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낭자머리를 잘랐다. 어머니는 올가을로 만 98세. 그러니까 근 백 년만의 단발인 셈이다.
60대 중반인 내가 막내 노릇이라도 한 걸까, 자꾸 설득하고 조르고 해서 결행된 '사건'이었다.
어머니는 3년 전 고향 (경북 성주) 집을 떠나 서울 둘째 형네 아파트에서 사신다. 나는 서울에 갈 때마다
어머니의 쪽 찐 머리가 불편해 보였다. 예전엔 비녀가 주먹만한 쪽을 가로질러 지탱했으나 근년에는
가느다랗게 남은 머리숱이, 일말의 댕기가 간신히 비녀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나는 마침내 어머니를 모시고 동네 미장원에 갈 수 있었다. 평소 큰형을 제외하고, 서울 누나나
둘째 형, 또 다른 가족이 모두 찬성했고, 당시 어머니의 동의까지 얻은 '거사'였다. 머리 빗기 편하고,
감기 편하고, 깔끔해 보이고... , 그동안 단발을 권할 때마다 어머니는 그 편리함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실행하시는 못하셨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당신의 주장 (主將), 아버지의 영(令)을 염두에
두는 듯했다. 그런 당신 심정을 드러내기가 뭣했던지, 때로는 큰형에게 아버지의 대통을 이어 '장남의 반대'를
내세우기도 하면서 끝내 단발에 응하지 않으셨다. 그러다 결국 현재 수발을 드는 둘째형의
'편의'를 강조한 내 말을 받아들이셨다.
어머니의 세월인 머리채, 그 백 년의 긴 강, 미용사가 어머니의 솔방울만 한 쪽을 풀고 몇 굽이
매달린 머리채를 자를 때 나는 비녀와 함께 세기말, 그 낭자 끄트머리도 한 뼘 받아 챙겼다.
나중에, 당신 북망길의 추억거리로 넣어드릴 생각이었다. 어머니의 머리결 빛깔은 아직도
거므스레하다. 아니, 희끄므레하다. 그 세월에도 참 '표백'이 아니다. 어머니가 아는 머리 미용은
어디까지나 비녀를 찌른 뒤태다.
어머니의 파마가 끝났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신식 미용'이 막 처음으로 끝난 것.
옛날 그 작은 명경 한 틀, 얼레빗이며 참빗, 동백기름이며 박가분, 자주색 댕기, 그리고 반듯하게
가르던 하얀 가르마... , 그 모두 손수 거느렸던 어머니의 미용 장면이 정겨운 우리의 옛 민화처럼
내 뇌리에 또렷이 되살아났다. 한평생, 날마다 동트기 전에 당신이 당신에게만 오롯이 기울일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 그 오랜 '구식 미용'은 그렇듯 한순간에 싹둑, 영원히 잘려 나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이날까지도 어머니가 낮잠에 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머니 인생은 결국 엄격한 아버지의
그늘 아래 스스로 숨기 위해, 저 솔방울만 한 머리 매듭처럼 단 한 줌도 안 되기 위해 그렇듯 맹활약을 펼친 걸까. 하긴 그것이 어머니의 평화요, 행복이었을 수도 있겠다. 서른 마지기 농사 뒷바라지에,
시부모를 모시며 대가족 뒤에서 종일 집 안 구석구석을 누비던 어머니, 당신의 그 날랜 역할이 어린
내게도 참 잘 보였다. 뙤약볕 아래 새까맣게 표시 나던, 동동거리던 낭자머리였다.
어머니는 그날 미장원의 대형 거울 속에 나타난 당신을, 아니, 웬 머리 바글바글한 노파와 잠시
낯설게 마주 보다가 뒷머리 쪽으로 손을 가져가 다독다독 더듬으셨다. 그러나 파마 머릿결 속엔
이미 없는 것! 비녀가 없어졌다는 실감이 당신에겐 무슨 낭떠러지처럼 아찔했을까. 낙차 큰, 텅 빈
어머니의 표정을 보았다. 나는 비닐봉지에 든 머릿결 속 비녀를 엄지, 검지, 중지로 눌러 만져 보았다.
그 단단한 빗장뼈, 나는 어머니에게 비녀 여기 있다는 시늉으로 손에 든 것을 흔들어 보였다.
어머니는 젊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꼿꼿이 마른 체구다. 요새도 동네길 한 바퀴를 걸어 운동할
만큼 건강하시다. 내년 가을이면 99세, '백수'생신 상차림을 받으신다. 서울살이 덕분일까, 아니다,
어머니하고 잘 노는, 또 티격태격하는 일흔 문턱의 우리 둘째 형 영향일 것이다. 아무튼, 어머니가
많이 변했다. 요즘은 파마머리도 쳐내고 숏커트를 하셨다. 형이 아침저녁 얼싸안고 뽀뽀를 해도
전처럼 "야아가, 와이카노." 하지 않으신다. '굿모닝'도 알고, 밤중에 형하고 겸상으로 와인도
한 잔씩 하며 "위하여!"도 외칠 줄 아신다.
세삼 양 볼에 혈색이 도는 어머니,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신식 헤어스타일로 지금 한창 새로 개화(開花)중이신 것이다. 그러나 아, 그것은 텃밭 한뼘 남지 않은
어머니의 '실향'인 것을... . 그래, 쓸쓸하기도 하다.
문 인수 님 / 시인
(강헌 선집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