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 교재로 선정해 주신 바가바드 기따는 나에게 참으로 신비로운 책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그냥 좋은 책이였는데 지금은 무게가 어마어마한 책이 되었다.
좋은 말이였던 그 글들이 스승님의 가르침을 통해 의미를 드러내면서,
나의 부족함과 상충된다.
그리고 한 줄 한 줄이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 것인지 알게되었다.
제 1장에서 아르주나는 자신의 현실을 피해 도망가고 싶어한다.
자신이 불러온, 자신의 선택에 의한 현실을 피해 눈물을 흘리며 도망가고자 한다.
바가바드 기따의 이 시작의 부분에서 스승님은 직면에 대해 알려 주셨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모순을, 자신이 불러온 현실의 결과를 직면하지 못한다.
도망가고자 하고 피하고자 한다. 이 도망과 회피에는 무수히 많은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회피일 뿐이다.
여기서부터 만만치가 않다.
나는 1장의 직면에서 출발해서 아직 여기 1장에 서 있는듯 하다.
직면해도 삶 속의 내가 크게 나아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또 직면할 것이 생기고
또 직면할 것이 생긴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아직 1장을 벗어나지 못했거나 계속 1장으로 되돌아 온다.
그러니 다른 장의 가르침은 아직 멀고도 멀다.
보상을 바라지 말고 일하라는 말씀도 마스터 되지가 않는다.
잘 되면 더 잘되기를 바라고 못되면 앞으로는 더 괜찮아 지기를 바란다.
마음을 가슴으로 데리고 오라는 가르침도 정말 어렵다.
분노와 어리석음을 가슴에게 가져가 복종하고자 하는데
그러기 싫을 때는 가슴인지 어디인지가 뻐근히 아프고 여지없이 눈물이 난다.
더 무서운 것은 복종하는 척 하는 것인지 진짜 복종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몇일 전 화단에 떨어진 돈 천원을 주웠다. 주변에 찾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 곧 바람에 날려
사라질 듯 해서 얼른 주웠다. 그리고서는 아는척을 한다.
깨달은 사람은 돌과 황금이나 똑같다고 했는데 아직 멀었다고.
그럼 모르는 척 줍지 않는 것은 위선이 아니냐고 반문하다가 정말 심각한 질문이 생긴듯
스승님께 여쭤봐야겠다고 다짐한다.
금방 피식 웃게 된다. 나의 자아는 아는 척을 하고 심각한 척을 하고 대단히 큰 딜레마에
빠진 척 나를 가슴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이런 아는 척 하는 생각 자체가 나를 멀어지게 만든다.
그렇게 다시 1장에 서 있게 된다.
나는 아직 나의 위장의 전모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무엇을 모르는지 조차 모른다.
나의 자아는 순하게 사라지지 않고 이제 아는척을 하기에 바쁘다.
라마나님께서 자아를 바라보면 물성이 사라지고 자아가 사라지며
참나가 드러난다고 하셨는데 자아를 바라보는 그 무엇이 자아인것만 같다.
명상을 하면 어떤 날은 이 자아가 너무 선명하게 옆에 다가와 있어서 어떻게
이것이 소멸된단 말인지 무서울 정도다.
그래서 스승님이 정말로 계셔야 한다.
내가 교묘함 뒤에 숨어 있는지, 속임수에 넘어가 다른 곳을 맞는 길로 착각하고 가고
있는지, 나는 얼마나 거울의 얼룩을 닦아야 하는지 현재의 나로서는 절대 알 수가
없다. 얼마든지 속일 수 있으니까.
직면으로 시작해서 도망치지 않을 수 있기를... 오늘 만큼은 내면의 들판에서
자아가 사라진 자유로운 전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오류 투성이의 나를 떠받치고 있는 순수의식을, 절대로 이 오류에
영향을 받지 않는 나의 참나를 끊임없이 알려 주시는 스승님께, 이 모든 것이
그저 참나의 진동일 뿐이라고 붙잡아 주시는 스승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잘 모르지만 다짐해 본다.
나는 순수의식이다. 나는 소멸되지 않고 그 무엇도 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
1장의 들판에 수십만번 서더라도 나는 순수한 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