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옌타이에서의 감흥

[TrueFriend]

'존경하는 趙珦來 선생님. 中國 山東省 煙台市는 이제 선생에게 낯선 곳이 아니겠지요. 선생께서 연태시에 머문 동안의 일들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옛 친구로서 한국에서 연태시가 많이 알려지고 중.한 양국의 오랜 우정이 더 발전하는데 이바지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얼마전 중국 山東(산뚱)성 煙台(옌타이)시 인민정부 신문 사무실에서 날아온 한 통의 편지는 지난 5월 열흘간의 중국 방문 여정 중 煙台에서 있었던 감흥과 정취를 상기시켜 주었다. 煙台에서의 일. 그것은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北京에서 비행기를 타고 山東반도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 煙台에 도착한 것은 점심 무렵. 煙台市 인민정부와 신문협회 관계자들의 환대에 우리는 적잖게 놀랐다. 게다가 뜻밖의 융숭한 식사대접과 함께 그들의 정성어린 손님맞이에 다시한번 놀랐다.

해안도시답게 煙台에는 풍성한 해물요리가 끊임없이 나왔다. 그리고 포도주가 주메뉴로 식탁을 장식하고 있는 것도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주최측의 환영사와 우리측 단장인 이성춘 고문(전 한국기자협회장.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의 답사에 이어 포도주와 백주 잔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전날밤 북경에서 마신 술이 채 깨기도 전에 山東 사람들의 대낮 술공세를 받고 거나하게 취하고 말았다. 昨醉未醒이요 晝夜長醉였다. 열흘동안 우리 일행을 수행할 예정으로 술을 가급적 피하던 中華全國新聞工作者協會 국제연락부 姚根林 선생의 얼굴도 이미 붉게 물들어있었다.

특히 鄧小平 시대의 1만 해외유학파로 박사 학위를 지닌 엘리트이기도 한 陳海濤 煙台市 대외교류협회 부회장의 유연한 사고와 유창한 언변은 내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중국어로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몇차례 술잔을 주고 받는 사이 우리는 벌써 오랜 친구같이 허물없는 사이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煙台市가 배출한 귀중한 인재임이 분명했다. 황해로 불쑥 튀어나온 山東반도는 우리나라 서해안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중국땅이다. 또 山東 사람들은 그 기질이 우리 경상도 사람과 비슷하다고 해서 더 호감이 갔다. 실제 몸을 사리지 않고 호쾌하게 마셔대는 술 풍습 또한 그랬다.

陳부회장의 잇따른 情談에 취흥이 도도했던 나는 唐나라의 詩聖 李白의 詩 '山中對酌'을 중국어로 읊으며 화답을 했다. 兩人對酌山花開 一杯一杯復一杯 我醉欲眠君且去 明朝有意抱琴來. 깜짝 놀란 중국인들이 일제히 나를 주목하며 술잔 공세를 퍼부었다.

나는 내친김에 중국인다운 통큰 환대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중국노래를 한곡 하겠다고 제의했다. 노래를 재촉하는 좌중의 박수가 이어지고,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張明敏의 노래 '我的 中國心'을 낭랑한 중국어로 열창을 했다.

河山只在我夢里, 祖國已多年未親近, 可是不管@樣也改變不了 我的中國心. 洋裝雖然穿在身, 我心依然是中國心, 我的祖先早已把我的一切 烙上中國印. 長江,長城,黃山,黃河 在我心中重千斤 无論何時,无論何地, 心中一樣的親. 流在心里的血，彭湃着中華的聲音, 就算生在他鄕也改變不了 我的中國心.

노래가 끝나자 테이블에 둘러앉아 술잔을 주고 받던 우리 일행과 중국인들이 모두 일어섰다.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煙台에서의 韓.中 양국 기자단의 점심 회동은 陳부회장의 능숙한 분위기 유도와 나의 특별한 화답으로 그렇게 후끈 달아올랐다. 나는 그날의 감흥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이후 우리 일행은 나를 두고 "중국사람보다 더 중국스럽다"며 시샘어린 찬사를 늘어놓곤 했다.

오후에는 점심의 취기를 떨치지 못한채 煙台란 지명의 유래를 지닌 해안 등대와 중국에서 유일한 포도주 생산기지도 둘러봤다. 연태는 우리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도시였다. 그곳에서 안동 출신으로 대구에서 고교를 졸업했다는 대우중공업 연태유한공사 부총경리 崔盛宇씨를 만나 반가움이 더했다.

煙台는 산업기반이 잘 확충된 도시였다. 실제 외국인들이 살기에도 불편함이 없을 만큼 교육.의료 등 사회 제반 시설도 잘 정비된, 그리고 해안이 아름다운 살만한 도시라는게 이곳 사람들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煙台에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정말이지 한국에 돌아가면 내가 아는 기업인들을 찾아 煙台로 진출할 것을 한번쯤 권해 보고 싶을 만큼 그들의 투자유치 열정을 대단했다. 도약하고 있는 중국의 한 단면이었다. 그들은 동구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신문의 건전한 비판기능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중국의 도약을 위해서는 사회적 안정이 더 우선이라고 했다. 일정한 경제수준이 바탕이 되어야 민주와 자유도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것이 오늘 중국의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부패가 심합니다".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 경제일보 鄧克堂 외사부 主任도 그런 말을 했다. 그들은 서방의 관점으로 중국 보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중국식을 강조했다. 대국의 자존심이었다. 그것은 西勢東占 이후 오랫동안 움츠러있던 中華思想의 발로이기도 했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자 점심 때의 감흥이 다시 되살아났다. 나는 좌중의 주목을 받으며 중국인들의 요청에 따라 다시 漢詩를 읊었다. 問余何事栖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李白-山中問答). 그리고 我的 中國心을 부르며 분위기를 달궜다. 그 자리에서 낯을 익힌 또 한사람의 山東人. 연태시 인민정부 신문판공실 주임 張曉씨.

그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자신을 삼국지의 영웅 장비의 후예라고 소개했다. 실제 건장한 체격에다 우직한 모습이 장비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나는 농담삼아 조자룡(趙子龍)의 후예라고 맞받아쳤다. 이때 이름이 朴寬雨인 불교방송 대표가 자신을 關雨라 자처하고 나서자 삼국지가 주요 화제로 떠올랐다.

나는 三國志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가장 즐겨읽는 중국 소설로 많은 번역판이 나오고 만화로 출판된 책의 종류도 허다하다 소개했다. 그리고 우리집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인 인물도 바로 관우와 장비 등 삼국지의 영웅이라고 얘기하자 '그 정도냐'고 놀라는 표정이었다.

다음날 옌타이에서 내가 주목한 또 한사람의 인물은 연태시경제기술개발구공작위원회 書記이자 경제기술개발구관리위원회 主任인 王秀臣이었다. 그는 정말 대인적인 풍모가 배어나는 인물이었다. 문학을 좋아하고 대단한 애주가이기도 한 그의 달변은 좌중을 휘어잡고도 남았다.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었다.

나는 王선생의 융숭한 점심대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포도주 건배를 제의하며 李白의 '靜夜思' 낭독했다. '牀前看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山月 低頭思故鄕'. 내 한시 낭독에 그는 마지막 구절을 따라 읊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요즘 중국사람들도 잘 모르는 한시를 어떻게 그처럼 유창하게 낭독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메모지를 꺼내더니 자신이 좋아한다는 시 한수를 즉석에서 써서 내게 전했다. 鋤禾日當午 汗滴禾下土 誰知盤中餐 粒粒皆辛苦.

'햇볕 쨍쨍한 한낮 밭에서 김매는 이/ 땀방울 맺혀 곡식 아래 흙 위에 떨어지네/ 누가 알리요 밥상 위의 밥/ 한 톨 한 톨 모두가 수고의 결실인 것을'. 농민들의 고된 삶의 무게와 勤儉精神에 대한 엄중한 일깨움을 전하는 中唐시기 사회시인인 李紳의 시였다.

사회주의 중국의 고급 관료다운 제스처였다. 나는 이따금씩 그가 적어준 싯귀를 볼 때 마다 그의 대인적인 풍모를 떠올리며 煙台에서의 감흥이 되살아나곤 한다. 그런 중국인들이 아직은 한국 배우기에 열을 올리며, 우리같은 한국기자들에게도 최고의 호의를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더이상 한국으로부터 배울 것이 없어졌다는 판단이 나올 때 그들은 틀림없이 대국의 오만을 드러낼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그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에게 머잖아 닥칠 중국의 대국주의를 예방하는 길은 없을까.

그것은 우리가 지방균형발전을 추구하면서 지방마다 특성화된 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민족적인 자긍심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煙台에서 버스를 타고 靑島(칭따오)의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나는 山東의 煙台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슴 먹먹한 감동으로 오래토록 기억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