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모든 인생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기간동안 이 땅에서 삶을 삽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들이 무엇을 봅니까? 그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의 모습을 봅니다.
이 시간 말씀에서 등장하는 아브라함을 통해서도 그의 삶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서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본문속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서 나의 삶을 조명받는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창18:1)
창18:1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자기의 장막문에 앉아 있다가 주님을 만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뜨거운 오정 즈음에 시원한 수풀에 들어가거나 장막 안에서 잠을 자지 않고 그는 장막 문에서 무언가 기다렸습니다. 만약 그 시간에 아브라함이 더위를 피해 시원한 숲속에서 잠이나 잤었다면 그는 주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큰 복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만날자를 만나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장막 문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99세입니다. 근 100년동안 하나님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인간 나이 99세는 모든 것을 포기할 나이입니다. 육체도 정신도 모두 쇠약해질대로 쇠약할 나이입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희망의 끈을 놓지않고 그는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삶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이미 이 땅에 오셨지만 각 개인이 주님과 깊은 인격적 만남이 이루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희망이 무엇입니까? 그 분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성경 책속의 하나님, 생각 속의 하나님 만 아니라 실제로 내 인격이 내 영혼이 주님을 생생한 체험으로 만나는 역사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실제로 생생하게 체험하는 그 분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을 사는자가 받을 복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삶의 터전을 가나안 땅을 택했습니다. 화려하고 풍부한 소돔 성이 사람 사는 것같고 인간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곳이었지만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고 아브라함은 광야같은 곳에서의 삶을 택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북적대는 곳이 아닙니다. 화려한 물질문명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고독하고 외로운 그런 곳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로인해 아브라함의 영성은 더욱 주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광야생활에서 주님만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분을 기다리는 인생은 참으로 복이 있는 인생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광야생활을 깊이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광야에서 한결같이 하나님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누구를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까?
1) 마침내 주님을 만납니다.
아브라함은 마침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창18장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고, 경험도 했고, 하나님의 말씀도 이미 들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일생에서 창18장은 그의 일생에 너무나 놀라운 현장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모양을 입고 내려온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창18:1절 이하에 세 사람을 만나는데 두 사람은 분명히 천사입니다.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분은 주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창18장 이전에도 주님의 계시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18장에서는 계시자이신 주님을 직접 만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도 성령으로 내 안에 주님이 계신 사실을 믿지만 획기적인 주님과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획기적인 주님과의 만남은 나의 인생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옵니다.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분을 찾으시고 기다리십시오.
이 말씀을 어제 저녁에 묵상하고 설교본문을 택했는데 오늘 아침에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해 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마음이 불안해지면 마음이 상하고 설교할 의욕도 희망도 놓쳐 버립니다. 속으로 계속 기도히며 이 본문으로 다시 들어가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비로소 불안이 물러갔습니다. 여러분들도 때때로 마음이 불안이 밀려오고 근심이 밀려오고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그 불안하고 상한 마음 그대로 가지고 가지마시고 계속 기도하며 은혜를 갈망하고 말씀속으로 들어가서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교회 나와서까지 불안과 근심과 상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목사님 설교가 아무리 은혜스러워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심하면 불평과 대적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전혀 하나님에 대한 기대나 기다리는 마음이 다 도망가버립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의 나이 99세입니다. 그 99세 안에 인간의 모든 만고풍상이 다 들어있습니다. (1박 2일에 102세 할아버지 앞에 모두 경외, 복종 왜 그렇습니까? 102년의 삶의 권위 앞에 저절로 복종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이는 몇 살 입니까? 100세 할아버지의 권위와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하신 하나님이건만 신자들은 눈에 보이는 100세 할아버지의 권위를 더 크게 여기는 실정입니다.)
저절로 복종될 수 밖에 없는 그 하나님을 아브라함이 기다리다가 만난 것처럼 우리들도 지금 그 기회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고 만난다는 것이 최고의 희망입니다. 마침내 그 분을 만납니다. 마침내 그 분은 오십니다. 내 안에 계신다고 말은 하지만 그 실체를 느끼지 못한 우리들이 그분의 실체를 경험할 하나님은 반드시 나에게도 우리교회도 오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오늘도 희망을 노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 8:17)
2) 마침내 주님을 대접하는 복을 받습니다.
3) 마침내 주님과 대화하는 복을 누립니다.
4)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5) 마침내 중보기도하는 역사를 이룹니다.
6) 마침내 아브라함은 희망을 낳았습니다.
그 희망은 이삭의 출생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장막문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므로 말미암아 소돔성의 멸망 이후에 새 희망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미 받은 약속의 실체로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할 수밖에 없는 길목에서 그 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실체를 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멸망할 세상에 희망의 아들을 낳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소돔성 같은 이 세상을 사모하거나 선택하지 말고 외롭고 고독하더라도 오히려 그 속에서 주님만을 사모하며 영광의 주님을 실제적으로 만날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십시오. 어느 순간에 내 자신이 멸망할 이 세상에 희망의 아들로 태어난 것을 볼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