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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않고 기도하려면
데살로니가전서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오늘 우리들은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에 대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또 하나의 교훈을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우리가 다 아는 익숙한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유명한 명령의 말씀 중에 나오는 귀한 말씀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이 명령은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가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을까요? 다음 몇 가지의 규칙을 마음에 새기고 늘 지키려고 힘쓰고 습관이 되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주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모든 일마다 다 기도의 기회로 삼아 기도하며 일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6 말씀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 중에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모든 일을 기도와 간구 없이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일 없이 사는 날은 없습니다. 밥 먹는 것도 일이요 옷 입는 것도 일이요 출근하는 것도 일이요 운전하는 일도 일이요 사람 만나는 것도 일이요 주님의 교회 예배 출석하는 것도 일이요 아이들 교육하는 것도 일이요 사람을 만나 대화 나누는 것도 일이요 쉬는 것도 일이요 씻고 자는 일도 일입니다.
이 모든 일에 다 가장 좋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최선의 방법을 추구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길, 가장 좋은 효과를 구할 필요가 있고, 어떤 물질과 자원이 그 일에 필요하고, 그 일을 하는데 우리의 마음 자세에 평안이 필요하고 지혜가 필요한다는 등의 필요들이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길이 막힐 때 차량 소통이 잘 되기를 구할 필요가 있고,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눌 때 서로의 마음이 잘 열려서 하나가 될 필요가 있고, 어떤 일을 할 때 꼭 필요한 만남을 가져야 하는데 그러한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은혜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잠을 자는 것도 하나님께서 잠을 주셔야 잠이 오는 것입니다. 그냥 누웠다고 잠이 오는 것도 아닙니다. 평안하게 잠을 잘 수 있겠다고 자리에 누웠지만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고 밤 두 세 시까지 뒤척이면서 잠을 못잔 경험을 하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자는 것이 너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그 쉬운 잠도 안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이기에, 우리들은 잠을 자는 일도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를 드려야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 16:3 말씀에,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들에서 하나님께 그 일을 맡기는 기도를 늘 드리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의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원칙을 항상 기억하고 실천합시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일을 기도하는 기회로 삼자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기도를 올리는 통로로 삼읍시다. 밥을 먹을 때에는 감사하면서 기도하고, 운전대를 잡을 때는 사고 나지 않고 순조롭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쉴 때조차 주님과 함께 그 휴식을 마음껏 즐기며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이렇듯 모든 일을 기도와 간구의 기회로 삼으십시다. 그리하면 우리들은 참으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는 습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중요한 원칙은 하루라는 기간 동안에 일정 시간을 내어 하나님께 집중하여 기도하는 것을 생활화하라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의 의미가 매 분, 매 초 단위로 기도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정상적으로 말하면 이렇듯 하루 하루 일정한 기도의 시간을 내어서 정기적으로,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지켜가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그렇게 기도한 사람입니다. 시편 55:17 말씀에,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루 세 번씩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며 눈물과 탄식으로 기도를 올리곤 했던 것입니다. 아마 고난 중에 시작한 영적 습관이었지만 그는 이 습관을 계속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니엘도 그렇게 정기적으로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다니엘서 6:10 말씀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식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놓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던 영적 습관대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으니, 그는 이 정기적 기도를 목숨보다 귀중히 여긴 영적 습관으로 삼아 실천한 것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정기적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은 믿음의 선진들이 행한 중요한 영적 습관이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정하여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우리들도 정하고 이를 실천에 옮길 때 우리들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명한 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기적 기도 시간을 정해놓지 않으면 상황에 따라, 영적 기복, 감정상 기복, 건강상 기복에 따라 기도를 쉬게 되고 그것이 장기화되면 기도의 습관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반드시 자기의 생활을 돌아보고, 정기적인 기도 시간을 정해놓는 일을 반드시 정해놓고 실천해야 합니다.
셋째로, 마음에 감동이 올 때 곧 즉시로 순종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기도하고 싶은 감동이 올 때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져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형편이 가엽고 마음이 아파 중보 기도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마음에 불안하고 무슨 일이 생겨날 것 같아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내적 충동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할 때는 언제든지 미루지 말고 기도의 장소를 급히 찾아서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성령께서 갑자기 감동하사 기도할 마음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할 때는 그러한 마음의 소원, 감동을 무시하지 말고 즉시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그러한 감동과 마음의 기도의 소원을 무시하고 나중에 기도하려고 하면, 그 감동이 사라집니다. 기도한다 해도 뜨거움이 사라지고 밋밋한 기도를 드리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갑작스럽게 기도할 마음이 들 때면 하던 일을 미루고, 한쪽으로 치우고, 곧장 기도하기 위하여 엎드리는 것을 절대적인 원칙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여구역장님이 믿지 않는 경찰 간부의 부인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이 믿는 아내의 신앙 생활에 대하여 심하게 핍박했습니다. 하지만 열심을 가진 이 구역장은 그 날도 구역예배를 인도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마음에 이상하게 불안감이 업습해오더랍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무 불안해서 어쩔 수 없이 가다가 가로등 옆에 앉을 만한 자리에 꼬그려 앉아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더랍니다.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니까 성령께서 주신 방언 기도를 간절히 했답니다. 눈을 감고 한참을 방언기도하였더니 마음이 염려와 불안이 사라지더랍니다. 그래서 눈을 떠보니 길 가던 사람들이 다 둘러서서 자기를 이상한 사람으로 알고 다 쳐다보면서 수군거리더랍니다. 부끄러워서 후딱 일어나서 구역예배를 인도하고 집에 다시 돌아왔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현관부터 집이 완전 난장판이 되었더랍니다. 거실에 집안의 모든 물건이 다 쏟아져 있더랍니다. 구역장님은 순간 집에 강도가 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리가 덜썩 주저앉더랍니다. 안방에 가보니 아니나다를까 집에 귀금속과 현금을 담아 놓은 서랍도 여지없이 나와 있더랍니다. 이제 남편이 이 사실을 알면 자기는 큰 변을 당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답니다. 그래서 자기가 반지랑 함께 돈을 싸서 보자기로 싸 담아놓은 열린 서랍을 서둘러 뒤져보니 그것들이 밖에 나와 있는데, 놀랍게도 다른 것은 다 풀어 헤쳤는데, 그것은 풀지 않고 그대로 내놓았더랍니다. 그래서 그 묶인 것을 풀어보니 고스란히 귀금속과 돈이 다발채 그대로 무사하더랍니다. 그 구역장님이 마음에 갑작스럽게 불안하고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간절한 충동이 일어나서 기도한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그 도둑들의 눈을 가려서 다른 것들은 다 뒤지고서 그 보자기만 건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구역장님에게 기도할 감동을 주셨을 때 즉시 순종한 결과 성령께서 간구하여주심으로써 천사가 그 도둑을 막아 보지 못하고 풀지 못하고 갑작스런 두려움을 가지고 서둘러 그 집을 빠져나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기도할 감동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감동에 순종하여 기도하는 자에게 반드시 기이한 도우심을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동을 주실 때는 언제나 기도하는 것을 기도의 원칙으로 삼으십시오. 그리할 때 그러한 감동은 점점 자주 임할 것이요 점점 감동 감화가 깊어질 것이요 놀라운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넷째로,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18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이 자기의 기도 생활 중 한 면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는 개인적으로 방언으로 드리는 기도를 많이 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고린도교회에서는 방언 경쟁이 붙어 있었는데, 어느 정도냐면 심지어 방언으로 설교하고 방언으로 가르치려고 덤벼들 기세를 보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바로 그렇게 방언에 열심을 내는 기도자들보다 더 많이 기도하고 있노라고 고백하면서, 그렇게 모든 성도들보다 방언을 더 많이 말하고 있는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직역한다면, “모든 사람들의 방언을 합쳐놓은 것보다 바울 사도는 더 많이 방언으로 기도한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사도 바울은 방언을 많이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의 사도 바울은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는 거의 방언으로 기도하곤 했다고 충분히 가정할 수 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방언 기도를 그렇게 많이 했을까요? 방언은 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요 자기의 믿음의 뼈대를 튼튼히 해주는 좋은 유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6,27 말씀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은 우리의 속 마음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보다 우리 영은 우리 속을 더 잘 아십니다. 우리 영보다 더 우리를 잘 알고 계시는 분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 몸과 우리 마음과 우리 영을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는 우리 마음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요 우리 영이 기도하는 것이요 우리 성령께서 주신 방언의 은사로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의 직접적인 감동 감화가 방언 기도할 때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알지 못하는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고 방언으로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꼭 필요한 것을 그의 뜻대로 간구해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응답으로 받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방언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영혼과 삶에 매우 유익합니다. 더욱이 우리들이 마음으로 기도할 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한계가 있으니까 30분 정도 기도하면 기도할 말들이 완전히 동이나버리고 맙니다. 좀 더 기도할 범위를 넓히면 한 시간 정도 기도하면 또 기도할 말이 동이납니다. 그러나 방언으로 기도하면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고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주시는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꼭 유익한 것을 기도한다는 것을 믿고 맡기면, 우리들은 세 시간, 네 시간 계속하여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방언으로 기도할 때 기도가 쉬워지고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도록 크게 도움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십시오. 방언을 받고 나서 한참을 하다가 더 이상 방언의 뜻을 잘 모르니까 이런 방언 계속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하고 방언을 방치하고 게을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필요 없는 은사를 하나님께서 주셨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혹시 마귀 방언이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방언하기를 주저하는 분이 있는데, 마귀 방언을 하게 되면 그 사람 속에 이상한 나쁜 목소리가 들리게 되고 저주스러운 어둠과 두려움이 생기게 되고 나쁜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마귀 방언이 아니니 안심하고 기도하면 됩니다. 방언을 많이 하십시오. 방언은 우리로 하여금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주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주신 기도의 은사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다섯째로, 작정한 기간 기도와 금식을 저축하십시오.
제자들이 기도를 게을리 했다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소년에게 들린 귀먹고 말못하게 하는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집에 들어간 후에 제자들이 조용히 왜 자기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가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해주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마가복음 9:29)
다수 성경(Majority Scripture) 즉 교회의 오랜 전통을 통하여 거의 이천년 동안 성도들이 읽어왔던 본문 말씀은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로 되어 있다고 하는 말씀을 지난 주 금요일에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기도가 쌓여 있고 금식이 쌓여 있을 때 그 축적된 기도와 금식의 영력이 있어야 매우 강력한 귀신들의 진을 파쇄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기도를 계속하십시오. 그런 중에 종종 작정하여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작정 기도를 드리십시오.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을 정하여 오직 기도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몸과 마음을 드리십시오. 혹은 금식하면서 시간을 정하여 하나님 앞에 온전히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그리할 때 기도의 세계가 힘이 있게 되고 기도의 영역이 넓혀지고 영적인 시야가 환히 열리는 은혜가 있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6:7~9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는 자연 세계의 원리인 동시에 영적 세계의 근본 원리입니다. 기도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심는 것은 곧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기도를 위하여 드린 시간과 몸과 마음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심은 기도를 통하여 영적 은혜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당장 무엇인가 금방 무엇을 거두겠다고 조급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작정하고 금식하며 기도하였을 때 반드시 기도의 영적 도약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를 저축해놓으면, 반드시 크신 능력과 축복과 은혜가 때가 되면 임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이 명령은 불가능한 명령이 아닙니다. 가능한 명령입니다. 우리가 지키겠다고 각오하고 실천한다면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여러 지침들이 있습니다. 범사에 모든 일을 기도와 간구의 기도의 기회로 삼아 기도하며 일하십시오. 다윗처럼, 다니엘처럼, 자기의 하루 스케줄을 보고 시간을 정하여 일정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습관을 실천하십시오. 마음에 감동이 올 때는 곧 모든 것을 제쳐놓고 즉시로 순종하여 기도하기를 힘쓰십시오. 무시로 입을 열어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작정 기도와 작정 금식을 하여 기도를 저축해놓으십시오. 이러한 지침을 따라 기도에 힘쓸진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우리 신앙과 삶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