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에서 5대성지라고 하면,
1) 대종사님이 대각을 이룬 영산성지
2) 교법을 제정하고 반포한 변산제법성지
3) 현재의 총부가 위치하고 있는 익산전법성지
5) 정산종사님이 탄생하고 구도하신 성주성지
6) 대종사님이 제자들과 함께 초선을 나신 만덕산성지를 이야기 한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근간이 되는 영산(靈山) 성지를 이번에는 법인절에 맞추어 “성자의 혼을 찾아 떠나는 법인절 기도식”의 참가와 교당의 청년훈련을 위한 운전봉사로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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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조성된 연꽃못)
영산성지에는 많은 원불교 사적들이 산재하고 있는데, 영촌마을에 있는 탄생가, 대종사 대각 이전 가장 많이 살으셨던 구호동 집터, 산신령을 만나려고 기도 드렸던 마당바위, 한 나절이나 서서 입정에 들었던 선진포, 대각을 이룬 노루목 대각지, 최초의 법어를 설한 돛드래미 이씨제각, 최초 교당인 구간도실, 9인 제자들의 정성이 깃든 구인 기도봉, 원불교 최초의 법당인 대각전 등이 있으며 현재 원불교 중앙총부 영산사무소와 원불교영산대학, 영산성지고등학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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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평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있는 청년 회원들)
이것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설명을 하자면 아마 책 한권을 써도 부족할 것이며 영산성지에 대해서는 많은 내용들이 공개되어 있는 터라 훈련에 따른 발자취 내용만을 답사기에 기록하여 보고자 한다.
영산성지를 2, 3년 주기로 방문할 때마다 조금씩 성지의 모습들이 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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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봉 아래 바위에 만들어진 제명바위)
영산사무소와 방언공사로 인하여 바다를 육지로 만든 정관평 사이에 커다란 연못을 만들고 이곳에 연꽃을 심어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쉬면서 감상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교당터의 윤문당 건물을 해체 복원하여 영산대학 건물의 앞뜰에 복원하여 놓은 것이다.
최근 이곳 영산성지는 “백수해안도로”가 드라이브 명소로 유명해짐에 따라 부쩍 타지역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면서 원불교를 홍보하는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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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도실 터)
이곳 성지에 머무는 며칠 동안에도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영산사무소의 대각전 건물 경사면에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꽃과 잎이 달리 피고 지는 것이 사모하는 이의 모습과 같다고 이름 붙여진 상사화(相思花)꽃이 군락를 이루어 아름답게 피어있어 건너편의 연꽃과 함께 이를 사진에 담기 위하여 여행객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탄성을 지르면서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영산대학에서 현재 공부하고 있는 예비교무님들의 가이드에 의하여 청년들과 함께 정관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방언공사 제명바위였다.
그런데 이곳은 지난 몇차례의 성지 방문에서 한번도 보지를 못하였던 곳이다.
아마 시간적인 제약과 다른 큰 곳을 보느라 제외 되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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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님 생가)
제명바위는 옥녀봉 아래의 바위에 정관평 근처로 방언공사를 마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원기4년(1919년) 칠산종사의 제언으로 시멘트를 판처럼 바르고 간척공사의 기간과 실시원 이름을 적어 놓은 것으로 세월의 지남에 따라 식별이 곤란하게 되자 이를 원기 75년에 바위 밑으로 석탑을 만들어 이를 제현에 놓고 있다.
여기에는 가로 90cm, 세로 45cm의 판에 김성섭(팔산 김광선)의 글씨로 오른쪽에서부터 세로 글씨로 음각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靈光 白岫 吉龍 干瀉地 兩處 組合員 / 朴重彬 / 李仁明 / 金成燮 / 劉成國 / 吳在謙 / 金聖久 / 李載 / 朴漢碩 / 大正七年四月四日始 / 大正八年三月二十日終]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다는 느낌은 또 다른 감흥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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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터에 세워진 대각비)
이어서 구간도실터 및 대각터 그리고 대종사님의 생가를 둘러보면서 20여년간의 고행을 통하여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응보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뚜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는 대각의 경지를 펼치시고 일찍이 미래를 예견하면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개교의 표어를 만들어주신 주세불의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누구라도 찬탄을 금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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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절 기도를 위하여 전국에서 구간도실터에 모인 교도님들)
이런 성자의 혼을 기리기 위하여 우리는 저녁에 전국에서 모인 교도들이 구간도실터의 넓은 잔디밭에 모여 영육쌍전(靈肉雙全)의 정신으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모여 기도함과 동시에 각자의 정해진 9개의 봉우리에 올라 같은 시각에 기도를 올리면서 백지혈인(白紙血印)의 기적을 나투었던 그 정신을 다시 체받기 위하여, 하루 저녁이지만 각자가 원하는 봉우리를 선정하여 차례차례로 이에 올라 모두 함께 기도를 올리면서 자신들의 서원을 비는 기도가 밤 12시 정도까지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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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전터에 만발하고 있는 상사화꽃)
전체 인원을 수용하지 못하는 숙박 수용 인원 때문에 남자들은 영산대학내의 커다란 법당에서 깔판을 깔고 잠이 들었지만 피곤한 탓인지 정신없는 숙면을 취하고 다음날 일찍 잠에서 깨어 영산사무소내의 영묘원, 최초의 교당으로 초가집으로 지어진 영산원, 정산종사님과 가족들이 살았던 법모실, 1936년에 지어졌다는 대각전 건물 들을 돌아보면서 영산성지의 정취를 맘껏 느껴 본 24시간의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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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전 법당 모습 및 불전, 종래에 사용되었던 일원상이 독특하다)
아침을 먹고 숙소 가까운 성래원에 들려 차를 마시던 중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고려인이라는 러시아 대학 여자교수님이 한국을 이해하기 위하여 한글을 배우시고 민족종교인 원불교를 접하게 되어 혼자 이곳 성지까지 스스로 찾아와 생가터에서 뜨거운 눈물까지 흘렸다는 벅찬 감동의 이야기를 익숙하지 않은 우리말로 전달하면서 기회가 되면 우리 신촌교당도 꼭 방문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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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교당인 영산원)
이런 것을 볼 때 대종사님께서 생전의 법회시에 “아마 코 큰 외국인들이 우리 법을 믿게 되고 이들이 이법을 배우기 위하여 우리나라를 찾게 될 것이다”라고 예견하신 이야기와 같이 외국인들이 이 영산성지를 찾기 위하여 밀려 올 것이라는 확신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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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모실)
이후 청년회원들과 함께 이곳에서 가까운 우리삶문화 옥당박물관을 방문하고 청년들은 삼밭재 기도터로 훈련을 가고 본인은 인근의 영산교당 및 백수교당을 방문 한 후 1박을 하고 서울로 함께 돌아오는 2박 3일의 영산성지의 순례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방문일자 : 2008년 8월 15일(금) - 17일(일)
작성일자 : 2008년 9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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