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갈 권리
김우종
고향을 떠나면 누구나 고향이 그리워진다. 그것은 애나 어린이나 곡 같다. 백발 노인이 되어도 그리워 울고 싶은 마음은 어린애가 집을 잃고 울 때와 꼭 같다.
인생 마지막 작별 시간이 되면 향수의 병은 더 짙어진다. 여우도 죽을 때는 머리를 북으로 둔다 했듯이 인간의 향수는 여우나 늑대나 아마도 작은 새 한 마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도라산 전망대에 가면 내 고향이 바로 눈 앞이다. 개성 송악산과 자남산이 보이고 뿌옇게 시내 언저리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낯선 것도 있다. 김일성 동상이다.
더 가까이는 진봉산이 있고 지금은 가동을 멈춘 개성공단이 있다.
나는 황해도 연안에서 약 10년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내 조상이 고려 태조 때부터 대대로 살아 온 개성에서 10년을 보냈다.
최근에 그린 50호 유화에는 진봉산이 있고 그 자리에 흑백 사진 한 장을 붙였다. 중학 3학년이 되던 해방 이듬해에 진봉산에서 찍은 사진이어서 그림속 진봉산에 붙였다. 생물채집을 하러 가서 찍은 사진이다. 독사 한 마리를 손에 쥐고 해맑은 웃음을 띄고 있는 학생이 나다. 참 철없는 학생이다. 쥐고 있는 독사에 물렸으면 훗날의 김우종 평론가는 없어졌을 것이다. 깊은 산 속에서 병원까지는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 7명이 포충망을 들고 앉아 찍은 이 사진을 연꽃에 담아서 마치 연꽃 타고 살아나서 눈먼 아버지 찾아가는 심청이같은 이미지로 만들었다.
연꽃 속의 심청이. 그것은 자비와 구원을 의미한다.
연꽃 속의 일곱명도 곧 구원을 받아야 할 운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쟁이 터지자 마자 한 명은 우리와 비슷한 나이의 학생들에게 맞아 죽고 나는 서울에 있다가 입대 후 몇 차례 전쟁 속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고 나머지 학생들은 소식을 모른다. 모두 구원을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던 학생들이다.
나는 지난 해(2022년)에 도라산 전망대에 갔었다. 버스에 ‘김우종 문학평론가와 함께 하는 평화 투어“였기 때문에 개성 실향민 참가자들 앞에서 간단한 강연을 했다.
진봉산을 바라보면 바로 그 앞 남쪽이 개성공단이다. 그래서 좀 울분을 터뜨렸다. 우리 쪽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갑자기 도망치듯 철수하고 그 후 남북 연락사무소를 북측이 폭파하며 다시 만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개성공단이 고향가는 길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개성에서는 아침 일찍 많은 사람들이 푸른 색 버스를 타고 공단으로 출근했다. 서울 시내에서 교외까지 달리는 버스와 꼭같은 버스다. 공단은 남북이 함께 일하고 먹고 가끔 대화도 속삭이던 곳이다. 그들은 먹다 남은 음식을 남측 직원이 주는 비닐 종이에 싸가지고 귀가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부자 소리까지 듣기도 했단다. 내가 본 바로는 내가 개성관광 중에 창밖으로 내다봤던 개성시민들과는 얼굴빛이 달랐다. 내가 몇 번 만났던 공단 지원재단 여성은 개성 시내로도 몇 차례 다녀왔었다. 수돗물도 공단에서 그곳까지 간다고 했다. 개성공단이 성공하면 황해도 해주까지 공단이 뻗어나간다는 설명을 어떤 직원으로부터 들었었다.
같은 공산국가지만 중국은 미국과 한국과 경제활동도 자유롭고 관광도 자유인데 이에 비하면 개성공단은 참으로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것이 내가 개성의 많은 친척들을 만나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나의 향수의 병을 달랠수 있는 것이었는데 순간에 박살나버렸다. 강대국 비위에 맞추려고 이 사태가 벌어졌다면 대통령 하지 말아야 한다.
헌법에서는 북한 땅도 대한민국 영토다. 그러므로 통일은 국가의 의무이며 더구나 분단은 국가의 재앙인 이상 그 최대피해자인 실향민의 고통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 개성공단이 실향민의 그런 향수를 달래는 길이 되고 있었다면 통일부는 그 길을 더 넓혀나갈 책임이 있다.
내가 그림으로라도 향수를 달래고 있는 것은 개인적 감상주의가 아니라 이 나라 국민이 부당하게 빼앗긴 기본적 권리를 찾기 위한 당연하고도 참담한 권리의 주장이다.
(2023년 8월 초 상도동에서)
첫댓글 그리워 울고 싶은 마음
분단은 국가의 재앙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
'고향 갈 권리'라는 말이 애절합니다. 당연한 기본 권리를 빼앗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고 실향인의 애끓는 심사만 남아 울분을 터트리게 하는가. 망향의 서러움을 붓질하는 호젓한 마음이 빗물로 흐르고 있습니다.
교수님 단톡에 올려진 사진이 도라산에서 바라본 사진이었나 보네요?
바로 가까이에서 보고도 못 가시는 심정이 오죽하시겠습니까? 정권이 바뀌니 모든 게 엉망이 되어가는 것 같아
그저 속상하고 홧병 날 것 같습니다. 같은 민족인데 총부리를 겨누고 있으니....평화적 외교로 통일을 이룩해야 하는데 애닯기만 합니다. 교수님 그래도 건강 잘 챙기시며 사시길 바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리운 고향.. 누구나 고향은 그립지요. 코 키 리 도 죽을 때가 되면 태어난 곳으로 간 다지요 연어도 그 넓은 바다 돌아다니다. 마지막 으로 내가 태어난 곳을 찾아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합니다. 말 못하는 짐승도 고향을 찾아 가는데 하물며 사람이 서로의 욕심으로 길을를 끊어 놓아 갈수 없는 교수님의 애타는 마음을 헤아려 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