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장 30절 – 33절
이스라엘백성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자신들만 구원을 받은 자들이며 이방인들은 구원받지 못할 자들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먼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신 결과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하실 때 남들과 상의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발을 뗄때에 그를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비전을 보이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이미 아브라함을 통한 비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처럼 그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자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려는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기중심적인 자세에 빠져서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당연히 구원받은 자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마엘도 그리고 에서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마엘과 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인격적인 친밀한 관계안에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마엘과 에서도 아브라함의 행위를 본받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비전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통하여 이제 이방인들까지로 확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삶을 보이시고 그러므로 이방인들까지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사실을 알게 하라는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런 하나님의 의도와 의중을 무시하고 자기들만 구원받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지극히 타락한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예를 따르지 않는 이방인들이 의롭다하심을 입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순서를 오해하였습니다. 먼저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의롭다 하심을 입은 자들이 율법을 행하게 되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율법이 요구하는 삶을 사는데 실패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우리라도 율법이 요구하는 삶을 살려면 십자가를 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기중심적인 자세에 빠져 자기의 자원으로 자기의 열심을 통해 이 율법이 요구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체에 의한 삶입니다. 이 육체에 의한 삶은 성령이 요구하시는 삶을 대적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삶을 사는데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지만 오늘 유대인들처럼 자기의 자원을 붙잡고 하나님을 따르지 아니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자원만을 의지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아브라함의 행위를 따른다고 말했지만 실재로는 아브라함이 살아간 그 삶을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앞에 서려고 한 유대인들은 결과적으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삶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시는 예수님을 육체를 따라 행하는 유대인들이 대적하고 핍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삶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천국복음은 수많은 유대인들을 걸려 넘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