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회 일원상 법어와 게송
안녕하세요. 마음공부를 안내하는 최경도 교무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제까지 [정전]을 공부 하면서 [정전]을 처음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전] 목차의 순서를 바꿔 공부해 왔다. 일원상 장을 공부하는 순서도 [정전]에 있는 대로 일원상의 진리 신앙 수행을 차례로 공부하기 보다는 “일원상 서원문”을 이해하기가 더 쉽고 일원상 법어와 게송을 먼저 공부하는 것이 일원상의 진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일원상 서원문”은 앞에서 공부하였으므로 오늘은 “일원상 법어”와 “게송”을 일원상의 진리에 앞서 먼저 소개하도록 하겠다.
[정전] 일원상 장은 우주의 참된 이치인 진리와 그 진리를 깨침과 실행에 관한 내용이다. 깨침을 말하려면 육하원칙에 따라 여섯 가지를 확인해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을 깨쳤는가’ 하는 중요하다. 소태산 대종사는 구도하여 큰 깨침을 이루고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 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하였다.
이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첫째 우주에 존재하는 일체 만유가 한 체성이라는 것이다. 이는 형상으로서 하나가 아니라 그 근원이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다에 있는 섬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어 서로 나뉘어 보이지만 바닷물 아래로 모두 연결되어 있듯이 식물은 뿌리를 땅에 박고 연결되어 있으나 동물은 뿌리를 하늘에 박고 연결되어 있어 그 기운이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둘째 생멸이 없다는 것은 인간은 영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형상이 없는 우리의 영혼은 시공을 초월하여 생함도 멸함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형체가 있는 육신은 인과의 이치 따라 변화한다. 셋째 서로 바탕 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이루었다 하는 것은 나뉘어 있지 않고 하나라는 것이다.
공부인이 스스로 본인이 깨쳤는지 깨치지 못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법문이 “일원상 법어”이다. 내가 깨쳐 아는 바를 여기에 대조해 보면 알 수 있다. “일원상 법어”의 시작이 “이 원상의 진리를 각하면” 하고 시작하고 있으며 이러이러한 것을 알리로다 하고 끝맺고 있으니 여기에서 말하는 내용을 알고 있으면 깨쳤고 알지 못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깨치지 못한 것이다.
[정전]에서 보면 “일원상 법어”는 먼저 큰 원상이 그려져 있고 “이 원상의 진리를 각하면 시방 삼계가 다 오가의 소유인 줄을 알며, 또는 우주 만물이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을 알며, 또는 제불·조사와 범부·중생의 성품인 줄을 알며, 또는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 상승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또는 원만 구족 한 것이며 지공무사한 것인 줄을 알리로다.” 하고 작은 원상 여섯 개를 그려 놓고 매 원상마다 “이 원상은 눈, 코, 귀, 입, 몸, 마음을 사용할 때 쓰는 것이니 원만 구족 하고 지공무사한 것인 줄을 알리로다.” 하였다.
이 “일원상 법어”는 매년 대각개교절 기념식 행사에서 법어 봉독 식순에 받들어 봉독하는 것을 보아도 깨침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대종경] 부촉품 14장을 참고하면 “일원상 법어”는 그 내용을 크게 ‘자기와 천지 만물의 관계’와 ‘불보살 되고 범부 중생 되는 내역’과 ‘각자 자신 거래의 길’ 세 가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실생활에서 내 몸을 사용 할 때에 일원상 진리 따라 진리의 쓰임인 원만 구족 하고 지공무사하게 생활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육근의 사용이 원만함을 잘못 이해하면 모나지 않게 행동하여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하여 본인의 의견이 없는 것을 원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앞회에서 설명한 천지 팔도에서 원만구족 하고 지공무사한 육근의 사용을 찾아볼 수 있다 하였다. 천지의 도는 지극히 밝은 것이며, 지극히 정성한 것이며, 지극히 공정한 것이며, 순리 자연한 것이며, 광대 무량한 것이며, 영원불멸한 것이며, 길흉이 없는 것이며, 응용 무념한 것으로 이 여덟 가지 도를 체 받아서 행하는 것을 원만하고 지공무사하다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원불교는 불교를 시대화 대중화 생활화 하였다고 한다. 옛 도인들은 대개 임종 당시에 바쁘게 법을 전하는 게송을 전하였으나 소태산 대종사는 미리 제자들에게 게송을 전하였고 옛날에는 몇 사람에게만 밀밀히 전하였으나 우리 큰 스승님은 대중들에게 공개적으로 전하였다. 그리고 법을 오롯이 받고 못 받는 것은 본인들 각자의 공부에 있으니 각자 정진하여 후일에 유감이 없게 하라. 하였다.
그 게송이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이나 구족 역시 구족이라” 이다. 게송이라 하는 것은 본인이 깨달은 경지를 운문체의 글로 지은 것이다. 무엇에 대한 깨침인가 하는 것이 문제인데 이는 우주 만유의 본래 이치와 우리의 자성 본원을 깨친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1941년 1월에 게송을 발표하고 1943년 6월에 53세로 열반 하였다.
소태산 대종사는 게송에 대하여 “유(有)는 변하는 자리요 무(無)는 불변하는 자리나, 유라고도 할 수 없고 무라고도 할 수 없는 자리가 이 자리며, 돌고 돈다, 지극하다 하였으나 이도 또한 가르치기 위하여 강연히 표현한 말에 불과하니, 구공이다, 구족하다를 논할 여지가 어디 있으리요. 이 자리가 곧 성품의 진체이니 사량으로 이 자리를 알아내려 하지 말고 관조로써 이 자리를 깨쳐 얻으라.” 하였다.
여기에서 유와 무는 사리 연구에 있는 대소 유무의 유무와 같지 않다. 사리 연구에서는 “유무라 함은 천지의 춘·하·추·동 사시 순환과, 풍·운·우·로·상·설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흥·망·성·쇠의 변태를 이름이며,”이라 하여 사물의 변화를 의미하나 게송에서 유무는 “유는 변하는 자리요 무는 불변하는 자리”라 하여 성품 자리를 지칭하였다.
진리 설명에서 자리의 의미는 차원이나 경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변하는 자리와 불변하는 자리는 차원이 다르다. “이 자리가 곧 성품의 진체이니 사량으로 이 자리를 알아내려 하지 말고 관조로써 이 자리를 깨쳐 얻으라.” 하고 부촉한 말의 깊은 뜻을 우리 공부인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이 의미는 궁극적 실체에 관한 의문을 연마하여 때가 되고 인연을 만나면, 아하 그렇지, 그 뜻이야 하는 깨침의 느낌이 들 때가 있음을 의미한다.
법문에서 핵심이 되는 단어는 “관조로써 깨쳐 얻으라”는 것이다. 관조는 밝게 비추어 본다는 뜻으로 어떠한 특정한 견해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성품과 진리의 세계를 비추어 보아 깨쳐 아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과 분석으로는 진리를 표현한 내용을 파악할 수는 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미치지 못하는 심오한 진리의 세계를 체득할 수 없다.
소태산 대종사 봉래 정사에서 “변산구곡로에 석립청수성이라 무무역무무요 비비역비비라.” 하고 “이 뜻을 알면 곧 도를 깨달은 사람이라.” 하였다. 도 깨치는 일이 참 어렵고도 쉬운 일인데 우리 공부인들은 도를 깨쳤는지 궁금하다.
오늘은 깨달음의 노래인 “일원상 법어와 게송”에 대하여 공부하였다. 다음 시간에는 일원상 장의 핵심인 “일원상의 진리, 일원상의 신앙, 일원상의 수행”에 대하여 소개하겠다. 오늘도 마음공부 잘 하여서 새 세상의 주인 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