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 시인이 20여년 만에 두번 째 시집, '나에게 묻는 나의 안부'를 발간했습니다
◉출판사 서평
이명희 시인이 20여 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나에게 묻는 나의 안부』(작가마을)를 펴냈다. 이명희 시인은 과작(寡作)의 시인이다. 아무리 과작이지만 20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이라니.... 자연 독자의 관심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명희의 시들은 절제된 서정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군더더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셈세한 철학성을 담보하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30여 년 문단활동에서 얻어진 문학인생이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이명희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선보인다. 내연과 외연의 모닥불을 한꺼번에 지피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명희 시인의 이번 시집은 주제적 다양성과 함께 치밀한 벽돌쌓기처럼 결코 가벼움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것은 시인의 성격에서 나타나는 것이기에 그녀의 사물에 대한 관찰과 꼼꼼함이 어떠할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아무튼 이명희 시인의 이번 시집 『나에게 묻는 나의 안부』는 칼날만 나무하는 도시시에 지나치게 편승시켜온 독자들에게 모처럼 정밀한 서정시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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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이명희 시인이 감각하는 세계는 “얼굴 없는 소리들”(「귀에서 소리가 난다」)로 가득하다. ‘얼굴 없음’은 실체의 부재를 의미한다. 실체의 부재는 소리의 실재를 분명하게 감각케 한다. 그러나 그 감각은 ‘나’에게만 한정되며 다른 이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나’의 감각은 소통되지도 공감을 불러오지도 않는다. 소리의 실재에 골몰하는 존재는 그것이 외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명처럼 존재의 내부로부터 기원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쓸쓸함에 휩싸인다. 이 쓸쓸함의 정동은 “방향이 없는 길 위에”(「저물어가는 아버지」) 놓인 고립된 주체의 존재 방식을 가시화한다. 장-뤽 낭시가 말한, 타자와 목적 없는 나눔을 나누고 함께 있음 자체를 나누는 관계가 불가능한 주체는 공동체 바깥으로 내몰리고 만다. 그런 상황에서 시인은 “삶은 언제나 거룩하게, 또는 장렬하게/굴러 떨어”진 것이라 여기며 “속절없는 인사만 가득”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일을 “거짓말”이라고 맥락화한다(「생(生)은 언제나」). 자신이 처한 삶의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계(視界)가 스산하기만 하다.
-이병국(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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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약력
시인 이명희는 경북 경주에서 출생하였으며 1993년 《문학세계》로 등단했다. 부산작가회의 회원, ‘마루’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서늘한 생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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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짧은 안부를 묻다
나에게 내 안부를 물을 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일을 하고 살았던 것 같은데 돌아보니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번 생(生)이 비록 묽고 흐릴지라도 그것 또한 어찌 하겠나.
내 그림자는 내가 만드는 것을.
내가 이름을 부르는 모든 생명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23. 가을 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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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속 시
복어는 볼록거린다
내장처럼 은밀하게 숨은
골목집에서 복국을 먹는다.
바다는 탁자를 펴고 뜨끈하게 담겼다.
반짝거리는 숟가락으로
저녁을 퍼 올리면
복어는 국물 속에서 볼록거린다.
뱃속에 새파랗게 가두었던
무기를 풀고
복어는 유순한 고기가 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위협하고
고기가 고기를 위협하고
고기가 사람을 위협하는
이 뼈다귀 같은 세상에
반찬 없이 밥을 먹는다.
꿈에서, 복어는 헤엄쳐 다닌다.
내 몸속을 걸어 다닌다.
탱탱하게 부어오른 내 독의 언저리를
꼬리치며 헤엄쳐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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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아버지
인두에 덴 화상 자국처럼
불현듯 아버지가 생각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깊은 수렁으로 빠진 아버지
저물어가는 아버지,
햇빛이 들지 않는 침상의 시간만이
아버지를 지키고 있는데
무기력한 감정들이 걸을 때마다
마른 풀처럼 건조하게 바스락거렸다.
때때로
방향이 없는 길 위에서
이름을 찾지 못한
울음이 터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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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만 보인다
법원으로 가는 호송차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대의 얼굴을 기억하지 않도록
창문마다 촘촘히 심어진 창살,
세상은
세상을 참아내는 사람과
감옥을 참아내는 사람으로
분별력 없이 나누어지고
우리가 생각 없이 세상에 스민 것처럼
그대의 죄도 무슨 생각이 있어
그대를 결박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거꾸로 흔들면,
바닥이 주둥이가 되는 물병을 들고
우리는 너무 오래 시비를 거는 것은 아닐까.
그대의 무릎뼈를 지나는 슬픔을
너무 오래 앉혀버린 것은 아닐까.
법원으로 가는 호송차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그림자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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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작가마을시인선 60
이명희 시집 나에게 묻는 나의 안부
자서
제1부
복어는 볼록거린다
3월 31일
지나가는 소가 웃는다
흰 우유에 대한 믿음
저물어가는 아버지
귀에서 소리가 난다
그림자만 보인다
생生은 언제나
나비는 날아가지 않고
꿈을 팔다
나의 마음도 어제보다 사납다
불수의 적
글자가 다르게 보인다
기대하지 않은 일
청춘은 멈추었고
p의 밥
어느 날
버스 안에서
이름이 흔들렸다
모든 것을 버렸다
해연 씨는 교회로 간다
옷을 입은 작은 개들이
제2부
심청에게 편지를 쓰다
그 어여쁜 여자
함께 아침을 걷다
시간이 되었다
산다는 것
고양이 밥
아파트가 내게 온다
이해하기로 한 일
거짓부렁 내 생존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고
그냥 피었다
주소가 바뀌었다
강물 앞에 서다
나는 모르겠다
어쩌지도 못하는 것을
내 가방은 늘 무겁다
달래가 좋다
비가 온다고 그랬다
햇빛에 손을 높이 올리고
그렇게 생生을
제3부
바다로 간다
불안한 여자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다정한 그 누가 찾아오면 좋으련만
풍 경
강물을 바라보는 사람
두려움을 피하다
까마귀는 춤을 춘 거다
겨울 저녁이었다
주문을 외웠다
생각에 약을 바른다
고속버스에서 건빵 먹기
냉이 꽃이 피었다
그 집
오늘이 몇 월 며칠인가
길을 잃었다
그네
밥을 위하여
순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천마산 조각 공원에서
풀은 베어져
나무는 마음을 다해
별을 찾아 가다
■해설: 삶을 견지하는 마음 한자락-이병국(시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