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같이 큰배한척 하늘에서 내려왔네
앞다투어 올라타니 이리흔들 저리흔들
배떠내려 가지않게 밧줄까지 보내셨네
쌀바위와 귀바위에 영차영차 묶었다네
마루는 강정을 오물거리며 무당할미의 노래에 맞춰 발을 까딱까딱했어.
억수장마 그쳤지만 사방팔방 물천지네
목숨이야 건졌지만 굶어죽게 되었구나
산꼭대기 물빠지자 가지산을 오고갔네
흙퍼나라 배위에다 논과밭을 만들었네
나무베어 함께살집 옹기종기 지었다네
옹달샘도 생겨나니 바가지로 퍼먹었네
세월지나 배위에는 배안마을 생겼다네
어하둥둥 우리마을 살구꽃이 피었다네
어느새 마루도 무당할미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불렀어.
"녀석! 이젠 제법이구나."
"그럼요. 한 번만 더 들어면 백 번인 걸요."
마루가 혀를 날름거리며 쏜살같이 신당을 뛰쳐나갔어. 강정만 머고 내빼는 마루를 보고도 무당할미는 그저 웃기만 했지.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은 어느 날, 촌장과 마을 사람 몇몇이 무당할미를 찾아왔어.
"가뭄이 물러났나 싶더니 화적 떼가 나타나고 이젠 돌림병까지, 아무래도 큰 제를 지내야 되겠소."
촌장이 돌아가자 무당할미는 마루를 불렀어.
"마루야, 네 어미 아비는 좀 어떠냐? 빨리 나아야 할 텐데. 참 며칠 뒤에 제를 지내야 하니 붙들이 어멈 좀 불러다오."
마루는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났어. 마루네는 화적 떼의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마을을 자주 오가던 부모님이 그만 돌림병에 걸리고 말았지. 그래서 마루의 어머니 아버지는 가족과 떨어져 산속 움막에서 지냈어. 마루 누나인 바루가 왔다 갔다 하며 병 수발을 들었단다.
며칠 뒤, 붙들이 어멈이 당산나무 아래에 큰 제상을 차렸어. 마루와 바루는 당산나무에 오방색인 붉은색, 하얀색, 노란색, 검은색, 푸른색 천들을 감았지. 준비가 끝나자 무복을 차려입은 무당할미가 나타났어. 무당할미는 요령을 높이 치켜들고 흔들었어.
천지신명 일월성신 옥황상제 어린백성
불쌍하게 여기시어 재앙뿌리 거두소서
마을 사람들도 한마음으로 빌고 또 빌었어, 무당할미는 마을 곳곳을 다니며 사흘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제를 올렸지.
악귀잡신 물러나고 평안만복 내리소서
마침내 꼬두박샘이라는 우물에 다다랐어. 우물을 발견한 무당할미의 낯빛이 새파랗게 변하는 거야.
"저, 저게 무엇이냐?"
무당할미의 말이 천둥처럼 울렸어.
"가뭄 때 판 우물인데···."
놀란 촌장이 말끝을 흐렸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우물을 파면 다 죽어. 지금 당장 우물을 메워. 어서!"
무당할미가 핏발 선 눈을 희번덕거리며 호통을 쳤어. 그러다가 무당할미는 입에 거품을 문 채 기절하고 말았지 뭐야.
무당할미의 모습을 본 아이들은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어. 어른들도 겁이 나서 슬몃슬몃 뒷걸음쳤지. 촌장은 한 젊은이를 붙잡고 눈짓을 했어. 젊은이는 멈칫하다가 무당할미를 들쳐 업고 마루와 바루 뒷를 따라 무당할미 집으로 갔어. 바루는 얼른 이부자리를 깔았지. 젊은이는 무당할미를 내려놓자 마자 똥 마려운 사람처럼 달아났어. 마루가 부엌에서 물 한 바가지를 퍼왔지. 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무당할미가 자꾸만 중얼거리는 거야.
"우물을 메워야 한다. 우물을 메워야 해."
마루은 왜 우물을 메워야 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무당할미가 대답했어.
"마루야, 네 어미 아비를 살리려면 우물을 메워야 해. 안 그러면 다 죽어."
"할미, 우물만 메우면 정말 우리 어머니 아버지 병이 나을 수 있단 말이죠? 그럼 제가 가서 우물을 메울게요."
순간 마루의 눈이 빛났어. 마루는 부랴사랴 꼬두박샘으로 달려갔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마루는 돌덩이를 주워다 우물에 던졌지.
"풍~~덩."
우물이 얼마나 깊은지 동덩이 떨어지는 소리가 한참 뒤에야 들렸어. 우물을 메우던 마루가 '휴'하고 한숨을 쉬었지. 혼자서 메우기에는 우물이 너무 깊었거든, 돌덩이를 집어넣다가 힘이 빠진 마루는 흑, 나뭇잎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우물에 다 던졌어. 그런데도 우물은 끄떡도 하지 않는 거야. 우물을 더럽혔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물을 길어다 먹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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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점점 마음이 급해졌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딱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지. 똥을 누려고 뒷간에 앉아서도 마루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이었어. 똥이 막 나오려는데 마루가 벌떡 일어났어. 우물에 똥 한덩어리라도 더 넣자 싶었거든, 마루가 엉덩이에 힘을 꽉 주고는 종종걸음을 쳤어, 똥이 나올 것 같으면 걸음을 멈추고는 숨을 '훅'하고 들이마셨지. 엉덩이를 한껏 치켜들면서 말이야. 똥을 참고 걷느라 등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어. 마루는 꼬두박샘에 도착하자마자 두레박에다 참았던 똥을 시원하게 누었지.
"네 이놈! 누가 우물을 더럽히나 했더니, 네놈이 물을 더럽혀 사람들이 병에 걸렸구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어디선가 고함이 들렸어. 마루가 후다닥 바지춤을 올리고 보니 촌장이 무섭게 달려오고 있었어. 얼마나 화가 났는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도깨비처럼 일그러뜨리고 말이야.
"아니에요. 이 우물 때문에 사람들이 아프닥 했어요. 무당할미가 우물을 메워야 한댔어요. 안 그러면 다 죽는다고 했단 말이에요."
무당할미라는 말으 듣자 촌장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어. 마을 제사를 엉망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거든.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이는 게야? 이 녀석이 잘못했다고 빌 때까지 나무에 매달아 둬."
촌장은 마을 장정들에게 명령했어. 마치 모든 재앙이 마루 탓인 것처럼 말이야. 촌장의 말에 마루의 목덜미를 잡고 있던 사람들은 멈칫멈칫했어. 하지만 촌장의 눈총에 마루를 밧줄로 꽁꽁 묶어 나무에 매달았지.
무당할미의 약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오던 바루가 그 모습을 봤어. 바루는 어쩔 줄 몰라 혼자 발만 동동 구르다 무당할미에게 달려갔어.
'할미, 도와주세요. 마루가, 마루가 나무에 묶여 있어요."
무당할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지. 꼬두박샘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치른 뒤, 시름시름 앓고 있던 무당할미는 바루의 등에 업혀 마을로 내려왔어.
"네 이놈들! 네놈들이 우물을 파서 동티내놓곤 왜 어린 것에게 뒤집어씌우는냐? 하늘이 두렵지 않으냐!"
무당할미의 불호령에 우물을 팠던 사람들은 움찔했지만 촌장의 눈치가 보여 아무도 나서지 못했어. 괜히 나섰다가 촌장의 눈에 거슬리면 마을에서 당장 쫓겨날 수도 있으니까. 마을에서 제일 잘 사는 촌장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니 그럴 수 밖에, 무당할미는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었어. 마을 장정들이 돌아가며 마루를 지키고 있었거든, 바루는 움막에 있는 부모님과 무당할미의 병 수발을 들면서도 매일 먼발치에서 마루를 지켜보았어. 물바가지를 들고 말이야. 마루에게 물 한모금이라도 먹이고 싶었거든.
마루가 나무에 매달린 지 하루가 지나자 사람들은 수런대기 시작했어.
"녀석, 눈 한번 질끈 감고 잘못했다고 하면 풀어줄 텐데, 답답하구먼."
마을 사람들은 열 살짜리 마루가 견디기엔 심한 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몇몇 장정은 아무도 없는 밤이면 마루를 나무에서 끌어내려 쉬게 했지.
사흘째가 되었어. 마루는 출 늘어져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판이었지. 마을 사람 모두가 마루를 보며 안타까워했어. 누구라도 용기 있게 나서기를 바라며 서로 눈치만 보았지.
먹장구름 사이로 오랜만에 해가 얼굴을 내민 한낮이었어. 마을을 지나가던 노스님이 물 한 모금 마시려고 꼬두박샘으로 왔지. 그러다 나무에 매달린 마루를 발견했어.
"이런!~"
깜짝 놀란 노스님은 지팡이를 내던지고는 마루를 나무에서 끌어내렸어. 숨어지 지켜보던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 멀찍이서 지켜보던 바루가 마루에게 달려갔어. 바루는 노스님의 품에 안겨 있는 마루에게 물을 먹였지.
"누구신데 우리한테 묻지도 않고 아이를 마음대로 풀어준거요?"
마을 장정 중 한사람이 노스님을 보고 짐짓 나무라는 척했어.
"어찌하여 아이를 이렇게 괴롭힌단 말이요?"
서릿발 같은 노스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어.
"이 녀석이 우물에다 몹쓸 짓을 해서 사람들이 병이 들었습니다요. 그래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중입다요."
노스님은 마을 촌장을 불러달라고 했어. 이 마을에 대해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겠다면서 말이야. 잠시 뒤 연락을 받고 촌장과 사람들이 몰려왔어.
"스님께서 절르 보자고 하셨습니까?"
하얀 머리와 수염, 지팡이를 짚고 선 노스님이 흰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서 있었어. 사람들은 노스님을 보자 절로 고개가 숙여졌지. 왠지 산신령님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제가 이 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니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앞골과 뒷골은 좁은데다 가운데가 넓은 것이 배의 모양과 같소. 이 마을이 배의 한가운데에 해당하오. 그런데 배 밑을 뚫었으니 재앙이 끊이질 않는 것이오. 여기 이 우물을 메우고 돛대를 세우면 재앙이 멈출 게요. 그리고 매년 돛대에 제를 올리고 이 사실을 후손들에게도 반드시 전해야 하오."
노스님이 말한 앞골은 오늘날의 소호고개로 배의 앞부분에 해당하고, 뒷골은 배내고개로 배의 뒷부분이란다.
노스님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았어. 마루는 바루 품에 안겨 웅얼거렸지.
"무당할미 노래가 참말이었구나."
사람들은 꼬두박샘을 둘러싸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콩팔칠탈했지.
"이깟 우물이 무슨 재앙을······,"
"일단 우물을 메워봅시다. 아니면 그때 다시 파면 되잖소."
사람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어. 촌장은 목수에게 돛대를 만들라고 했지. 몇몇은 목수를 돕겠다고 나섰어. 나머지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너나없이 돌을 줍기 시작했지. 아이들도 덩달아 돌을 주워 날랐어. 이제 사람들의 눈은 돛대를 만들고 있는 목수에게 쏠렸지. 드디어 장대 모양의 돛대가 완성되었어. 마을 장정 두 사람이 돛대를 꼬두박샘 안에 집어넣었지. 그러자 사람들은 돌을 우물 안에 넣기 시작했어.
"풍~~덩, 풍~덩, 풍덩."
돌멩이도 신이 나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어. 돌이 꽉 차자 이번엔 흙을 그러모아 덥고는 발로 꾹꾹 밟았지. 일을 마친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간절하게 빌었어. 재앙이 물러나게 해 달라고 말이야. 마루도 비칠비칠 일어나 기도했더. 기도를 막친 사람들이 노스님을 찾았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
며칠이 지나자 돌림병으로 쓰러졌던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하나 둘 일어났어. 마을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갔지.
기운을 차린 마루는 틈만 나면 돛대를 찾아갔어, 그리고 돛대를 쓰다듬으며 말했지.
"네가 마을을 살렸구나, 무당할미의 노래와 노스님의 말씀도 꼭 기억하라고 친구들에게 전할께."
그 뒤로 살구정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당제와 함께 꼬두박샘 돛대에도 정성을 다해 제를 올렸어.
노스님의 마을 무시하고 우물을 판 집은 어김없이 망했다고 해. 물론 그 다음부터는 우물을 파는 집은 없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