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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재림을 위한 준비
[1, 2]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데살로니가 교회에 환난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환난 중에 믿음을 잃어버리게 될까봐 염려하는 마음이 생겼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돌밭에 뿌려진 씨들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해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들을 가리켰다(마 13:20, 21). 교회 안에는 그런 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어 그 교인들의 형편을 살피고 그들을 권면하게 하였다. 바울은 디모데에 대해 말하면서 그를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이라고 묘사하였다. 전통사본에는 '또한 우리의 동역자'라는 말이 들어있다. 바울에게 그런 좋은 동역자가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바울의 전도 사역에서 그를 도와 성도들의 믿음의 형편을 살필 수 있는 동역자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디모데에 대해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고 증거하기도 하였다(빌 2:20).
바울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목적은 그들을 굳게 하고 그들의 믿음에 대해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이었다. 전통사본에는 '위로함'이라는 말 다음에 '너희를'이라는 말이 들어있어 뜻이 더욱 분명하다. 목사의 일차적 사명은 교인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3, 4]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디모데를 통하여 믿음에 굳게서고 위로함을 얻는 것이 필요한 것은 그 여러 환난 중에서 그들이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원문에는 3절 중간의 '우리가 이것을'이라는 구절과 4절의 '우리가 너희와'라는 구절이 '왜냐하면 우리가 이것을', '왜냐하면 우리가 너희와'라고 되어 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환난 중에서 요동치 않아야 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이 우리가 그런 환난을 당하도록 정하신 줄 알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바울이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장차 받을 환난에 대해 미리 언급한 대로 된 것을 알기 때문이다.
[5]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결신자들을 확인하여 교회를 세우기만 하지 않고 그 교인들의 믿음이 보존되게 하기를 힘썼다. 왜냐하면 시험하는 자 곧 사탄이 그들을 시험하여 믿음을 잃게 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 교인들이 믿음을 잃는다면 바울의 전도 사역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복음을 전하고 결신자들을 얻고 교회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은 그 교인들로 하여금 사탄의 시험에 넘어지지 않고 믿음에 굳게서고 믿음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이 일이 목회자의 일차적 임무이다.
[6, 7]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바울의 염려는 감사하게도 염려에 불과하였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과 사랑 가운데 거하고 있었고 또한 항상 바울 일행을 기억하고 간절히 보고자 하였다. 그것은 바울 일행에게 위로가 되었다. 원문에는 '모든 궁핍과'라는 말이 '우리의 모든 궁핍과'로 되어 있다. 바울 일행은 그 당시 많은 궁핍과 환난 가운데 처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이 위로를 받은 것은 어떤 물질의 공급 때문이 아니라,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의 소식 때문이었다. 성도의 믿음의 소식보다 목사를 더 기쁘게 하고 그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
[8]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그러므로'라는 원어(호티)는 '왜냐하면'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의 소식이 왜 바울에게 위로가 되었는지를 말한다. 즉, 그는 그들이 주 안에 굳게 선다면, 우리가 이제 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는 말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염려 때문에 바울의 심정이 심히 약해졌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믿음의 소식을 들은 바울은 새 힘을 얻었다.
[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바울은 이 모든 일, 즉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이 환난 가운데서도 보존되고 사탄의 시험에 넘어지지 않았음을 크게 기뻐하면서 그것을 인해, 그들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로 보답하기를 원한다. 그것은 그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그가 깨닫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시작자시요 완성자시며(히 12:2), 우리를 환난 중에서도 지키시는 자이시다(시 91편). 그러므로 성도 개개인이나 또 성도들을 위해 세움 받은 목사들은 자신과 교회의 믿음의 보존을 위해 물론 성실히 힘써야 하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사람은 부족하고 무익한 존재이며 우리를 굳게 세우시는 이는 오직 우리 하나님뿐이시다.
[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기를 주야로 심히 간구하고 있었다. 이것은 목사의 사명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목사를 교회에 보내시고 세우신다. 목사는 이 사명을 위해 자신이 먼저 믿음에 굳게 서고 온전해야 할 것이며, 또 성경 말씀의 충만함을 얻어 교인들의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는 도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가 이 일을 위해 충성하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실 것이다.
결론적으로, 1절부터 10절까지에 나타난 몇 가지 진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신앙생활에는 환난과 시험이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여러 환란 중에' 있음을 증거하였고 우리가 이것을 당하게 세우심을 받았고 또 바울 자신이 그것을 그들에게 미리 말해두었음을 증거하였다(3, 4절). 또 그는 교회를 시험하는 자가 있음을 증거하였다(5절). 또 바울 자신도 많은 궁핍과 환난 가운데 있음을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환난과 시험이 많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환난 중에도 믿음에 굳게서는 것이 필요하다. 본문에는 '너희 믿음'이라는 표현이 5번이나 나온다(2, 5, 6, 7, 10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환난 가운데도 믿음에 굳게 서기를 소원하였고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에 굳게 서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의 믿음의 굳셈이 필요하고 특히 환난 가운데서 그것이 필요하다.
셋째로, 성도의 믿음의 굳셈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목사들을 세우셨을 뿐만 아니라(2, 10절), 친히 우리를 지키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신다(9절).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보답하기를 원하였다. 오늘날 우리도 목사의 성경적 설교를 귀히 여기고 사모하며 또한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의지하자.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원문에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자신(아우토스)과'라고 되어 있고, 또 전통 사본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이라고 되어 있다. '직행하다'는 원어(카튜뒤노)는 '곧게 만들다, 인도하다'는 뜻이다. 본절은 바울 사도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의 길을 인도하여 데살로니가 교회로 가게 해주실 것을 기원한 것이다. 이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진리가 나타나 있다. 우리가 계획을 할지라도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잠언 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잠언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이 말씀들은 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진리를 보인다.
[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주께서'라는 말은 우리의 성화가 주께서 도우시며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인다. 주께서는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5절).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에서 우리의 성화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짐을 말씀했다. 로마서 8:13, 14,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또 에베소서 4:16은 말씀하기를, "그[그리스도]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라고 했다.
바울 사도는 주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시기를 기원했다. 성도들 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은 주 예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새 계명이었다(요 13:34).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에서 서로 사랑하는 자가 어두움에서 나와 빛 가운데 있고 사망에서 나와 영생을 얻은 자라고 증거하였다(요일 2:9; 3:14, 15). 이와 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일이다.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속에는 원수 사랑도 포함된다. 마태복음 5:44에 보면, 주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전통사본에는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베풀며"라는 말씀이 첨가되어 있다. 바울은 주께서 이러한 사랑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더욱 많아 넘치게 해주시기를 기원한 것이다.
[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바울 사도는 또한 주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시기를 기원한다. 사람의 마음은 영혼의 활동기관이다. 그것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거하는 곳이다. 성도의 마음은 참으로 중요하다. 마음이 연약하면 범죄하기 쉽다. 그러나 마음이 굳세면 죄를 이기고 의를 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시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바울 사도는 우리 주 예수께서 세상에 다시 내려오실 것을 말씀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다. 주께서 다시 오실 때, 주께서는 그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 '그의 모든 성도'라는 말은 지금 천국에 들어가 있는 성도들의 영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히브리서 12:23의 말씀대로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이다. 그들을 데려오시는 것은 몸의 부활을 주시기 위해서이다(살전 4:14-16).
바울 사도는 주께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마음을 굳세게 하셔서 주의 재림 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기원했다. 주의 재림 때 우리는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이지만, 지상에서의 우리의 행위들에 대한 심판과 칭찬과 책망도 있을 것이다. 로마서 14: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고린도후서 5:9, 10,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