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계장을 끓이면서(류현숙)
닭을 삶아 뽀얀 육수를 내어 식을 때까지 두었다가 다시 고기를 발라내어 살점만 국에 넣고, 미리 데쳐놓은 고사리가 어느 정도 물렁해지면 소쿠리에 건져내어 물기를 짜내 밑간을 한 후 국물에 넣고, 그 밖에 숙주나물과 파, 마늘을 고루 양념하면 맛난 닭계장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이렇게 손이 많이 가지 않는 닭계장은 진정한 육개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 번거로운 닭계장을 만들면서 오늘 아침 수업이 연관 지어지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논술수업을 들은 지도 벌써 반 년이 되어간다. 처음 멋모르고 십년지기 이웃동생의 권유로 마지못해 다니게 된 수업이 나의 엔돌핀을 불러 일으킬 줄 그 땐 몰랐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겐 재즈댄스라는 운동이 있었고, 자격증을 딸 정도로 열정적으로 춤에 몰입해 있었기에 하루라도 빠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 같이 가주고 빠질 요량으로 첫 수업에 참가했는데 한 번, 두 번 다니다 보니 내가 같이 가는 동생보다 더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유치하다고 생각되는 개똥이 이야기, 누구나 갖고 있는 마틸드의 목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용기를 갖게 하는 엘리스, 내가 아는 지식에 포장술을 더한다는 동남풍, 그 밖에 애꾸눈 제자이야기까지 하루 하루 나에게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한 수업이었고, 세상을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해 주었다.
이전에 나는 나의 잣대로 판단하고 내 의견이 옳다고 우기는 것이 예사였는데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내 가족이 그것을 가장 먼저 느끼고, 우리 아이들이 변해가는 나를 보면서 같이 변해가는 모습 속에서 정말 수업듣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육개장의 모든 재료들처럼 수업 한 시간 한 시간이 맛난 재료들이었으니까.
이제 수업은 세 번밖에 남지 않았다. 반장과 총무, 다섯아이를 키운 대단한 친구, 손자에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수업을 듣는 왕언니, 인창동에 세 친구들까지 모두 그리워 질 거 같다. 무엇보다 먼 곳에서 오시면서도 한 번도 지각하지 않은 선생님은 성실성만으로도 우리의 모범을 보였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학생들의 맘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중간적 위치에서 대처하시는 모습은 정말 도인에 가까웠다. 앞으로 남은 수업이 얼마 되지 않아 서운하지만 선생님과 반친구들과의 인연은 오래 지속되었음 하는 바람이다.
첫댓글 와우, 장장 5개월이 되도록 항상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시는 선생님 모습에서 저도 많은 것을 배웠는데, 이제 이렇게 무르익은 필력을 뽐내시네요.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정말 좋은 인연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파이팅!!!