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우리 주인은 못말린다니까
갈등
저녁 예불 시간에 큰법당을 돌며
대예참문을 외웁니다
한조문을 외며 돌면 한바퀴인데
그때마다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니
삼십조문동안 구십배의 절을 합니다
아침 사시 불공을 올리기 전에는
대예참문을 외며 조문에 관계없이 절을 하니
대략 백오십배 정도 하는듯 하고
마지를 올리고 사시 불공 하면서도
한시간여를 절을 하며 염불을 하니
하루 사백여번 정도 부처님 전에 절을 올립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장마 속에 나온
호박잎을 쪄서 된장을 찬으로 놓아 두었기에
조금 욕심을 부렸는지 배가 영 꺼지지 않습니다
법당에 들어서면서까지도
오늘은 그냥 법당을 돌기만 할까 생각하다가
그래 나 스스로하고의 약속이지만
부처님 전에 올린 약속이니 배가 좀 불편하여도
절을 멈추지 말자 하고는 시작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가 어렵지
지심정례공양 하면서 한바퀴 돌고 삼배 올리니
오늘은 안하면 안될까요 하고 심통을 부리던 몸이
참 우리 주인은 못말린다니까 하고는
슬그머니 따라 움직여 줍니다
몇순배를 돌며 절을 하다 보니
시원하게 트림이 나와서 배가 꺼지고
대예참을 마칠 때쯤 되어서는
훨씬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다가 안하면 속된 말로 찝찝하고
안하던 일을 한번 해보려면 망설여 지는게
우리네 인생사의 한 단면이라 할것인데
오늘은 그렇게 절을 하다보니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내 내면의 모습이
조금씩 비쳐남을 느낍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속이 좁은 나는
내뜻에 맞지 않는 일을 보거나 하면
상대의 입장은 앞뒤 재지도 않고
무조건 화를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나는 남들보다 욕심이 많아서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손에 넣어야 만족하는 욕심장이였습니다
또 나는 세상에 둘째가라면 서러울만큼
어느 때는 앞 뒤 물 불 가리지 않고
살 맞은 호랑이처럼 마음이 날뛰어
어리석은 짓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임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갑니다
언젠가는 조카들에게 크게 화를 내고 나서
다시는 화를 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다짐했건만
내뜻과는 다른 경계에 부딛히면
그 다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불끈불끈 화가 치밀어 올라서
탐진치 삼독의 불길이 치성했으니
평소에 스님이라고 조심스럽게 대하다가
깜짝놀란 조카들의 마음에 어떤 상처로 남았을지
참으로 두렵기까지 합니다
화를 내게 될때도
절을 할까 말까 갈등하듯
화를 낼까 말까
잠시 갈등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으련만
화는 잠시도 지체함이 없이 올라와 버리니
여간 주의력을 가지고 살피기 전에는
대부분 화에게 지고 말기가 쉽상입니다
절을 할까 말까 하는 갈등이 일어나면
내가 아는 어떤 거사님은 백팔배 안하면 죽는다
하는 심정으로 절을 한다 하였지만
나는 절하다가 죽더라도 계속하자 하는 심정으로
대예참과 백팔배를 이어가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화도 줄이고 욕심도 줄이고
어리석은 행동과 말과 생각도 줄여서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없는 한도인閑道人 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예참을 외우면서 하는 절은
우선 불법승 삼보님을 향한 지극한 공경의 마음과
나를 지극히 낮추는 하심하는 오체투지가 합하여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는 새로운 수행법으로
각광받기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여러날 비가 오시다 보니
여기 저기 물로 인한 재해가 나서
많은 분들이 고통속에 계시는 듯 하여
마음 속으로 심심한 위로를 보내는 저녁입니다
우리 절에서 가까운 우금치 터널 위로도
경사면의 토사가 밀려 내려와 길을 막아서
어제 저녁에는 장비들이 토사를 걷어 내고
오늘은 비닐을 덮는등 복구를 하느라 분주하였는데
지나던 차 한대가 약간 매몰되었다가
다행히 큰 피해 없이 빠져 나왔다 하는군요
이 비가 그치면 다시 오랜시간동안
불볕더위가 또 기승을 부릴 것이니
비라도 한줄금 와야지 더워 못살겠네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원효사 심우실에서
나무아미타불
출처: 금강(金剛)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 원문보기 글쓴이: 勝進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