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 제46권 / 강원도(江原道) / 영월군(寧越郡)
【누정】 관풍루(觀風樓) 객관의 동쪽에 있다. 금강정(錦江亭) 금장강의 언덕 절벽 위에 있다. 선덕(宣德) 무신년에 군수 김부항(金復恒)이 세운 것이다. 동쪽으로는 금장강에 임하였으며, 남쪽으로는 금봉연을 바라본다. 강 밖에 상덕촌(尙德村)이라는 마을이 있어 초가집들과 성긴 울타리들이 뽕나무들 사이로 숨었다 보였다 한다. 남쪽에는 밀적포가 있으니 나무들이 울창하고, 마을 연기와 물기운이 은은히 가리우고 어른거려서 바라보면 그림과 같다.
○ 황희(黃喜)의 시에, “헌함이 높으니 능히 더위를 물리치고, 처마가 트여서 바람이 불어오기 쉽다. 늙은 나무는 그늘이 땅에 드리우고, 먼 봉우리는 푸르름이 공중을 덮었다.” 하였다. 매죽루(梅竹樓) 객관의 북쪽에 있다.
○ 군수 신숙근(申叔根)이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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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산집 제2권 / 시(詩)
가대인을 모시고 금강정을 유람할 적에 장침랑 심중현헌영 도 함께하다〔陪家大人遊錦江亭莊寢郞沈仲賢 獻永 亦會〕
이름난 정자 높은 언덕에 있으니 / 名亭位置占崇邱
정자 아래 긴 강은 만 번 꺾여 흐르네 / 亭下長江萬折流
창렬암 앞에는 붉은 해 비치고 / 彰烈巖前紅日照
청령포 위에는 푸른 구름 자욱해라 / 淸泠浦上翠雲稠
빈산의 백마는 남은 그림자 없고 / 空山白馬無遺影
밝은 달 두견새 우는 곳에 옛 누대 남아 있네 / 明月啼鵑有古樓
감히 당시의 일을 다 말하지 못하니 / 未敢索言當日事
천추의 빈 골짝에 부질없이 배를 감추었네 / 千秋虛壑漫藏舟
[주-D001] 장침랑(莊寢郞) 심중현(沈仲賢) : 심헌영(沈獻永, 1776~1835)으로,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중현, 호는 장재(莊齋)이다. 오희상(吳熙常)의 문인이다. 1813년(순조13) 증광 생원시에 합격하고 벼슬이 정읍 현감(井邑縣監)에 이르렀다. 1819년 장릉 참봉(莊陵參奉)에 재직 중이었으므로 장침랑이라고 한 것이다. 본집 권37에 홍직필이 지은 묘지명이 있다.[주-D002] 창렬암(彰烈巖) : 1457년(세조3) 상왕(上王)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영월(寧越)에 유배된 단종이 승하하자, 단종을 모시던 시녀들이 금장강(錦障江)에 투신하여 죽으니, 마을 사람들이 이를 슬프게 여겨 투신한 곳을 낙화암(落花巖)이라 부르고 단을 설치하여 이들의 넋을 위로하였다. 그 후 1742년(영조18)에 왕명으로 이곳에 사당을 건립하고 민충사(愍忠祠)라는 사액을 내려 이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는데, 1746년에 부사 조하망(曺夏望)이 낙화암을 창렬암으로 개칭하였다.[주-D003] 청령포(淸泠浦) : 단종이 유폐되어 살았던 곳으로 영월군 광천리(廣川里)에 있다. 남쪽이 층암절벽으로 막혀 있고 동ㆍ북ㆍ서쪽은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곡류하고 있어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특수지형으로 단종은 이곳을 육지고도(陸地孤島)라고 표현하였다. 단종은 1457년(세조3) 유폐되어 이곳에 살았는데, 그해 여름 서강이 범람하여 이 일대가 침수되자,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에 옮겨 지내다가 몇 달 만에 승하하였다.[주-D004] 빈산의 …… 없고 : 단종이 승하할 당시, 추익한(秋益漢)이 백마를 타고 가는 단종을 배알하였다는 민간의 전설을 들어 말한 것이다. 한성부 부윤을 지냈던 추익한이 벼슬에서 물러나 평창(平昌) 등지에서 은거하다가, 단종이 유배되자 산과(山果) 등을 따서 진상하면서 어린 왕을 위로하곤 하였다. 하루는 머루와 다래를 따서 단종을 만나러 가던 중, 단종이 곤룡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단신으로 동쪽 골로 행차하는 것을 보았다. 놀라서 어디로 행차하시는지를 물으니, 단종이 태백산으로 간다고 대답하고 홀연 사라졌다. 이상하게 생각한 추익한이 급히 영월로 뛰어가 보니, 단종은 이미 승하한 뒤였다. 추익한은 애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절명하였다고 한다.[주-D005] 밝은 …… 있네 : 관풍헌(觀風軒) 주변에 자규루(子規樓)가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두견새를 일명 자규새라고도 하는데 단종이 지은 〈자규사(子規詞)〉가 유명한바, 내용은 아래와 같다. “달 밝은 밤에 두견새 울 제 시름 못 잊어 누대 머리에 기대었네. 네 울음 하도 슬퍼 내 듣기 괴로우니 네 소리 없었던들 내 시름 없을 것을. 세상에 근심 많은 이들에게 이르노니 춘삼월 자규루에는 부디 오르지 마오.[月白夜蜀魄啾, 含愁情依樓頭. 爾啼悲我聞苦, 無爾聲無我愁. 寄語世上苦勞人, 愼幕登春三月子規樓.]”[주-D006] 천추의 …… 감추었네 : 사람의 운명은 조화옹(造化翁)의 힘을 피할 수 없음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사람들이 깊은 골짜기 속에 배를 숨겨 두고 산을 못 속에 숨겨 두면 안전하다고 여기지만, 한밤중에 힘센 자가 등에 지고 달아나면 어리석은 사람은 알아채지 못한다.[夫藏舟於壑, 藏山於澤, 謂之固矣. 然而夜半, 有力者負之而走, 昧者不知也.]” 하였는바, 한밤중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세계를 이르며 힘센 자는 조화옹을 가리킨 것으로, 곧 인간 만사가 조화에 의해 정해짐을 말한 것이다.
ⓒ 성신여자대학교 고전연구소ㆍ해동경사연구소 | 성백효 (역) |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