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을 잘 못하는가? 그러면, 잘 들어주면 된다
원래 성악을 전공했으나 재미있게 강의를 잘 하는 스타 강사 김창옥, 그는 강의를 참 맛깔스럽게 한다. 그러면서 "학원에서 유머를 배운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웃기게 말을 잘하지?" 라며 "생각해 보니 전라도 해남이 고향이시고 아버지로부터 엔간히 속 썩고 사신 어머님을 닮아서 그렇다"라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말을 살짝 돌려서 하시는 걸 잘한다고 하면서,한 번은 아버지께서 인공연골 넣고 싶다고 해서 서울에 왔다가 배에 복수가 차 있고 얼굴이 부어 있어 검진을 받았더니 대장암이 의심되어 조직 검사를 했는데, 검사 결과 나오는 날 강의 때문에 가보지 못하고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고 한다. "엄마! 아빠 진짜 암이래? 몇 기래?" 어머니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이 "창옥아! 느그 애비 암이 아니다." "엄마! 암이 아니라고? 근데 왜 복수가 차신 거래?" "창자에 똥이 차 부렀어. 엄마는 복이 없다. 엄마는 복이 없어. 일흔이 넘어갔고도 과부가 못 되니 엄마는 복이 없어." 김창옥 강사의 이 말을 들으면서 배꼽 잡고 웃으면서도 정말 맞는 말이라고 공감했다. 어떤 사람은 말로 사람의 생명도 구하지만 어떤 이는 그 말로 큰 상처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러 부부가 동반 모임을 하다 보면 이런 남편들이 꼭 있다. 자기 아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가르치려 하는 남편이다. "당신은 그게 문제야. 지금 대화의 주제가 그게 아닌데 핵심을 빗나가고 있잖아."
또 골프 라운딩 가서 아내가 빈 스윙을 하는데, "어? 그게 아니잖아. 다시 한 번 해봐. 다시, 다시... 그래 이제 좀 하는구먼." 부부동반 라운딩 끝내고 넷이서 한방오리백숙 먹으러 갔는데 팔팔 끓자 앞접시에 다리 하나 건져서 국물과 함께 잘 푸길래 덜어주려나 싶었는데 자기 앞으로 가져가 혼자 먹는 남편......
당신은 이런 사람은 아니라고? 나이 먹어봐라 역전은 순간이다.
황찬영 신부님은 원래 하나님께서 남자는 하루에 만 번 말하고, 여자는 이만 오천 번 말하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남편이 퇴근해서 왔을 때 아내와의 대화에서 "여보! 옆집 아줌마 있잖아. 오늘 슈퍼에서 고기를 사는데 글쎄 다섯 근이나 사더라고, 한 근이면 충분한데 말이야 호호" "그게 우리 집하고 무슨 상관이야 조용히 밥이나 먹자." 남자는 하루 종일 회사에서 만 번의 말을 다 했기 때문에 집에 오면 말을 할 수 없는데 여자는 아직 만 오천 번 말할 것이 남아 있기 때문에 퇴근한 남편에게 계속 말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또 신부님은 강연을 다니기 때문에 만 번이 아니고 거의 십만 번 말을 했기 때문에 저녁때 지쳐 성당 식당에 갔을 때 밥해 주시는 자매님이 "신부님~ 오늘 글쎄......" 하고 말을 걸어왔을 때 남자는 만 번, 여자는 이만 오천 번 말한다는 말과 자신은 십만 번도 더 말했기 때문에 말하고 싶지 않고 그냥 조용히 밥만 먹고 싶다고 하니까 자매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 그럼 합의가 된 거네. 신부님은 그냥 듣기만 하세요. 말은 내가 혼자 할 테니까." 이렇게 다른 것이 남자와 여자다.
산책이나 가벼운 등산을 하다 보면 부부가 손을 잡고 다니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런 모습은 아주 좋게 보이는데 특히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 부부가 그렇게 손을 잡고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좋아 보인다. 그런데, 나이가 지긋하신 부부들 중 재래시장을 함께 다니는 모습에서 할아버지는 앞에서 뒷짐지고 팔자걸음으로 가고 할머니는 장을 보신 짐을 양손에 가득 들고 낑낑대면서 할아버지 뒤를 따라가는 모습도 정말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직업상 사람을 참 많이 만나 대화를 했다. 예를 들어보면, 1996년 교통조사반에 근무할 때 당직 날 하루에 약 50건 정도의 교통사고가 접수되었는데 그중 내 담당은 대략 20건 정도였다. 4교대를 했으니 하루 평균 5건, 그럼 사고자만 가해자와 피해자 기본 2명이니 10명, 거기에 통상 사고자의 가족이나 보호자 한 명씩 기본으로 더 만났지만 그들은 빼고 사고 당사자만 따져도 하루에 10명으로만 계산해 보면 한 달에 300명, 1년이면 109,500명의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해야 했다. 그것도 한 사람당 한 번씩만 하는 게 아니라 사고조사가 종료될 때까지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한 사건 당 2~10회 다시 만나 대화를 한다면 평균 5회로 잡아 최소한 1년이면 50만 번의 대화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때 단 한 번의 실언만 해도 그 사람들은 가만히 있질 않았다. 불친절하다고 민원을 제기하던가 아니면 상사에게 항의를 한다. 블로그 '자백의 함정' 편에서 말했듯이 몇 년 동안 계속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불친절하다느니 하는 식의 민원은 지금까지 수십 년이 되도록 단 한 번도 없었다.
말을 아주 잘해서 그럴까? 아니다. 그냥 잘 들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상대를 이해시키려고 계속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가 하고 싶은 말이 끝날 때까지 들어주고 기다렸다가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그들 중 뭔가를 잘못한 사람은 자기 말에서 모순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고, 대부분 서로 공감하면서 대화가 끝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팀원들과 대화를 할 때는 내가 말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고참 팀원이 아닌 경우,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리가 어색해져서 그러는 건데 그런 것이 자꾸 습관으로 되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타이밍에서 말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영어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영어 공부에 소홀하여 성적이 좋지 않아 선생님이 가르친 영어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지만 이 말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남자는 살짝 미소 지을 때가 가장 매력적이다." 나는 이 말을 들은 날부터 이상하게도 거울 앞에 서면 살짝 미소 짓게 되었던 것 같다. 요즘도 거울 앞에 서면 살짝 미소 짓는 연습을 하는데 예전처럼 예쁘지는 않다.
아주 오래전 내가 "저 목사가 그랬다는 거지..." 하며 말하자 큰 누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다고 해서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상대방이 있든 없든 경어를 사용해야 한다." 라고.
우리는 가끔 대화 중에 제 삼자를 언급하면서 그 사람이 나이가 많든 적든, 높은 사람이든 후배이든 상관없이 그냥 이름을 부르면서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있다.
"김 부장, 걔 말이야" 하면서
경찰 직업상 나의 말투는 약간 명령조가 있다. 퇴직을 얼마 남겨놓지 않아 그러한 것들을 고쳐보려 애를 쓰고는 있지만 잘 안되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답답한 직원을 만나면 뭐라 나무라게 되고, 그때 나의 말투가 상냥한 간호사 선생님이 환자에게 하는 말투가 아님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단, 오늘도 그 누구와 대화를 하면 저녁때 내가 한 말들을 되새겨 본다. 그렇게 하루하루 점점 나아지려고 하는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 진단했을 때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잘 들어주고 살짝 미소 지으면서 공감만 해줘 보자. 그럼 된 것이다.
_ 좋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