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 사람과의 결혼을 반대하냐고요?
간단합니다. 우리 딸들이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남자들과 중국, 대만 남자들은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 남자들은 권위적이고 여자를 귀하게 여기지 않지요. 더구나 여자들은 가사 노동에 시달리면서 시부모와 남편 사이에서 괴로워합니다. 또 제사 같은 짐을 며느리들만 짊어지게 되는 것도 보기 안타깝고요. 그런 힘든 삶을 내 딸이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맞습니다. 요즘 시대가 많이 변하긴 해서 남자들도 가사 부담을 하고 시부모와의 관계가 개선된 경우도 있긴 합니다. 그래도 여자를 대하는 면에서는 중국이나 대만이 좀 더 귀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또 우리 아이들은 외국인이지 않습니까? 요즘 외국인 며느리들[베트남, 필리핀 등]이 학대받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도망가거나 하는 경우를 보면 경계를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기들이 좋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요. 결혼은 본인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남자들이 한국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좀 더 자유롭습니다. 남자들은 결혼을 하면 여자를 데려오는 것이고, 우리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살 수 있으니 어른들이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 여자와 결혼한 2세대가 많이 있습니다. 지금 화교 세대가 변화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좀 있겠지요. 아이들의 엄마가 한국 사람인 경우가 많아지면서 대만식 교육에 한국식 교육이 겹쳐져 아이들이 대만 방식에만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사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엄마들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한국식 가정 교육이 안 될 수가 없지요. 또 시대가 변하기도 했습니다.
제 경우요? 아! 제 아내는 한국 사람입니다. 안동 권씨입니다. 하하하! 연애 결혼했습니다. 부산에서 만나서 사귀게 되었지요. 집안의 반대요? 아니 없었습니다. 연애 기간도 길었지만 제가 당시 아주 잘 했었습니다. 하하! 딸 둘이 있는데 큰애는 경성대학교
한 가지, 우리도 변해야 하겠지만 한국 사람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에는 ‘신화교’라는 새로운 부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중국 본토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인데,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한국에 정착하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중국인들을 바라보는 한국 사람의 시선은 그렇게 곱지만은 않습니다. 자본가를 대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차이가 많이 나지요. 돈을 쓸 때는 고객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뒤에서 욕을 합니다.
작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차이나타운을 걷던 청년들이 있었는데, 아마도 20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기억이 됩니다만, 당시 상가 거리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나와 앉아 있었지요. 그런데 청년들이 그 거리를 지나가면서 큰소리로 “떼놈××!”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사람들의 입에서 그런 말이 여과 없이 내뱉어지고 있었습니다. 중국인 거리를 걸으면서 그런 단어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인들의 중국인 비하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듣고도 모른 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 겪는 일이라도 참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들을 불러서 ‘떼놈’의 의미를 알고 그런 소리들을 하냐고 야단을 쳐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불쾌했던 기억입니다.
어린 시절,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늘 들었던 소리입니다. 지나가는 우리를 이유 없이 비난했고, 자기들보다 낮은 사람 취급했습니다. 한국 사람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죠. 요즘 한국 부모들이 학교에서 아이들이 왕따 당하는 것 때문에 많이들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역 왕따를 당했었고 지금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간혹 일본과의 관계에서 한국인을 비하하는 ‘조센징’이라는 말을 듣고 분개하는 한국 사람을 보았을 때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남을 배려하는 행동을 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단 중국인뿐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사람들이나 유색 인종에게 특히 불친절합니다. 이를테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무조건 반말부터 한다든지, 동남아 등지에서 시집온 여성들을 돈을 지불하고 사온 물건처럼 대우하고 학대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를 구타하는 사례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도 포악해져서 한국 사람을 해치고, 한국 사람을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일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남을 인정하는 데 조금 인색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국적도 단일 국적을 고수하고 있지요. 외국계 한국인에게 이중 국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사람이면서 외국에 살고 있는 사람, 외국인이면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의 국적을 요구합니다. 요즘은 성인이 될 때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지만, 어쨌든 성인이 되면 하나의 국적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요즘은 예전과 달리 많은 화교들이 한국 국적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좀 더 전문적인 분야에서 일하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이 한국 국적이 필요하니까요.
특히, 서울에 살고 있는 화교들의 경우 부산에 살고 있는 화교보다 빨리 변화하고 있습니다. 서울과 부산은 수도와 지역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귀화를 한 화교가 자신이 화교인 사실을 숨기고 한국인인 것처럼 활동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귀화를 하고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자신들이 더 이상 어떤 불이익도 당하기 싫기 때문이지요. 한편으로는 그들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부산은 내가 볼 때 나 같은 고집불통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보수적이지요. 중국인이면서 부산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요? 하하.
언젠가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와 중국 본토에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미국 여권을 가지고, 저는 대만 여권을 가지고 입국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 친구는 영어로 입국 카드를 작성했고 나는 중국어로 작성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입국 불허를 받았습니다. 아무 이유가 없었지요. 단지 영어로 입국 카드를 썼고 문답을 할 때 영어를 사용한 것이 중국 공안의 비위를 상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너는 중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중국인이냐, 미국인이냐”라고 묻더군요. 그들은 어디에 살고 있으며 국적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귀화를 하거나 다른 곳에 살고 있어도 중국인이라는 정신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중국을 떠났던 것이 이런 강압적인 공산주의가 싫어서였는데……. 어쨌든 그 친구와 저는 겨우 공안을 달래서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서야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고집스러움이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부산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있는 화교들 중에서 가장 고집스럽고 느리게 변화하는 편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정신은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던데, 제가 질문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가수 유승준은 미국 국적을 가지고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군대 안 가서 한국에서 거부당한 경우인데, 왜 추성훈은 일본 국적 가지고도 한국에서 활동이 가능한지 묻고 싶습니다. 어떤 기준이 작용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또 북한을 고향이라고 표명하고 있는 정대세 선수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들의 양극성에 갈팡질팡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정부의 정책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따를 뿐이지요.
다만, 우리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불에 덴 적 있는 아이들처럼 말입니다. 아버지 세대와 우리 세대는 여기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일어난 일들을 거의 다 겪은 사람들입니다. 특히 우리 2세대들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오히려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이 겪으면서 자랐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을 고향이라고 해도 될 겁니다. 6·25 전쟁을 직접 겪은 1세대는 아니지만 전후 부산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우리는 한국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또 우리 부모 세대가 그 시대를 모두 함께 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에서 희망과 실망, 절망을 모두 보고 느껴버렸습니다.
물론 모든 일에는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한국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단행했던 일들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큰 절망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이 땅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 남은 이들이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화교들이겠지요. 아마 그때 이민 갈 돈이 없는 사람들이 남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하! 이젠 여기서 발전하고 여기에 있는 내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디라도 내가 갈 곳이 있지 않습니다. 내 가족이 있는 이곳이 내가 살아가야 할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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