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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내어쫓는 기도
마가복음 9:29, 이르시되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한 귀먹고 말 못하는 귀신 들려서 늘 물과 물에 쓰러져 죽게 될 위험을 많이 겪은 한 소년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후에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하시기 전에 그 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재중에 그 소년을 고쳐주려고 용을 썼지만 실패로 돌아갔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러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그 장소에 아니계셨던 거입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시다가 해처럼 빛나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었고 세상을 일찍 떠났던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스럽게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한 신비하고 놀라운 모습을 경험하시고 산에서 내려오신 직후에 산 아래에서 제자들이 그 소년을 고치지 못하고 쩔쩔 매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또 그 소년의 아버지가 달려와 자기 아들을 고쳐달라고 사정하자, 대화를 나누신 후에 그 소년에게 들어 있던 귀신을 향하여
“말 못하게 하고 못 듣게 만드는 귀신아 내게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고 꾸짖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귀신이 소리지르면서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그 아이를 죽은 것같이 쓰러뜨린 후에 완전히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 아이가 정상인이 되어서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병을 고쳐주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쉴 처소인 집에 들어가자, 제자들이 궁금해서 주님께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해주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여러 사본이 있는데, 시내산 사본과 바틴칸 사본과 같은 사본에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되어 있지만, 교회가 정통으로 알고 사용해온 비잔틴 사본과 수많은 대문자 사본과 소문자 사본과 수많은 성구집 등의 사본 자료들은 대부분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천년 교회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교회는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로 이 구절을 읽어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이 구절을 읽을 때는 항상 ‘기도 외에는’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기도와 금식 외에는’이라는 말씀을 염두에 두고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초대 교회의 행적을 보면, 기도와 금식이 함께 자주 행해졌으니, 사도행전 13장 2,3 말씀에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며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보면 두 번에 걸친 금식 기도가 행하여지는 것을 봅니다. 사도행전 14장 23절에 보면, 사도 바울과 바나나가 갈라디아 지역을 다니면서 전도하여 교회를 세운 후에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한 후에 금식 기도하며 그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떠난 것을 봅니다. 이렇듯 초대 교회 때에 금식이 자주 행하여졌음을 보게 됩니다.
주후 100년 경에 만들어진 ‘사도들의 교훈집’이라는 ‘디다케’ 제 8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금식은 위선자들(바리새인들과 율법자들)과 함께 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주간의 둘째날(월요일)과 다섯째 날(목요일)에 금식합니다. 여러분은 주간의 넷째날(수요일)과 준비일(금요일)에 금식하십시오. 또 여러분은 위선자들처럼 기도하지 말고 주께서 복음에 명하신 대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하옵시고, 나라가 임하옵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소서. ...’ 여러분은 이렇게 하루에 세 번 기도하십시오.”
여기에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사도들도 거의 순교한 속사도 시대 초기에 교회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수요일과 금요일을 금식하는 데 시간을 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디다케가 주로 시리아 지역의 기독교인들에게 반포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유대인 중심의 교회들이 이렇게 시행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하튼 오늘 본문 말씀은 기도와 금식을 통해서 영적인 은혜가 임할 때 귀신이 내쫓기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교훈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쳐주신 내용은 귀신을 내쫓을 수 있을 만큼의 기도를 더하라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 금식 없이 귀신을 내쫓으려고 덤벼들었다가 실패한 제자들에게 “그것 가지고는 안된다. 또 다른 것 가지고도 안된다. 이런 종류 곧 영적인 악한 세력과 그 영향을 받아 일어난 여러 현상들을 고치려면, 더 많이 기도하라, 더 시간 들여서 금식하여야 한다”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귀와 귀신 이야기는 옛날 옛적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개명 천지 시대에 어찌 귀신 이야기, 마귀 이야기를 하느냐, 성경의 그런 기록들은 이제 상징적인 말로 해석해야지, 실제적 사건으로 이해하면 안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미신 시대에 동티만 나도 귀신 때문에 생기고, 소똥만 밟아도 귀신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부엌에는 조앙신, 장독대에도 장독대 귀신, 마을 어귀에는 서낭당 귀신 등이 다 붙어 있다고 생각하고 다 섬겨야 한다고 믿었던 어두운 시절이 있었으니, 그런 것은 너무 과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제 과학문명의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있던 마귀와 귀신들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에 사람들을 귀 먹게 하고 말 못하게 하고 간질병자로 만들어서 망쳐놓았던 귀신은 지금도 사람들을 동일하게 괴롭히고 고통을 주고 죽이려 드는 일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간교하게 자기의 일들을 사람들에게 계속하고 있습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지금도 혼잣말하고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가다가 멈추고 누군가하고 막 대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어폰을 들으면서 누군가와 핸드폰 통화를 하는가 보면, 그것도 아니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가족들 품에서 떠나 혼자 떠돌이 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 정신병에 걸린 경우가 많은데, 그들에게 붙은 귀신들은 어떤 사람은 문성명 이단 마귀가 붙은 사람도 보았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귀신을 쫓아내시는 주의 종의 사역을 보면, 평범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의 종이 귀신들을 명하면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귀신들린 현상이 나타나면서 그 귀신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멀쩡했던 사람이 그런 집회 가서 귀신들렸다고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내재해서 활동하던 귀신이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니까 그만 숨을 수 없어서 밖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귀신은 믿지 않는 불신앙인들에게만 들러 붙을 수 있지, 믿는 성도들은 마귀와 귀신들이 전혀 들어올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경고의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또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문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 기도의 말은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요,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것은 ‘악한 자 마귀에게서 구해달라’는 기도의 말인 것입니다. 이는 믿는 성도들에게 날마다 기도해야 할 기도 제목이라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의 교훈집에서는 이 기도를 하루 세 번씩 성도들이 기도해야 한다고 명하지 않았습니까? 성도들은 늘 시험에 넘어질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은 악한 자 마귀에게 공격 당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한 자에게서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지 않은 자, 기도하지 않는 자, 마귀의 간교한 꾀와 술책에 대하여 둔감한 자는 이러한 시험에 들게 되고 마귀에게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가까이 있어도 마귀는 그를 부추켜서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자 하신다는 말씀을 듣자, 그렇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듯 말했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책망을 들었습니다. 이는 그 때 베드로가 마귀에게 강한 영향을 받아서 예수님의 뜻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런 책망을 들었던 것입니다.
에베소서 5:26 이하에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에베소서 4:25,26)
라고 말씀하였으니, 이는 성도들이 마귀에게 틈을 주어 마귀가 틈타서 그 사람에게 들러붙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가 틈탈 명분과 이유를 주면 마귀는 절대로 사양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으면 마귀는 좋아서 달려옵니다. 우리가 방심하여 기도를 쉬면 마귀는 좋아서 달려옵니다. 우리가 만일 마음에 원망과 불평을 품고서 하나님과 교회와 주의 종을 비난하고 미워하면 마귀는 춤을 추며 달려옵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에게 그러하듯이, “너는 내 수제자구나, 내 뜻을 이루어다오”라고 사랑스럽게 달려와서 부추깁니다. 화를 벌컥 과도히 내는 것도 피하십시오. 화가 잠시 나도 하루를 넘기지 말고 곧 풀어야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합니다. 믿는 사람들까지도 마귀는 얼마든지 틈을 탈 수 있습니다. 틈을 내주면 믿는 자에게도 마귀가 비집고 들어와서 그 안에 집을 짓고 살림차리고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들어와서 결코 안 나갈 결심을 굳히고 그를 꽁꽁 얽어매려고 기회를 항상 엿보고 있음을 명심하고 늘 깨어 지키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의 귀신들림을 내쫓는 축귀의 기도를 드릴 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마귀와 귀신들이 틈을 타고 간교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들은 영적으로 귀신을 내쫓는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고 하였으니, 우리 안에 더러운 귀신이 틈탄 현상을 느끼거나 그 영적 증거들을 보면 더러운 귀신을 내쫓는 기도와 금식을 통하여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경우에 이렇게 귀신을 내쫓는 영적 대적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예를 들면, 죄를 짓고자 하는 욕망이 집요하게 생겨날 때입니다.
마귀와 귀신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합법적으로 들어와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짓게 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지으면 마귀와 귀신들은 그 죄를 인하여 그 사람에게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합법적 권한을 갖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니까 그 즉시 죄의 종이 되고 마귀의 종이 되고 그 삶이 귀신의 공격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죄를 범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것이 마귀와 귀신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 계시고 하나님의 새 생명이 심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로 죄를 싫어하고 이길 수 있는 새로운 힘이 들어와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성화되지 않은 인간이기에 여전히 타락한 본성은 죄로 끌어가는 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죄로 끌어가는 힘을 강화시키고 죄를 짓는 것이 더 멋지고 더 달콤하고 더 인간미 있는 행동이라고 포장하게 만들어서 마귀와 귀신은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렇게 죄를 짓게 만든 다음에는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 사로잡아 버립니다. 더 많은 죄로 끌어가고 그런 다음에는 죄의 결과인 수많은 고통과 슬픔과 실패와 질병과 죽음으로 내몰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그 마음 속에 계속하여 어떠한 죄를 향하여 갈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배후에 귀신이 역사하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예를 들면, 예수님 믿고도 자꾸만 점을 치려는 유혹에 자꾸 마음이 끌린다거나, 절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이단 사이비 집회에 자꾸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거나 한다면 그것은 더러운 이방 종교의 영에 공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자칫 저 태국이나 캄보디아나 버어마나 베트남 등에 여행갔다가, 저 인도에 여행갔다가 거기서 이것 저것 기념품도 사고 그곳의 불교나 힌드교 사원에 가서 구경하다 보면 자칫 그 이방 종교의 영에 공격을 당하여서 그만 신앙심이 흔들리고 그곳에서 합장하고 절하고 그러다가 믿음이 사라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신자들은 마귀와 귀신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고 종교의 영을 향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꾸짖어 물리쳐야 합니다.
또 예를 들면, 마음에 세상 사람들처럼 자꾸만 도박도 하고 싶고, 술을 마시고 싶고, 세상 사람들처럼 마음껏 놀아보고 싶고, 신앙 생활을 나태하고 게으르게 하고 싶고 신앙을 가진 것이 귀찮고 자꾸만 속박감이 든다면, 이는 세상의 영이 들어온 것입니다. 이는 불신앙의 영이 들어온 것입니다. 불신앙의 귀신들이 들어오면, 자꾸만 세상이 더 아름답고 더 멋지고 더 행복하고 더 좋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의 웃음이 진짜 행복한 것 같이 느껴지고 죽은 다음의 일은 죽어봐야 아는 일이지, 천국 지옥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심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귀신의 역사가 있는 것이니, 이럴 경우에 우리 자신을 향하여 귀신을 꾸짖어 물리쳐야 합니다.
또 예를 들면, 습관적으로 슬프게 만들고 불안과 우울한 마음이 자꾸만 찾아오고 그래서 살기가 싫고 자꾸만 세상에 사는 의미가 없고 허무하게 된다면, 이것도 우울의 영, 귀신의 공격일 경우가 다분합니다.
성경에 보면, 귀신에 사로잡혔던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도 자기 칼로 자살했지요, 귀신에 씌였던 가룟 유다도 목 매달고 자살했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실컷 놀려먹다가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자살하도록 자꾸만 충동질을 하여 뛰어내리게 하고 목을 매달게 하고 농약을 먹게 하는 악한 일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용서와 사랑을 주시고, 삶의 희망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삶의 보람을 알게 하고 삶의 의미를 깨닫고 남은 삶의 목표를 정하게 하시고, 천국의 상급과 영광을 바라보고 최선을 다하여 일하게 하시는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 고아처럼 홀로 우리를 버려두지 않고 과부의 남편이 되어주사 동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 마음 속에 자꾸만 우울해지고 슬픔이 찾아오고 삶이 허무함만이 자꾸 찾아오면, 이것은 마귀와 귀신의 장난치는 것임을 알고 귀신아 까불지 말고 예수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큰소리로 꾸짖기 바랍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성격이 대단한 분이셨지만 우울증세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찬양을 많이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골방에서 귀신을 향하여 담대하게 물리치는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때로 그의 기도가 얼마나 현실적인 것인지, 그가 기도할 때 마귀를 향하여 잉키병을 내던져서 벽에 잉크 자국이 선명하게 남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마귀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울함과 허무함과 낙심이 자꾸만 찾아온다면, 그것이 마귀 장난인 줄 알고 예수님 이름으로 꾸짖어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이 외에도 어떤 중독 현상들도 귀신의 역사일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꾸만 무엇인가 훔치고 싶은 도벽의 습관이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이 귀신의 역사일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도박이나 술이나 스마트 폰, 티브이, 영화, 음란 영상물, 폭력물 등에 아예 중독 되어서 끊지 못하는 경우에, 이 이면에 악한 귀신이 역사하고 있음을 기억하시고, 단호하게 예수님의 이름올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질병의 경우에도 다는 아니지만 귀신의 역사도 이면에 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귀신은 그 사람을 결국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본업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삶, 그 사람의 가족의 삶, 그 사람이 속한 공동체를 어떻게 해서라도 망하게 만들고 병들게 만들고 처참하게 죽게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와 귀신들은 육체적인 질병들도 가져다 주곤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보았듯이, 귀를 듣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고 간질 증세를 일으킨 이 소년도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귀신이 들어가서 일으킨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어 내쫓으니까 그 아이가 완전히 고쳐져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질병들을 예수님이 고치실 때에 때로 귀신을 내쫓듯이 꾸짖어서 고친 적도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의 경우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듯이 병을 꾸짖어서 깨끗이 고쳐주셨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질병의 경우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이면에 자리잡은 질병의 귀신을 내쫓을 때 그 병도 낫는 역사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원의 의사들을 통하여 우리가 병을 고치기도 하지만, 우리들은 더 완전한 의사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쳐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낫지 아니할 때 죄를 간절히 회개하고 병을 일으키는 병마를 향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꾸짖어 물리쳐 고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듯 우리가 귀신을 내쫓는 기도를 우리 자신을 위하여서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나아가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귀신을 내쫓아 주는 강력한 기도의 용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제자들이 그 소년에게 들렸던 더러운 귀신을 내쫓아주지 못한 일에 대하여 나직하게 책망성 말씀을 하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이런 꾸중이 담겨 있습니다.
“너희들이 기도를 게을렀구나, 너희들이 금식도 하지 않았구나, 너희들이 영적인 대적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모르고, 영적 훈련을 게을리 했구나. 이제는 기도를 많이 쌓거라. 금식도 쌓거라. 그래야 다른 사람들을 귀신과 악한 마귀로부터 건져낼 수 있단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 주님은 마귀와 귀신들과 맞서 싸워 그들을 이기는 영적 씨름꾼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이 단지 예수님을 믿고 구원만 받고 마는 수준이 되지 말고, 이면에 역사하는 마귀와 귀신들의 역사를 깨닫고 그들의 집요한 공격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시험을 이기고 마귀를 정복하고 또한 다른 이들을 살려내는 영적 용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의 기도가 더욱 강하고 담대함으로 무장되어야 함을 새롭게 깨달읍시다. 우리의 기도에 마귀와 귀신들을 내쫓는 영적 기도의 단계까지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주신 은혜의 약속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눅 10:19)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
그렇습니다. 우리가 내 능력, 내 연조, 내 경건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을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이름,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마귀를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강한 자 마귀, 간교한 자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때로 금식하면서 주님을 더 의지하고 주님을 신뢰할 때 그 신뢰의 깊이만큼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사 영적인 담대함을 주실 것입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주실 것입니다. 귀신을 명할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간교함을 분별할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욱 영적으로 무장하도록 기도하고 더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연합해서 싸워야 합니다. 혼자 싸우면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군대인 교회의 성도들과 이 싸움을 함께 싸워갑시다. 서로 귀히 여기고 서로 중보 기도의 용사로 서서 마귀에게 공격당하는 형제 자매를 보면, 중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마귀와 귀신의 공격은 다양합니다. 영적으로 그것이 숨어서 역사하는 것을 깨달은 성도들이여, 이제 더욱 기도로써 돕고 함께 마귀와 귀신을 싸워 물리칩시다. 오늘 이 밤에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죄를 고백하면서 자기 안에 역사하는 귀신들을 내쫓고 물리칩시다. 그리고 더욱 앞으로기도로 무장하여 영적인 용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귀신의 공격에서 자유케하고 병과 고통과 가난과 실패와 슬픔의 늪에서 자유케 하는 은혜가 있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