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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 입멸 후 100년경에 원시불교가 분열을 거듭하여 20여 개의 교단(敎團)으로 갈라진 시대의 불교의 총칭. 석가가 세상을 떠나고 100여 년이 지나자 교단 내에서는 교리와 계율의 해석 문제를 놓고 논쟁이 일었고, 이에 따라 과거의 계율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성향과 시대 변화에 따라 융통성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진보적 성향의 두 입장이 공존하게 되었다. 전자를 상좌부(上座部), 숫자적으로 우세하였던 후자를 대중부(大衆部)라 하며 이들의 대립을 근본분열이라 한다. 이후 다시 200~300년에 걸쳐 이들 두 파로부터 다시 분파가 생겨나 기원전 200년경에는 총 2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부파불교는 이 시기의 불교를 일컫는 것으로, 각 교단은 저마다 석가의 교리와 계율을 연구·정리하여 방대한 논서(論書)를 작성하면서 논쟁을 그치지 않았다. '논(論)'이라는 말의 원어가 '아비다르마(abhidharma)이고 이를 한역(漢譯)한 것이 아비달마(阿毘達磨)이므로, 부파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도 한다. 당시 교단의 관심은 온통 석가의 가르침에 충실하기 위한 교리의 해석이었으며, 자연히 출가자와 승원(僧院)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불교의 성격을 띠어갔다. 따라서 출가를 전제로 하여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수행하고, 또 타인의 구제보다는 자기 수행의 완성을 우선목표로 삼았다. 이로 인해 교단으로부터 멀어진 대중들은 교단에 반발하며 불탑(佛塔)을 중심으로 석가에게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로써 대승불교가 탄생하였다. 이들은 개인보다는 전체의 완성을 우선한다는 입장에서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칭하고, 이에 반해 기존의 부파불교를 소승(小乘)이라 낮추어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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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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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의 교리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종파(宗派)의 총칭.
삼론종(三論宗) ·법상종(法相宗) ·화엄종(華嚴宗) ·천태종(天台宗) ·진언종(眞言宗) ·율종(律宗) ·선종(禪宗) 등이 이에 속한다. 석가 입멸(入滅) 후 500년경(BC 100년?) 인도에서 일어난 새로운 불교운동은 그때까지 여러 파로 갈라져 자파(自派)의 주장만이 최상의 것이라고 고집하여 온 불교의 자세를 맹렬히 비판하고, 재래불교를 소승(小乘:Hinayana)이라 폄하(貶下)하는 한편, 대승이라고 칭하면서 이타적(利他的)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활발하고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대승’의 어원은 큰(maha) 수레(yana), 즉 많은 사람을 구제하여 태우는 큰 수레라는 뜻으로,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제도(濟度)를 그 목표로 하였다. 이 운동은 종래에 출가자(出家者:승려)만의 종교였던 불교를 널리 민중에게까지 개방하려는 재가자(在家者)를 포함한 진보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것으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불교 유적인 스투파(stupa:墳墓)를 관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새로운 불교운동은 그때까지 석가에게만 한정하던 보살(菩薩)이라는 개념을 넓혀 일체중생의 성불(成佛)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일체중생을 모두 보살로 보고, 자기만의 구제보다는 이타(利他)를 지향하는 보살의 역할을 그 이상(理想)으로 삼고 광범위한 종교활동을 펴 나갔다.
이 불교운동의 전거(典據)로는 대승불교의 경전이 속속 이루어진 데 있었다. 먼저 《반야경(般若經)》이 나왔다. ‘공(空)’의 사상을 강조하는 《반야경》은 종래의 고정관념을 타파함과 동시에, 일체의 집착(執着)으로부터의 해탈(解脫)을 실천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어 일체를 포함하여 ‘일승(一乘)’을 교설(敎說)하고 구원(久遠)의 본불(本佛)을 세우는 《법화경(法華經)》, 광대한 불타[毘盧遮那佛]의 세계를 교설하는 《화엄경(華嚴經)》, 재가거사(在家居士)인 유마(維摩)가 오히려 출가자(出家者)를 교설하는 《유마경(維摩經)》, 서방정토(西方淨土)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세계를 찬탄하며 일체중생의 구제를 약속하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등이 이루어져 종래의 불교를 일신하는 이 새로운 불교운동을 뒷받침하였다. 이 경전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대승이 불교의 중심세력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거니와, 2∼3세기에는 용수(龍樹)가 출현하여 이 대승불교의 사상적 기반을 확립하였다.
이어 일체중생에 불성(佛性)을 인정하는 여래장(如來藏)을 교설한 《승만경(勝經)》 등의 경전이 이루어졌고, 또한 일체를 마음의 흐름에 응집(凝集)시키는 유식(唯識)사상의 대두에 이어 5∼6세기에는 불교논리학인 《인명(因明)》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한편 대승불교 초기부터 일반민중의 교화를 위해 만들어진 《다라니(陀羅尼)》를 외우고 주법(呪法)을 교설하는 밀교(密敎)가 성하여 7세기 이후 불교활동의 중심이 되었는데, 밀교는 ‘대승’보다는 ‘금강승(金剛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대승불교는 한(漢)나라 때 중국으로 건너가 몽골 ·티베트 ·한국 ·일본 등 이른바 ‘북방불교(北方佛敎)’의 주류를 이루었다. 한국에는 고구려 문자왕(文咨王:재위 491∼518) 때 용수(龍樹)의 《중관론(中觀論)》 등 삼론(三論)을 비롯한 천태(天台), 열반(涅槃) 등의 교법이 들어와 대승불교에 대한 연구 및 교화가 활발하였다. 또한 길장(吉藏)은 삼론을 바탕으로 삼론종(三論宗)을 개종(開宗)하는 등 한국에서의 대승불교는 마침내 독자적인 노력에 힘입어 발전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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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우리는 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