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에 선인장 꽃이 피어서
박수서
하루 종일 따끔거렸어
손에 무엇을 들어도 살을 파내는 피가 흘렀어
연필을 쥐면 뜨거운 시가 아프다고 국밥처럼 끓었고
혈관을 헤매다 꽂혀버린 창 촉이 그리운 독을 품을 때,
쉬어버린 밥처럼 갈 곳 몰라 솥을 잃고 있었어
이미 주워 먹어 버린 밥알은 완두콩처럼 퍼렇게 질려 목에 박혔어
뱉어낼 수 없는 게 사랑이라면, 그 마음에도 길을 내야 한다면
나는 미끄덩한 길을 만들어 함부로 건널 수 없게 할 거야
뻔히 보이는 철새를 불러 주름지처럼 접어 꽃을 만들 거야
푹 빠져버린 남쪽에서 능선을 타고 기어올라 북쪽으로 갈 거야
거기서 새를 날려 보내야 해
내 심장에 꽃이 피어서
아메리카에서 성장한 대륙처럼, 잎 없이 단단한 선인장 꽃이 피어서
마음이 헛헛하여 물이라도 벌컥벌컥 들이켜다 말라 죽어버릴 것 같아서
박수서 / 1974년 김제에서 태어났다.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마구간 507호」 외 2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으로 박쥐 공포백작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 해물짬뽕 집 갱년기 영애씨를 출간했고, 사랑시집으로 이 꽃 지고 그대 떠나도가 있다. 시와창작 문학상을 수상했다. 전북작가회의와 서민 동인, 전주지역 극단 동ㄴㅔ에서 이미지 조연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무주 읍내에 작업실을 두고 오롯이 시만 쓰며 살고 있다.
언어가 물질화되다 못해 더러 무례하기까지 한 시단 풍토에 끼어듦 없이 자신의 하루를 웅시하는 박수서 시의 호흡이 길다. 한 사람을 오롯이 “지켜보는 눈은 사랑에 더 가까운 생명체”(「저물도록」)라는 시의 목소리는 촉촉하고 살갑다. 자신의 마음조차 망볼 줄 모르는 사나이, 그의 시편들 곳곳에 간직된 그리움의 조각은 삶이 뭐냐고 캐묻는 것 같다.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지켜내는 동력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 이병초(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시에서 소통의 비중이 높아지면 미학의 비중도 저절로 짙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의 경계를 무화시키고 통합적인 세계를 이루려고 하는 박수서 시인의 행보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특이하게도 뫼비우스의 띠를 돌고 있는 그의 시적 여정이 경계를 돌고 돌아 진정한 통합을 이룰 때까지 박수서 시인의 행보는 계속될 것이다. - 박현솔(시인, 문학박사)
첫댓글 박수서 선생님 시집 출간 축하드립니다. 내 심장에 선인장 꽃이 피어서~ 잘 보았습니다. <문학과 사람> 기획시선이라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연보랏빛 표지에 53편의 시,, 그리고 박현솔 주간님의 해설 "소통을 지향하는 뫼비우스의 띠" 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포근한 겨울날입니다. 행복한 겨울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