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주니어 준우승
뉴질랜드 주니어 골프 대회, 최종 결선 날이었다. 오클랜드 북단. 왕가파라오아 반도 안쪽에 자리한 걸프 하버 컨트리클럽.
마지막 라운드 18 홀 째였다. 그동안 성적으로 보면, 마리아와 전년도 우승자 샐리가 선두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다퉜다.
현재로서는 동점이었다. 먼저 샐리가 그린위로 공을 올렸다. 홀컵에서 1m 거리에 공이 멎었다.
다음은 마리아 차례였다. 마리아 공은 모래에 빠진 상태였다. 마리아가 샌드웨지를 꺼내 자세를 가다듬었다.
눈을 들어 그린 쪽을 쳐다봤다. 모래위에 있는 공에 시선을 집중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드디어 가볍게 툭 쳐올렸다.
순간. 갤러리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불과 홀컵에서 50 cm도 안 되는 거리였다. 샐리가 살짝 위축되었다.
자기 공보다 홀컵에 더 가까이에 있는 마리아 공을 쳐다봤다. 우승 마지막 순간이었다. 샐리가 가볍게 몸을 풀었다.
자세를 가다듬더니 안경을 치켜 올렸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퍼터로 공을 툭 밀었다. 딸랑 공이 그대로 홀컵에 빠져들었다.
순간, 샐리의 얼굴이 빛났다. 마리아는 초조한 기색이었다. 지켜보던 많은 갤러리들이 숨을 죽였다.
특히나 가까이에서 보는 마리아 아빠, 케빈의 얼굴에 긴장이 감돌았다. 옆에서 함께 지켜보는 민재가 마리아 아빠 손을 잡았다.
뒤에서 바라보는 마리아 아빠 선배. 한인회장도 마리아 아빠 어깨를 살짝 토닥여줬다.
“걱정 마. 들어갈 거야. 다시 또 타이를 이루겠어.”
그 순간, 옆에서 보는 오클랜드 총영사도 숨을 죽이고 쳐다봤다. 한인회장의 적극적인 권유로 나온 자리였다.
우승하게 되면 오클랜드 교민 잔치 날일 테니까. 특별한 경사로 환영하는 자리가 되기를 은근히 바랬다.
옆에 뉴질랜드 코리어 신문 사장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다. 대서특필 감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에리카 코치가 마리아를 향해 눈빛을 쏘았다. 자기 가슴을 도닥거렸다. 침착하게 하라고. 사인을 보냈다.
마리아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가 하늘을 한 번 쳐다봤다. 땅을 내려다 봤다.
호흡을 가다듬고 퍼터를 움직이려다 말고 잠깐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꽤 긴장이 되는가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였다. 그 시선에 익숙해 지지 않은 터였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눈이 홀컵을 향했다.
가볍게 퍼터를 움직였다. 살짝 밀었다. 홀컵으로 향하던 공이 홀컵에 그대로 흘러들어가나 한 순간.
홀컵 1센치 옆을 지나며 살짝 넘어갔다.
오, 이게 웬일이야?
많은 사람들이 입에 손을 대고 어쩔 줄을 몰랐다. 게임은 끝났다. 승부는 명확히 결정되었다.
순간. 마리아가 그린에 그대로 앉아버렸다.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결국 마리아는 준우승.
샐리가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주니어 대회에 우승자가 되었다. 드디어 모든 상황을 정리한 상태에서 시상식이 열렸다.
환희에 가득 찬 샐리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호했다. 다음에 수상을 한 마리아가 고개를 떨구고 트로피를 받았다.
갤러리들의 박수 소리가 골프 클럽을 가득 채웠다. 마리아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마리아. 됐어. 이번 경기 잘 한 거야. 이젠 좀 쉬자. 긴장도 풀고. 내 년에 분명 마리아가 우승할 거야.”
에리카 코치가 품에 안긴 마리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위로와 격려의 말로 어린 마음을 도닥여 줬다.
마리아가 에리카 코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마리아 아빠 품에 안겼다. 마리아 아빠가 마리아를 번쩍 들어올렸다.
아빠와 딸. 부녀의 눈에서 나온 눈물이 햇볕에 반짝였다. 다이어몬드처럼.
옆에서 지켜보는 민재 가슴이 뜨거워졌다. 사람이 산다는 게. 바로 저런 모습이 진짜 아닌가. 아빠와 딸!
그제야. 마리아가 민재에게 달려들었다. 민재가 힘껏 안아주었다. 마리아가 감정을 온퉁 다 쏟아냈다.
눈물을 펑펑 쏟았다. 민재 가슴에 마리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홍수를 이루는가 싶었다. 울먹이는 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선생님. 죄송해요.”
“마리아가 참피언이다. 좋은 경험했어.”
민재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마리아 눈물을 닦아 주었다. 마리아가 쓰던 하얀 손수건이었다.
저번에 마리아 골프공을 맞고 죽어갔던 고양이를 살려냈던 민재. 그 이마에 흐른 땀을 마라아가 닦아 주고서 민재 손에 쥐어준 하얀 손수건이었다.
민재가 그 손수건을 쥐고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걸 본 마리아. 눈물을 그쳤다. 다짐했다. 굳게.
‘반드시 우승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릴 때도. 저 손수건으로 선생님이 닦아 주실 거야. 그때를 위해서. 오늘은 여기까지.’
순간. 마리아가 민재 손을 꼭 잡았다.
“선생님, 다음에는 꼭 우승할게요. 오늘은 좀 긴장되고 떨렸어요.”
“마리아. 잘 했어. 준우승까지 하면서 많은 것 배웠지. 큰 경험한 거야. 앞으로 세계적 무대에 서면 더해.
장타는 잘 쳤고, 샌드웨지 피칭도 좋았어. 결국에 문제는 숏 게임. 피칭과 퍼팅. 다음에 중요한 게 정신력, 멘탈 관리지.
아직 아마추어라서 멘탈 관리가 잘 안 되는데. 프로가 되면 정말 필수적이야.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밥 먹으러 가자.
마리아 좋아하는 것. 선생님이 사줄게.“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일행들이 각자 위치로 떠났다. 민재가 함께 한 일행들에게 제안했다.
“오늘. 마리아가 준우승한 기념으로. 제가 한턱 쏘겠습니다. 저기 타카푸나에 있는 아리랑 식당 아시지요?
지금 그곳으로 가시죠? 음식 예약 해놓았습니다. 거기 음식점 사장님이 마리아 후원하시는 분인데요.
앞으로 마리아 후원회 회장도 할 분이거든요. 함께 가셔서 식사도 하며 즐거운 시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민재의 식사제의에 모두 흔쾌히 대답하고 아리랑 식당으로 향했다. 민재가 아리랑 식당에 바로 전화했다.
“아리랑 사장님. 아니. 누님. 저 민재예요. 오늘 마리아가 골프 주니어 대회에서 준우승했어요. 지금 일행 7명이 식사하러 가요. 준비 좀 해줘요.
누가 오냐고요? 마리아. 마리아 아빠. 마리아 코치. 한인회장. 뉴질랜드 코리아 신문 사장. 총영사. 그리고 저요.
누님 마음대로 차려줘요. 다들 배고프거든요. 오늘 마리아 후원회도 만들 거예요. 누님이 후원회장 맡아줘요.
제가 추천한다고 할 테니까. 누님은 그냥 못 이긴 척 하면서 맡아주면 돼요. 다 누님한테도 좋은 일 많이 생길거니까요.
이만 끊어요. 약 30분 후에 도착할 거예요.“
민재가 따발총처럼 이야기해도 아리랑 사장은 예의 좋은 목소리로 잘 받아주었다. 역시 천성이 밝아. 딱 후원회장 감이야.
“동생. 수고했네. 고마워. 내가 후원회장이라고. 지나가는 개가 웃는 거 아냐? 내가 뭘 한다고. 알았어. 조심해서 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거꾸로다. 오늘은. 하여튼 구경은 잘했는데. 이제 먹을 일만 남았다. 모두 생각보다 일찍 식당에 도착했다.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서. 기본 음식 세팅을 가지런히 해 둔 게 보기에도 좋았다. 일행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마리아 주니어 골프 준우승. 축하해. 다들 시장하실 것 같아서. 우선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했어요.
고기가 신선해서 먹을 만 할 거예요. 아. 참. 마리아 코치님은 현지인 키위분이라서 이 음식이 맞을지 모르겠네요.“
아리랑 사장이 서글서글한 음성으로 팀원을 환영했다. 양쪽 식탁 가운데 지글지글 끓는 두르치기 요리를 가져왔다.
프라이 팬 두 개에 가득 담긴 두르치기를 보자. 모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민재가 에리카에게 이 음식 어떻겠냐고 물었다.
“저. 한국음식 좋아해요. 삽겹살. 바비큐 불고기. 오늘 건. 처음 봐요. 먹음직 스러워 보여요.”
풍성한 밑반찬에. 싱싱한 푸성귀도 좋았다. 상추. 깻잎. 오이. 파란 고추. 역시 두르치기는 상추쌈이 제격이었다.
먹는데 위 아래 따질 것 없이. 우선 배부터 채우면서 이야기 했다. 염치 체면 따질 게 없었다.
마리아 아빠가 상추에 밥을 반 숟갈하고 그 위에 두루치기를 얹었다. 쌈을 잘 오므렸다. 옆에 앉은 마리아 입에 갖다 댔다.
마리아가 그 쌈을 받아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예쁘게도 씹었다. 마리아가 아빠처럼 상추쌈을 쌌다.
옆에 앉은 에리카 코치 입에 갖다 대니, 에리카가 싱긋 웃었다. 마리아처럼 입에 넣고 씹었다.
몇 번을 오물오물 꼭꼭 씹었다. 두 눈에 불이 난듯 보였다. 겨우 입속으로 다 삼킬 무렵, 두 손을 입 가까이 대고 흔들었다.
맞은편에 앉은 민재가 얼른 물 컵을 대령시켰다. 에리카가 물컵을 받아 벌컥 벌컥 마셨다.
“우~와! 맛있어요. 그런데 매워요.”
일행들이 그 모습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민재가 에리카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에리카. 당신은 키위 코리언. 우리들은 코리언 키위. 코리언은 매운 데가 있어요. 마리아도 맵잖아요.”
“존. 존 말대로 매운 데가 있어야 골프도 잘 쳐요. 맵다는 것은 매섭다는 뜻도 있어요. 저 또한번 먹어볼래요.”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민재가 깻잎에 두루치기를 얹어 쌈을 쌌다. 바로 에리카 앞에 대령시켰다.
에리카가 그 걸 받아 잘 씹어 먹었다. 민재가 에리카 물 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에리카가 모두 입에 삼켰다.
물을 다시 마셨다. 민재가 했던 것처럼. 엄지를 들어올렸다.
“최고예요. 깻잎쌈은 톡 쏘고 좋아요. 상추쌈과 깻잎쌈의 조화. 피칭과 퍼팅같은 조합이네요.”
한인 회장이 흥겹다는 듯 에리카를 향해 엄지를 올렸다. 칭찬을 돌려서 했다.
“총영사님. 보셨지요. 이 에리카 코치님. 이런 분을 한국 홍보대사로 선임해야겠어요. 한국을 키위들에게 잘 알리도록요.”
“좋은 생각입니다. 마리아에게 거의 무료로 골프 레슨을 해준다니. 그 덕분에 마리아 골프 성적도 일취월장 한 거지요.”
민재가 에리카와 총영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재도 제안을 했다.
“네. 마리아가 오늘이 있기까지. 참 수고해주신 분. 에리카를 위해. 오늘 준 우승한 마리아를 위해. 큰 박수 부탁드려요.”
“짝짝짝!”
손뼉소리가 음식점에 울려 퍼졌다. 두르치기 지글지글 끓는 소리도 함께 번져 나갔다. 민재가 다른 제안을 했다.
“한인 회장님. 부탁 하나 있어요. 마리아 선수가 앞으로 대성하기위해 후원을 적극 펼쳤으면 합니다.
한인회에서 후원 단체로 등록해 주셔요. 그래야 후원자들에게 연말정산시 후원 금액 환급 리펀드도 가능하니까요.
1/3을 환급받는 마리아 후원회가 가동되면 전 교민들 호응과 응원도 많을 겁니다.“
흐뭇한 얼굴로 한인회장이 일어나 승낙의 박수를 쳤다.
그때. 아리랑 안 사장이 식혜와 과일 접시 담은 쟁반을 들고 나왔다. 때는 지금이다 싶었다. 민재가 다음 말을 이었다.
“여기. 그동안 마리아 후원을 위해 수고 하신 분. 안 사장님을 마리아 후원회장으로 추천합니다.”
모두 힘찬 응원의 박수를 쳤다. 안 사장이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다시 손뼉소리가 이어졌다.
“감사합니다. 제가 부족하지만, 딸을 대하는 심정으로 애 써보겠습니다. 후원회 정식 모임인 이 자리 밥값은 무료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안 사장이 마리아 손을 꼭 잡았다. 마리아가 울컥한 눈빛으로 안 사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 총영사가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이거. 마리아 후원금에 보태세요. 안 사장님. 오클랜드 총 영사로서. 참 기쁩니다. 이런 날이 계속되길 기대합니다.
교민들이 이렇게 훈훈하게 서로 돕고 살아가는 모습. 마리아 골퍼의 꿈이 큰 결실을 맺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때였다. 플래쉬가 터졌다. 뉴질랜드 코리어 신문 사장이 일어섰다. 앉아서 축하해주는 모습을 몇 번 더 찍었다.
“오늘 이 기쁜 소식을 신문에 크게 내겠습니다. 저희 뉴질랜드 코리어 신문도 마리아 후원회에 무료 홍보로 돕겠습니다.”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마리아를 중심으로 둘러서서 기념 촬영을 했다. 환하게 웃는 얼굴에 희망과 기쁨이 어려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
75화 끝(5,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