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인과론이 그 핵심이다.
강병균(포항공대 교수)
사람은 진리로 살지 않는다. 많은 경우에 진실은 부담스럽다. 세상의 맨 얼굴을 보면 살기 힘들다. 하지만 환망공상을 벗어나면 대자유의 삶이 찾아온다. 사람들은 종교가 거짓말인 줄 알지만 종교를 가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위안과 평온이 크기 때문에 차마 종교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종교는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기준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고해(苦海)에 빠져있는 중생들에게는 플라시보(위약 僞藥)일지언정 끊을 수 없는 특효약이 바로 종교인 것이다.
※ 플라시보(placebo), 즉 위약(僞藥)이라는 게 있다. 플라시보 이펙트(placebo effect), 즉 위약효과란 '환자가 가짜약을 진짜약이라고 생각하고 복용하면 놀랍게도 가짜약이 진짜약처럼 힘을 발휘하는' 기이한 현상이다.
‘환망공상’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부정, 중립, 긍정 모두 갖고 있다. 예를 들어 ‘흑인은 열등한 종족이다. 따라서 노예로 부려도 된다.’는 것은 망상(妄想)이다. 종교적으로 ‘천국을 봤다’, ‘극락에 갔다 왔다’ 등을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믿는다면 그것은 환상(幻想)이다. (유사이래로 천국과 지옥을 증명한 사람은 없다.) 이러한 부정적인 것들이 가지는 악(惡)기능이 있다. 하지만 선(善)기능도 있다.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가설을 세우는 것에는 ‘상상’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 과학이나 문명을 발달시키는 힘이 바로 그것이다. 종교계에서 버려야 한다고 말한 것은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환망공상’이다. 불교에서 주장하는 윤회론 같은 것은 과학적 증명인 진화론에 의해 거짓임이 밝혀졌는데, 그것을 계속 믿고 주장하는 망상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부처님의 뜻은 이렇다. 우리는 갓난아이로 태어나서 노인이 되지만 그 사이에 유지·전달되는 불변의 마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마음은 연기현상(緣起現像)일 뿐이다. 현대적인 말로 하자면 몸과 뇌와 환경(자연과 타인)의 작용일 뿐이다. 그러므로 다음 생으로 옮겨갈 마음은 없다. 즉 갓난아이에서 노인으로 옮겨온 불변의 마음이 존재하지 않듯이 지금 생에서 다음 생으로 옮겨갈 불변의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지금 우리 몸과 마음을 인(因)으로 하여 다음 몸과 마음이 과(果)로 생성될 뿐이다. 이 일은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사는 동안에도 그러하고 죽은 후에도 그러할 것이다.
인간은 특정 종교를 안 믿어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타국의 소유물에 대한 탐욕과, 타인과 타국에 대한 증오와, 이런 탐욕과 증오가 가져올 보복의 악순환에 대한 무지가 지옥으로 가게 만들며, 그 지옥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사는 이 세상이 지옥이다. 지옥과 천국은 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환망공상으로 존재한다.
부처님 재세시(在世時)에 신도들끼리 모인 불교모임에서 부처님이나 아라한들이나 신들에게 복을 비는 행사를 가졌다는 말인가?
참석자들은 출가자 재가자 할 것 없이 누구나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와 ‘제법(諸法)은 연기(緣起)’라는 ‘인식의 전환’을 이룸으로써 세상의 고통을 해탈고자 하는 구도심으로 불타지 않았는가?
불교 인과론에 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인(因)을 지은 사람에게는 그 일이 일어나는 법’인데 왜 부처님이나 신격(神格)보살들에게 가서 그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빌어야 한다는 말인가?
출처 : 강병균 교수 강의 요약 정리
◆불교에서 윤회(輪迴)는 고락(苦樂)이 반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죽어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거나 소도 되고, 닭도 되고, 말이 되는 것은 힌두교와 브라만교에서 ‘윤회’이고 중국 고사에서는 고락의 반복을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우리의 마음이 괴로움(苦)과 즐거움(樂)을 되풀이한다는 것을 ‘윤회’라고 표현했습니다. 윤회에서 벗어났다는 말은 ‘다시는 괴로움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이걸 다른 말로는 ‘해탈(解脫)’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서로서로 조건 지워져 생멸 변천하는 일체 유위법의 연기적 흐름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회는 찰나생 찰나멸(刹那生 刹那滅)의 한없는 연기의 흐름입니다. <법륜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