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MEMOIR OF A MURDERER
한국영화, 장르:범죄,스릴러 개봉:2017.09.06
감독:원신연, 원작:김영하, 각본:황조윤, 제작:쇼박스,W픽처스
주연:설경구,김남길,설현,오달수, 관객:2,656,452명(2017.10.11.현재)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데뷔한 김영하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이어 나온 연쇄살인범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30년간 살인을 반복해 오다가 25년전에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는 알츠하이머라는 치매에 걸린 상태로 사라져만 가는 기억과의 전쟁을 벌인다.
“병수아버지”(정인겸역)는 폭력증후군의 전형적인 사례자다. 가정폭력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습관적인 폭력이 아내와 자녀들에게 가해지는 것이다. “병수어머니”(최유송역)와 어린 “누나”(김혜윤역)가 오랜만에 귀가한 아버지로부터 비참한 폭력에 시달린채로 있다. 아버지는 술애 취한채 잠을 자고 있고 그 뒤편으로 어머니와 누나가 겁에 질린채로 앉아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병수”(신기준역)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자신의 흰 운동화에 집착한다. 잠에서 깬 병수 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서 일까? 무작정 병수를 두들겨 패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안방으로 병수를 끌고 들어간다. 그러나 밖에서 들리는 신음소리와는 달리 병수는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김병수”(설경구역)는 은행원인 “은희”(설현역)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70세를 넘은 김병수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근심에 쌓여 있다. 점점 잃어가는 기억에 대하여 병수는 은희에 대한 염려가 앞선다. 그러던 어느날 차를 몰고가다가 접촉사고를 일으키게 되는데 그는 인근 지역의 경찰인 “민태주”(김남길역)였다. 그의 트렁크에는 사람의 시체로 추정되는 사체 한 구가 가방에 들어가 있고 밖에는 핏자국이 선명하다. 무엇인가 강한 인상을 받은 김병수는 수의사의 직감으로 혈흔을 채취한다. 의심을 받는듯한 민태주가 노루피라고 설명하면서 접촉사고를 보험처리 하지 않고 각자가 알아서 수리하자고 제안한다.
살인자의 눈은 살인자의 눈을 기억하는 법, 알츠하이머로 인하여 지난 과거의 흔적마져 잃어 가는 김병수는 민태주의 눈에서 살기를 느낀다. 김병수는 아버지에 대한 살인을 시작으로 세상을 살인이라는 도구로 심판해 왔다. 그리고 17년전을 마지막으로 살인을 중단했다. 김병수의 대나무 밭은 그가 파묻은 시체들로 가득하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의문의 실종사건은 이렇게 영원히 묻혀가는 듯 하지만 민태주의 등장으로 재현되기에 이른다.
민태주를 쫓는 김병수의 혀를 찌른 건 역시 민태주다. 그는 김병수의 무남독녀인 은희와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알츠하이머로 인하여 김병수의 기억은 더욱 희미해져 가고 있다. 이러한 아버지의 기억상실을 우려한 은희가 아버지가 해야할 일과 한 일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는 녹취기를 준다. 녹취기를 통하여 김병수는 자신이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을 찾기 시작한다.
연쇄 살인범인 김병수와 호형호제하며 한 동네에 살아가고 있는 “안병만”파출소장(오달수역)과의 관계는 아이러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은희는 지역 아카데미에 가서 활동하는 것을 권유한다. “시선생”(이병준역)은 구시대적 언어와 술수로 여심을 흔들지만 김병수는 오히려 역겨워 한다.
김병수의 아내는 바람이 났다. 외간 남자와의 밀회에서 은희를 출산했다. 분노한 김병수는 아내와 내연남을 살해하고 대나무밭에 암매장했다. 누나는 “마리아”(길해연역) 수녀로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삶과 김병수의 삶은 늘 고단하다. 그들에겐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남아있고 오랜 세월동안 그 상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민태주는 반대로 어머니가 가해자다. 어머니가 다리미로 내려치는 가운데 민태주의 한쪽 머리 일부가 함몰되어 버렸다. 민태주에겐 여자가 적이다. 어머니로 인한 그의 상처는 잊혀지지 어려운 아킬레스다. 그는 지금 경찰로 일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또한 연쇄살인범이다. 자극적인 살인은 또 다른 살인을 부르며 지금 은희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기억을 잃어가는 김병수와 잃어버린 기억을 조작하는 민태주의 두뇌게임에서 승자는 누가 될까? 은희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려고 했던 김병수는 민태주에게 은희를 맡기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도 알지 못한다. 민태주는 은희를 볼모로 잡고 김병수의 목숨을 노린다. 김병수는 안병만소장으로부터 살인자의 의심을 받고 도망가는 신세가 된다. 안병만 소장과 민태주가 대나무 밭에서 수많은 사체를 발견하고 아연실색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공소시효가 끝난후다. 은희를 구해야 하는 김병수는 안병만소장을 설득하고 김병수는 은희를 볼모로 잡고 있는 민태주의 거처로 향한다. 김병수의 기억은 이제 거의 끝을 향해 간다.
민태주와 김병수의 만남은 언제나 처절하다. 싸움은 끝이없고 기억은 희미해져 가며 딸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끝내 아버지는 딸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회생불능의 말기 치매환자의 자리에 들어간다. 그를 처벌한 법도 의미를 잃어가고 연쇄살인범의 살인도 완전히 멈추어 간다. 세상은 늘 오리무중이다. 어떤 사람이 어느 상황에서 살인을 하는가 하는 것은 의미를 상실한다. 살인자는 그저 살인이 수단이 되고 습관처럼 일어난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살인자를 미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듯 하다. 게임과 같은 비현실은 우리를 다소 경악케 하지만 이 또한 현실의 한 단면일 것이다. 폭력이 부른 가정에서 탄생되는 추악한 현실은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지만 그 어떤 희망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가? 지옥도를 보는 듯한 두 명의 살인자에게서 정의란 없다. 인내심도 없고 죄책도 없다. 그저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이 중요할 뿐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살인은 죄가 적지 않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당화 되지 않는다. 삶과 죽음은 하나님의 몫이다. 사람이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어떤 행위에도 참여하는 것은 죄다. 피해자의 위치가 된다해도 선택은 복수가 아니라 기도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