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30년 공직 생활을 마감한 각별한 친구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공직자 중에서는 누구보다도 순박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다. 강직한 성품 탓으로, 상명하복의 공직문화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를 힘들어했지만, 초지일관 본분을 지켜 온 청백리였다. 우리 두 가족은 안팎으로 자연을 감상하는 마음이 닮아 부부 여행을 함께하는 기회가 많았다.
삼 년 전에 함께했던 추자도 여행을 잊을 수가 없다. 추자도는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비롯한 네 개의 유인도와 서른여덟 개의 무인도로 이뤄진 섬이다. 어종이 풍부하여 낚시 마니아들에게는 성지이기도 하다. 마침 친구 부인의 지인이 추자도에 투룸을 갖고 있어 우리는 그곳에서 일주일간을 머물기로 했다. 제주 동문 시장에서 간단한 밑반찬을 준비하여 고속 페리 퀸 스타에 올랐다. 검푸른 파도를 헤치며 한 시간 만에 도착한 상추자도, 우리는 그곳에서 세상 풍파에 휩쓸려 은둔의 삶을 살아가는 세 사람 K, Y, H 선생을 만날 수가 있었다.
투룸의 주인인, K 선생은 서울에 있는 명문, S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삶의 향방을 잘못 잡아 정치의 구렁텅이에 헛발을 내딛고 말았다. 유명 정치인 P 의원과 정치적 동행을 한 것이 패착이었을까. 끝내 본인의 꿈은 이루지 못하고 낭인으로 전락하여 추자도에서 낚시걸이의 삶을 살고 있었다. 훗날 P 의원이 K 선생 위문 차 딱 한 번 추자도를 다녀간 적이 있다지만 그에 대한 기억들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두 사람 간의 정치적 이면사는 가슴에 묻어 두기로 한다.
또 한 사람 Y 선생은 서울의 명문사학 K 대학을 졸업하고 경기도에서 공장을 운영하였으나 IMF 된서리에 뒤통수를 맞고 추자 섬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주 가끔 서울에 있는 부인이 다녀간다고 하였으나 여기저기 홀아비 냄새가 진동한다. 곰팡이로 얼룩진 벽 하며 녹슨 쇠못에 걸린 후줄근한 면바지 하나, 심하게 구겨진 바짓가랑이에 삶의 고독이 대롱거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리모컨으로 아침을 열고 하루를 닫는 외톨이 인생, 그래도 손수 끓인 매운탕을 냄비 채로 가져와 소주 한 잔 따라주던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말벗이 그리워 우리 곁을 기웃 기웃대던 H 선생, 그는 최대 일간지인 C 일보의 편집국 기자 출신답게 이론이 정연하고 언변이 출중하신 분이었다. 은퇴 후에 말 못 할 사연으로 부인과 졸혼하고 추자도의 칙칙한 골방에서 외톨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때의 혈기 서린 기풍은 간 곳이 없고 세월의 풍상이 머리 위에 하얗게 서리 내렸다.
K, Y, H 세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위무하고 모자람과 외로움을 채워주는 상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추자도에서는 이렇게 한순간 세상을 헛발질하여 독거 인생의 고독을 삼켜야 하는 사람이 많이 산다고 한다. 대부분이 남자라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그들의 인생역정을 그 누가 탓하리. 뜻대로 살아지는 세상이 아닌데.
추자도 여행 셋째 날, K 선생이 낚시 도구를 챙겨 우리 일행을 갯가로 인도하였다. 그의 오랜 경험으로 익혀 둔 낚시 포인트였을까, 바다낚시가 처음인 나에게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입질한다. 신입생 환영이라도 하듯 미끼를 툭툭 치고 질질 끌고 다닌다. 잠깐에 쿨 박스가 가득해진다. 바다낚시의 손맛, 그 짜릿한 감동은 지금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바람도 상큼한 갯바위에 앉아 금방 잡아 올린 줄돔을 회쳐놓고 소주잔을 부딪치던 그 날의 낭만을 평생토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되리라.
그날 저녁 우리는 모두 K선생 집에 모여 손수 잡은 생선을 회쳐먹으며 십년지기 친구라도 된 듯 사회적 이슈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밤새는 줄 몰랐다. 첫 만남이었지만 동시대를 살아온 친근감으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K 선생의 거실에는 언제나 원추리꽃이 화병에 꽂혀 있었고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의 선율이 우렁우렁 차게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모진 세파에 할퀸, 곡절 많은 삶의 애환과 고적함을 달래 보려는 몸부림이 아니었나 싶다. 한 때는 중정 원에서 깃발을 날리던 사람이 권력에 매료되어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패가망신하고 단명한 고등학교 친구가 오버랩된다. 권력에 눈이 멀면 인생도 눈이 먼다는 이치를 다시금 깨우친다.
우리는 넉넉한 갯바람을 쐬며 응어리진 삶의 무게는 넘실대는 파도 소리에 묻어 버리고 해풍을 먹고 자란 뽕잎 차를 끓여 마시며 우정의 꽃을 피웠다. 오돌토돌 톳나물 무쳐 먹으며 추자도 입맛도 한껏 즐겼다.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에는 빨간 등대 길을 거닐며 쏟아지는 빗물에 흘러간 세월을 적시고,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어 외롭다는 친구의 우산 속 독백을 어루만져 주었다.
추자도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작별의 시간, 옥상에 말려 놓은 뽕잎을 거두고 동네 할머니한테서 구매한 옥돔을 단단히 챙겼다. 그리고 K 선생을 찾아가 정중하게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부산 오시면 꼭 연락을 주십시오”라는 언약도 주고받았다. 그러나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어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우리에게 추자도의 참맛을 보여 준 사람, 식견이 청산유수 같았고 인정이 넘쳐흘렀던 그분에게 더 이상의 애한(哀恨)이 없기를 빌어본다.
추자도에는 이렇게 그 누군가가 남모르게 흘려야 했던 눈물 자국, 어쩌면 우리가 함께 안고 가야 할 아픔들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인생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도 이 세상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는 의미를 눈빛으로, 마음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바다같이 깊고 넓은 가슴으로 그들의 아픔을 안아 줄 그날이 언제 오려나. 수평선 너머 자욱한 물안개가 마음을 적신다
긴 장마가 그치고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어느 가을날, 추자도 여행을 함께했던 친구 부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고 있었다. “남편이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만감(萬感)이 교차한다. 미스터 송, 자네는 가고 없지만, 너와 내가 함께한 세월의 흔적들은 그리움이 되어 영원토록 나와 함께하리라.
지금도 그곳 추자도에는 파도 소리에 갈매기 떼 날아오르고 원추리 꽃잎이 갯바람에 한들한들 춤을 추고 있겠지. K 선생의 거실에서 우렁우렁 대던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의 선율이, 가 버린 친구의 운명과 함께 아릿하게 가슴을 적셔온다. 추자도의 일주일.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했던 두고두고 생각나는, 한 자락 바람 같은 인연이었나.
이제는 불러도 대답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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