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me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Text Pslm 73,22-28
(22)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23)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25)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은 종말이 있고 종말이 되면 하나님께 심판받을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나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본능을 따라 살다가 죽으면 이 세상이 심판받을 때 함께 심판받아 유황불이 타는 지옥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장차 망할 세상에서 장차 지옥에 던져질 죄인인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친히 십자가에서 인간을 대신하여 희생 제물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 모든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장차 불 심판을 받아 망할 세상에서의 삶은 나그네와 같은 마음으로 살다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와 소망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결정짓게 합니다. 성도의 행동과 선택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지를 따라야 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워질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고, 선행과 관용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시73,22-28은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로 삼고 사는 삶을 살 수 있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어떤 보상의 약속이 있는지도 가르쳐줍니다. 말씀이 은혜가 되어 믿음을 되새기시기를 기도합니다.
2. 첫째로 본문은 철저한 회개가 있는지를 따져 묻습니다. 22절에,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라고 하였고, 25절에서는 하늘에서나 땅에서 주님밖에 사모할 이가 없다고 하였으며, 27절에는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이런 철저한 회개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주님 앞에서 우매 무지한 짐승이라고 하는 세상 부정과 자기 부정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이 세상에는 욕심내어 가질만한 것들은 전혀 없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주시고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는 는 주님을 떠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회개가 없으면 절대로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대한 이 회개가 없이는 믿음도 없습니다. 자신이 우매 무지한 짐승 같은 존재임을 진정으로 인정하는 것을 기초로 믿음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3,4ff에서 자신을 세상적으로 자랑한다면 누구보다도 더 자랑스러워할 만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긴다고도 했습니다. 다윗은 시84,10에서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하면서 악인의 장막, 곧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훨씬 더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고백입니다.
성경에는 세상에 대하여 온전하게 회개하지 못하고 도리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망한 사람들 이야기도 많습니다. 마10,17-22에 보면, 예수님에게 영생을 얻는 법을 배우러 왔던 한 부자는 자기가 소유한 재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마10,23에서,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눅17,31에서는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라고 하시면서 32절에 교훈하시기를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본 번연은 그의 저작 ‘천로역정’에서 사람이 사는 세상을 ‘장망성’, 즉 장차 망할 도성이라 표현했습니다. 사도 베드로께서는 사람이 세상에서 살다가 가는 것을 나그네와 같다고 했습니다. 사울 왕처럼 왕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보다 더 귀하게 여기어 죄 없는 다윗을 죽이려고 온갖 악한 짓을 하다가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로 3년이나 따랐건만 세상을 위한 투쟁에 나서지 않는 예수님이 못마땅하여 은전 30 냥에 스승을 원수들에게 넘긴 가룟 유다가 되고 싶진 않으시겠지요?
여러분, 하나님 없는 세상의 것들은 모두 백해무익한 것들입니다. 그것에 몸과 마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모든 것을 주와 및 그 나라를 위해서라면 다 버리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서 이 회개 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성도를 성도답게 하는 길이요, 위기에 빠진 한국 교회를 되살리는 길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그렇지 못한 자신을 철저히 참회하여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을 목이 터지도록 외치고 가르치는 교회 지도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 은혜가 온 교회들 위에 충만하도록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3. 둘째로 본문은 하나님을 자신의 반석이요 영원한 분깃으로 여겨(26절) 주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것이 복임(28절)을 믿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보물입니다. 이 믿음만이 사람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 성도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육체와 마음을 쇠잔하게 만드는 세상의 환란과 고통이 예상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아 힘으로 삼고 삶의 무게를 지탱하고 그 밑에 깔리지 않게 할 견고한 토대로 삼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분깃, 즉 가장 값지고 쓸모 있는 소득으로 삼는다는 것은 세상 사는 동안 나를 부축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죽을 때에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실 것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불멸의 영혼이 지속되듯이 오래 지속될 소득이요 또한 나를 행복하게 해주시는 소득은 하나님을 소망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소망은 하나님을 향해야 하며 성도의 기쁨은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소망은 하나님께 바쳐져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이외의 것은 원하지 않고 계속 그를 바라면서,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종결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 무엇보다 그를 택해야 하며, 그를 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구하는 경우가 아니고는 하나님 외에 다른 아무 것도 구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우리에게 바랄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이란 하나님께 가까이하고 또 하나님이 내 가까이에 오시도록 하는 사람이요 그렇게 되는 것이 최상의 복입니다. 시편 기자는 악인의 형통을 보며 왜 자신에게는 복이 없느냐고 불평을 했었지만 깨닫고 보니 하나님은 늘 자신과 함께 하고 계시었고 그랬기 때문에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23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자신을 인도하셨고 후에는 영광으로 영접하여 주실 것임을 믿고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복이라고 한 것은 자기에게 복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삶의 지혜입니다. 성도에게 이 믿음은 지속되어야 하는 의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주님을 항상 의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주 하나님을, 그리고 세상적인 형통함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을 의지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성도에게는 그들의 것보다도 더 나은 분깃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의 나라를 찾는 데 헌신하고자 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며, 주님과 함께 하늘에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주님의 나라를 향해 살아가고자 합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고, 주님의 나라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한 나무꾼이 숲 속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근면함과 끈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줬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하늘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네가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봐라.” 믿음 좋은 나무꾼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저는 천국을 소망합니다.” 사자는 그의 바람을 듣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가 바라는 것은 정말로 귀하고 숭고한 것이구나. 하지만 네가 할 일이 끝나기 전에는 천국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네가 천국을 소망하며 살기에 더욱 힘써 노력하고 그렇게 살기 위해 너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면, 네가 찾는 천국은 더 가까워질 거야.”
나무꾼은 사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고, 선한 일을 행하며 살아갔습니다. 그의 선한 행동은 다른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결국 그의 노력과 선한 마음으로 인해 그는 찾던 천국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무꾼은 천국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한 싸움을 싸우며 천국으로 가는 과정에 진정한 의미가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은혜와 구원을 소망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성도의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내 가진 진주를 개에게 던져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소유를 팔아 값진 보석 하나를 샀다는 주님의 천국 비유를 명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4. 셋째로 본문은 우리에게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사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28절,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즉, 나에게 왕이신 주님을 피난처로 삼겠다는 것과 나의 피난처이신 주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들을 늘 찾아내고 깨닫고 말하기를 계속하겠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왕이신 주님이란 나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 알고 계시고 나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나의 삶을 통제하고 계셔서 험하지만 생명길이기에 그길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다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개념으로 찾고 구하고 쟁취하겠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어린아이에게 부모가 피난처이듯 마음 놓고 안겨 쉴 수 있는 어머니의 품 같은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약점마저도 다 드러내어도 감싸주는 어머니의 품 같은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아픔을 내보일 수 있는 어머니의 품 같은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겠다는 말은 “ I will tell of all your deeds”의 번역입니다. 전파라고 번역한 단어는 단순히 말하겠다는 뜻의 “will tell”입니다. 즉, 피난처이신 주님의 행적을 ‘발견하는 대로’ 적극적으로 말하고 표현하겠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본다고 합니다. 알고 싶은 것을 알게 되고 찾고 싶은 것을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피난처로서 행하신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깨달은 것들을 말하면서 주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좋은 안식처가 되는지를 밝히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천국만을 소망하며 사는 삶'을 방해하는 것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세속적인 유혹과 욕망이 그중 하나입니다. 물질적인 욕망과 세속적인 유혹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천국을 소망하는 삶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돈, 권력, 명예 등의 세속적인 욕구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를 무시하게 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태도도 하나입니다.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는 믿음을 흔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천국을 소망하는 삶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고난과 시련도 훼방꾼 역할을 합니다. 종종 믿음을 시험하고 힘들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천국을 소망하는 삶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압력과 영향도 있습니다. 특히 현대는 사회적인 압력이나 주변 환경의 영향이 더욱 믿음과 가치관을 흔드는 것 같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영향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 혹은 이교도 등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거짓 정보나 혼란스러운 가르침에 속아 믿음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피난처로서의 주님의 행적을 발견하고 되새기며 굳건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11,12에서는 ‘천국을 소유하고 싶으면 침노해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삶은 노력과 헌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지만, 영적인 성장과 헌신을 통해 천국을 뚫고 들어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 성경 공부, 올바른 사람들과의 교제, 그리고 정신적,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천국은 설화가 아닌 실제적인 장소이며, 하나님이 영광 중에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곳은 모든 성도들이 영원히 살 고향이며, 이 세상에서의 삶을 통해 준비해야 할 곳입니다. 부디 믿음의 선한 싸움에 승리하여 의의 면류관이 기다리는 천국에서 만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