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공랑 성균 학정公 전문서 묘갈명
(啟功郎 成均 學正公 諱 文緖 墓碣銘)
[명종19년 갑자년(1564년)- 인조2년 갑자년(1624년)]
공(公)의 성(姓)은 전씨(全氏)요. 휘(諱)는 문서(文緖)이요. 자(字)는 사언(士彦)이고 호(號)를 죽촌(竹村)이다. 태사(太師) 휘(諱) 이갑(以甲)의 후손(後孫)이라.
선조(先祖) 휘(諱) 우(佑)가 관동(關東) 안찰사(按察使)가 되어 동(東)으로 명주(溟州)에 이르러 보니 산천(山川)이 아름다움과 풍속(風俗)이 후(厚)한 것을 보고 이곳에 살았으니 세상에서 우러러 보는 명망(名望) 있는 가문(家門)이 되었다.
강릉(江陵)에 낙향(落鄕)하신 선조(先祖)의 휘(諱)는 인권(仁權)이니 고려말(高麗末) 이조정랑(吏曹正郎) 벼슬을 하시다가 고려(高麗)가 망할 무렵에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절개(節槪)를 지키어 관직(官職)을 버리게 되었다. 강릉(江陵) 경포(鏡浦) 남산(南山) 기슭에 관심정(寬心亭)을 건립(建立)하고 중양가(重陽歌)를 지어 지역사회(地域社會)에 널리 전파(傳播)하였다.
5대조(五代祖) 휘(諱) 륜(崙)은 문과급제(文科及第)하여 통훈대부 행 구례현감(通訓大夫 行 求禮縣監)을 지냈고 고조부(高祖父) 휘(諱) 민행(敏行)은 단종 갑술(甲戌)에 등문과(登文科)하여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지냈고 증조부(曾祖父) 휘(諱) 성명(性命)은 조산대부 행 동몽교관(朝散大夫 行 童蒙敎官) 간성훈도(杆城訓導), 강원도학관(江原道學官)을 역임하였다.
조(祖)의 휘(諱)는 공신(公信)이니 성균생원진사(成均生員進士)하셨고 아버지는 휘(諱) 환(瓛)이니 기자전(箕子殿) 참봉(參奉)을 하셨다.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 생원(生員) 진사(進士) 대내(大匂)의 따님이시다.
1남 3녀를 두시었는데 장남(長男)인 공(公)이 선조 갑술(甲戌)년에 계공랑(啟功郎) 성균(成均) 학정(學正) 벼슬을 하셨으며 명종 갑자(甲子) 7월 16일에 나시고 인조 갑자(甲子) 11월 13일에 졸(卒)하시니 향년(享年)61세였다.
배(配)는 공인(恭人) 강릉최씨(江陵崔氏) 운경(雲慶)의 따님이요 명종 2월 14일에 출생(出生)하여 선조 경인(庚寅) 6월 25일 젊은 나이로 생1남하고 조사(早死)하셨다.
후배(后配)는 강릉김씨(江陵金氏)요 선(銑)의 따님이시다. 선조 임신(壬申) 1월 8일에 나시었고 두 분 할머니께서 5남2녀를 두시니
장남(長男)은 경술(景述)이요 배(配)는 강릉김씨(江陵金氏) 경희(景曦)의 따님이시다.
차남(次男) 경운(景運)은 문론(文論) 후(后)로 입계(入系)하시고
3남(三男) 경진(景進)은 문위(文緯)의 후(后)로 출계(出系)하셨다.
4남 경근(景近)은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증(贈)받았고 배는 강릉최씨(江陵崔氏) 운경(雲卿)의 따님이시다.
5남 경섬(景暹)은 진사(進士) 문적(文績)의 후(后)로 출계(出系)하였다.
장녀(長女)는 제주고씨(濟州高氏) 경윤(景允)에게 출가(出嫁)하였고,
차녀(次女)는 강릉김씨(江陵金氏) 원육(元六)에게 출가(出嫁)하였다.
후배(后配) 할머니께서는 인조 임신(壬申) 2월 11일에 졸하니 향년 61세였다.
장지(葬地)는 강릉시(江陵市) 청량리(靑良里) 산(山) 44번지(番地) 등록(登麓)자좌(子坐)에 3위 쌍봉(雙峯)으로 모셨고 후손(後孫)이 비명(碑銘)하여 유갈상석(有碣床石)을 설치(設置)하였다.
세제(歲祭) 10월 15일
12대손 재영(在英) 근기(謹記)
12대손 재우(在祐) 근서(謹書)
14대종손 영륜(永倫) 수(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