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하루였다.
많은 사람이 ‘화해의 성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아픔과 두려움을 털어놓기 위해서 찾아왔다.
그들의 외로움, 죄의식, 부끄러움, 거절당한 아픔에 귀 기울이는 동안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소외감(sense of isolation)이 나를 짓눌렀다.
그토록 비슷비슷하고 그만그만한 갈등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자기만 그런 괴로움을 겪는다는 듯이 살아간다.
오늘 여러 사람을 개별로 만나는 중에
문득 이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자기들이 얼마나 비슷한 문제로 힘겹게 살고 있는지를 알고
거기서 위안과 해답을 얻게 하고 싶었다.
어째서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의 깊은 속을 털어놓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많은 고통을 겪으며 이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에게 치유의 선물을 줄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가 아픔을 감출 때 그것을 치유하는 능력도 함께 감추어진다는 사실이다.
여기처럼, 사랑과 보살핌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조차
그 안에 필요 이상의 긴장과 외로움들이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고백하고, 서로를 용서하고, 그리하여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발견하라고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미 받은 것보다 큰 상처를 입게 될까봐 그것이 너무 두렵다.
바로 이 두려움이 우리를 감옥에 가둔다, 그 감옥에 벽이 없는데도!
사랑에 대한 예수의 메시지가 얼마나 철저한지를 날마다 절감한다. (새벽으로 가는 길)
첫댓글 날마다 아멘!!!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살던 시절이 있었어요...지금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맞아요~ 이미 받은 상처보다 더 큰 상처를 받게될까봐 그것이 두렵습니다. 하느님~ 거기에 갇히지 않게 도와주세요.
용서하는 것보다 용서받는 게 더 힘들겠지요?.......
그랬다. 어제 충주 바람은 매서웠다. 그러나 어제 충주에 모인 드림식구들은 난로를 껴안는 얼굴들이었다. 제각기 자기 마음에서 위안과 해답을 얻었다. 나는 그래서 드림실험교회에 간다. 드림실험교회에 가게 되면 '침묵'을 배우게 된다. 도로 내어드린다는 '이유'를 말하지 않는 일이다. 그 마음으로 기도할 때, 침묵은 내 마음의 눈을 열어준다. 그 자리에는 언제나 섬세히 너그러우신 관옥선생님이 계시다. 그 옆 환히 웃는 사모님도 함께 계시다. 어제는 그랬다.
문제는 우리가 아픔을 감출 때 그것을 치유하는 능력도 함께 감추어진다는 사실이다~우리는 서로에게 고백하고~서로를 용서하고~그리하여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발견하라고 부르심을 받았다~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미 받은 것보다 큰 상처를 입게 될까봐 그것이 너무 두렵다~바로 이 두려움이 우리를 감옥에 가둔다~ 그러나 그 감옥은 벽이 없다~그 벽을 누가 만들었지?~ 주님만 믿고 따라가자~너 지금 떨고 있니?~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