜 복음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이든지 아니든지, 하나님의 아들이든지 아니든지, 그리스도로 우리들의 구세주이든지 아니든지, 마리아의 예수 잉태가 성령이든 불륜이든, 성폭행이나 속도 위반 등 어떠한 상태의 잉태라도 문제없고, 예수가 창녀 마리아와 사랑을 했어도 문제 없을 뿐 아니라 더 멋지고,
자녀가 있던 없던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기적을 행하였거나 아니했거나, 십자가에서 죽었거나 말았거나, 부활을 했거나 아니했거나, 효자거나 아니거나, 도덕적인 것을 비롯하여 어떠한 외모의 조건이나 자격에 상관없이 언제나 어디서나 온전하고 완전한 정답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사렛 예수와 복음을 외모인 공평 타당함이나 공의롭게 판단한 신기루 처방전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복음서를 언어도단 불립문자라고 하면서도 예수와 이심전심으로 일심동체를 이룸으로 아담과 하와가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솔로몬처럼 되었다가 예수처럼 되는 복음으로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로 거듭나기보다
상상의 용을 그려 진짜 용으로 착각을 하듯이 종교나 철학을 비롯하여 이 세상 모든 학문의 대단한 선생들은 정답을 소유하지 못하여 정답을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삯꾼이나, 사기꾼이 되어 외모를 따라 공평 타당함이나 공의롭게 판단한 각자 자신들의 의사인 신기루 처방전을 정답으로 착각하여 정답을 소유한 것처럼 미혹하여 주장하며 자신들의 야망과 욕망의 배를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처럼
또 정답도 모르고 이 세상에서도 ADHD처럼 약자나 병자로 취급 받아 결국 울며 겨자를 먹는 것처럼 죄인이나 괴물이 되어 동상이몽을 꿈꾸며 신기루 처방전을 정답으로 착각하여 공부하고, 일하고, 운동하고, 돈 벌고, 사업하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연애하고, 사랑하고, 결혼하여 자녀 낳아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하여 열심히 그리고 신나게 또는 억지로 달려가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의 본질은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이 아니고
또 정답이 아닌 외모를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화장은 물론 의상도 부족하여 다이어트에 성형 그리고 성전환의 발악을 하는 것처럼 오히려 앞장서서 외모를 따라 신기루 도덕천과 이 세상을 표적으로 구하므로 정답 없이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나, 다람쥐 쳇바퀴 같은 허무한 인생이 되어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는 짓을 본인은 물론 스스로 앞장서서 가장 사랑한다는 자녀를 비롯하여 주변에 똥칠을 하는 불의와 불법을 정답처럼 행하고 있다는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이 스스로 만든 신기루 처방전을 정답으로 착각하여 신기루 도덕천과 헛되고 헛된 신기루 외모인 나사렛 예수 그리고 신기루인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표적으로 구하는 철학이나 종교를 비롯하여 이 세상 모든 학문의 대단한 선생들이 만든 신기루 처방전을 정답으로 착각한 부모들이 앞장서서 자녀를 괴물이나 죄인으로 만드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을 하는 것처럼
4/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는 그림은
온전함의 무지로 복음을 외모인 공평 타당함이나 공의롭게 판단한 것으로 이는 곧 피조물과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을 분별하지 못한 무지를 따른 것으로 바로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만약 위의 기록된 내용이 사실이면 하나님 스스로 의롭지 않는 사람을 의롭다고 하는 꼼수를 정답으로 미혹하는 불의와 불법의 하나님임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일 뿐 아니라
가장 예쁘게 보이고 착하게 보여 흡족해 하신 범죄하기 전 아담과 하와에게 그런 구원의 은혜를 베풀었으면 모든 것이 온전하게 해결될 참으로 간단한 일을 비겁하고 못난 아브람을 택하여 생쇼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어느 누구도 온전하지 못하여 모두가 구원에 목말라 갈급하고 있다는 것은
정답을 알지 못하는 종교나 철학을 비롯하여 이 세상 모든 학문의 대단한 선생들이 만든 신기루 처방전을 따라 책임과 의무가 있는 구속을 자유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하나님께 구속된 것을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인 구원으로 착각하는 권모술수와 표리부동의 곡학아세로 참으로 생뚱 맞고 어색한 중언부언이요 횡설수설의 한바탕 굿판으로 바로 알 때
바울의 주장대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행위로 받은 것처럼 은혜인 공짜가 아니라 믿음의 보수로 구원을 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은혜인 공짜로 받은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작금의 현실에서 드러난 지적 재산권이나 정신적인 위자료 등의 실체를 모르는 무지에 따른 수준 이하의 주장이고,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그림도
아브람이 할례 전에 신기루 도덕천으로부터 믿음으로 보수로 의인으로 인정받고 그 후에 할례를 받았으니 할례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아브람을 조상으로 믿으면 구원의 자녀가 된다는 억지를 부리는 주장으로 만약 이 주장이 참이면 바울이 굳이 바울 복음을 만들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기루 처방전인 바울 복음을 만들었다는 것은
위의 내용이 억지 주장임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람 자리에 나사렛 예수를 넣어 표적으로 구하며 할례와 무할례를 교묘하게 빙자하여 열방의 종교로 확장하는 명분의 도구로 이용하는 권모술수와 표리부동의 곡학아세로 참으로 생뚱 맞고 어색한 중언부언이요 횡설수설의 한바탕 굿판으로 바로 알아야 하고,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는 그림도 백 세에 자녀를 생산한 것이 특별한 기적이나 이적이나 하나님의 뜻으로 미혹하여 세뇌하고 있지만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고 하는 것처럼 그 당시의 시대상으로는 아브람과 그 아내 사래의 문제일 뿐 보편적인 일 일뿐 아니라
아브람의 실삶도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는 것처럼 백세 전에 자녀를 생산했고 또 아내 사라가 127세에 죽은 후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라는 것처럼 보편적인 아브람의 삶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결국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권모술수와 표리부동의 곡학아세로 참으로 생뚱 맞고 어색한 표리부동의 중언부언이요 횡설수설의 한바탕 굿판으로 바로 알 때
동상이몽인 피조물이 스스로 만든 신기루 처방전을 정답으로 착각하여 신기루 도덕천과 헛되고 헛된 신기루 외모인 나사렛 예수 그리고 신기루인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표적으로 구하도록 미혹하는 중언부언이요 횡설수설의 한바탕 궤변의 굿판을 펼치므로 온전한 복음에 똥칠을 하기보다
회개함으로 복음으로 구원받아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인 온전한 영으로 생명으로 거듭나 서로 발을 씻기며 사랑하는 질풍노도의 연애인 이심전심으로 일심동체가 되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온전한 영이신 여호와처럼 온전한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실삶으로 확인하며 신나게 누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